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서 통영옻칠미술관 소재로 신작소설 '세 발 까마귀' 출간
[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한산도에서 칩거해온 소설가 유익서 씨가 오랜 침묵을 깨고 신작 소설 '세 발 까마귀'를 들고 우리 곁에 왔다.세 발 까마귀는 우리가 흔히 보는 까마귀가 아니라 붉은 태양을 향해 비상하는 태양새다. 작가는 '예술'의 고향 통영에서 천 년 전통의 옻칠예술을 접하고 충격에 사로잡힌 나머지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통영에는 세계적인 옻칠예술가 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 관장이 자리하고 있다. 70평생을 옻칠예술에 몸바쳐온 김 관장은 ‘옻칠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공예 수준의 옻칠 예술을 회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소설 '세 발 까마귀'는 옻칠예술을 지켜나가고 있는 통영 옻칠미술관 사람들을 작품 속 인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터무니없는 모함을 당해 파렴치한으로 전락한 주인공 남자 강희는 망연자실 세상에 대한 믿음을 깡그리 잃고 '자신을 버리기 위해' 로프가 든 배낭을 달랑 등에 멘 채 집을 나선다. 휴대폰을 발로 으깨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간 그는 무작정 남쪽의 작은 항구도시로 내려간다.
손수나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고 자살의 결행을 미루어오던 강희는, 우연히 옻칠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옻칠회화를 보고는 큰 감명을 받는다. 평생 그림에 종사해온 그는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그림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심 충격에 사로잡힌다. 강희는 옻칠회화를 창안, 그것을 세상에 널리 퍼트리기 위해 헌신하고 있던 옻칠미술관 관장과 조우하게 되고, 영혼을 휘어잡는 옻칠회화의 마력에 사로잡혀 로프를 손수나에게 맡기고 자살 결행을 유보한다.
강희는 옻칠회화라는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옻칠회화만의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현해내기 위한 시행착오와 암중모색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된다.
사실 옻칠회화는 몇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옻칠공예에서 독립한 지 20여 년에 불과하지만 옻칠이 갖는 장점을 극대화해 예술로 승화시켰다. 손으로 만지거나 심지어 물 속에 작품을 집어넣어도 변하지 않는 옻칠회화는 벌써 중국과 미국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어 학문적으로 조명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작가는 최근 표절논란에 휩싸인 한국문단에 대해 한 예술가가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기까지의 치열한 예술혼을 불사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게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감동을 받는 예술이라야 진짜 예술임을 알리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 강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현실에서 구하기 힘든 이상적인 존재인 것이다. 현실에서 구하기 힘든 어떤 것,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이 아닐까. 현실에는 존재하기도 또는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어떤 것의 정체, 그 아름다움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인류는 전 역사를 바쳐온 것이 아닐까. 그림으로 또는 음악으로 또는 문장으로서. 그러나 그것의 온전한 모습을 표상하지도 그려내지도 못해 지금껏 그림이, 음악이, 문장이 유효하다 여기고 있으며, 그래서 그것들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 사는 일, 즉 먹고 입고 자는 일에는 아무 직접적 관련이 없는 그림, 음악, 문장의 정체를 진지하게 다시 검증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노정용 기자 n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