美·유럽·아시아 동시 한파 가능성…전력·가스 요금 급등 우려
'AI 수요 폭증' 변수 겹쳐…'인플레 불씨' 재점화 전망
'AI 수요 폭증' 변수 겹쳐…'인플레 불씨' 재점화 전망
이미지 확대보기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는 '극지방 소용돌이(Polar Vortex)'가 약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올겨울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북반구 전역에 기록적인 한파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10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불과 몇 주 앞으로 다가온 겨울철을 앞두고 기상학자들은 지난해의 이례적인 '따뜻한 겨울'과 비슷한 기상 조건이 관측됐으나, 결정적 변수인 극지방 소용돌이의 붕괴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만약 혹한이 현실화하면, 이미 고질적인 인플레이션과 경기 불확실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각국 소비자들에게 '에너지 요금 폭탄'이라는 이중고를 안길 전망이다.
혹한은 전력과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과 직결된다. 특히 미국에서는 인공지능(AI) 구동을 위한 데이터 센터의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이미 도매 전력 비용이 치솟았다. 이 비용 증가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돼, 한파까지 겹칠 경우 그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드웰 기후 연구 센터의 제니퍼 프랜시스 선임 과학자는 "겨울은 연중 날씨가 가장 격동적인 시기"라며, 에너지에서 운송, 소매업까지 광범위한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기상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성층권 돌연 승온(SSW)' 현상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12월에서 1월에 걸쳐 극 소용돌이 약화 현상이 조기에 나타나면서 북극 냉기가 중위도(미국, 유럽, 동북아)로 내려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SSW 현상이 예고되면서, 겨울 초입부터 미국·캐나다와 유럽 북부 지역에서 강한 한파와 폭설이 닥칠 수 있다. 지난해에는 극지방 소용돌이가 3월에야 붕괴했지만, 올해는 '준2년 주기 진동'이라 불리는 바람이 동쪽으로 불면서 성층권의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는 SSW가 조기에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현상은 북극의 찬 공기를 묶어두는 소용돌이를 약화시킨다.
베리스크 대기 및 환경 연구소의 주다 코언 계절 예측 이사는 "만약 성층권 돌연 승온이 지난해보다 일찍 발생한다면, 이는 전반적인 겨울 날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오픈웨더의 댄 하트 기상학자 역시 "12월로 접어들수록 극지방 소용돌이를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AI 수요에 한파 겹쳐 '요금 3년래 최고'
지역마다 전망도 암울하다. 상업 예보 업체인 커머디티 웨더 그룹(CWG)의 맷 로저스 사장은 "미국의 올겨울은 평년보다 약간, 지난해보다는 확실히 더 추울 것"이라고 예보했다. CWG는 태평양 북서부에서 뉴잉글랜드 중부까지 이어지는 미국 북부 지역이 평균보다 더 추울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2021년 전력망 붕괴 사태를 겪은 텍사스를 포함한 남부 지역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따뜻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큐웨더는 워싱턴에서 뉴욕에 이르는 해안 대도시를 제외한 중서부와 북동부 지역에 더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일본 '라니냐' 변수, 유럽 '가스 조기 소진' 우려
아시아도 비상이다. 태평양 표면이 냉각되는 '라니냐' 현상이 중국 많은 지역에 더 추운 겨울을 몰고 올 수 있으며, 이는 가스 부족 위험을 높인다. 모건 스탠리의 잭 루 애널리스트는 "도매 및 소매 가스 가격 인상과 함께 가스 소비가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라니냐 영향으로 남부 중심의 기온 저하와 가스 수요 급증 가능성이 커져, 공급 차질 및 가격 급등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기상 당국 역시 남부와 북동부 전역의 기온이 평년보다 낮을 것으로 공식 예보하며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실었다.
일본은 남부 지역에 한파가, 북부 지역은 온화한 날씨가 예상된다. 뉴질랜드 메서비스의 에마 블레이즈는 "동해 연안에는 폭설과 함께 적설량이 많을 가능성이 있어, 스키장 운영과 수력 발전 집수지를 채우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은 평균 온화한 겨울이 예상되면서도, 북유럽과 중부 유럽을 중심으로 잦은 한파가 기습적으로 닥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신뢰도가 높은 유럽 중기 예보센터(ECMWF)의 시뮬레이션에서도 11월과 12월에 고고도 극지방 바람이 이례적으로 약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유럽 가스 가격은 최근 몇 주간 한파의 강도를 저울질하며 큰 변동성을 보였다. 강한 추위가 닥칠 경우, 비축해 둔 가스 저장분이 조기에 소진될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잦은 기온 변동은 유럽연합(EU)의 겨울 밀 작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주요 기상 모델들은 북부·중부 유럽을 중심으로 에너지 수요 증가와 함께 곡물 수확량 감소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다.
다만, 스위스 메테오매틱스의 롭 허친슨 기상학자는 극지방 소용돌이 약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북극에서 풀려나는 찬 공기의 시기와 위치, 그리고 다른 따뜻한 추세들을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신중론을 폈다. 그는 "우리는 항상 지구 온난화라는 경쟁 요인을 안고 있으며, 이 때문에 유럽에 깊은 한파가 닥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북극 온난화와 대기 흐름의 변화 때문에 한파의 강도와 빈도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점차 어려워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