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품 개발 방식이 기존 생산기업 중심에서 유통기업 중심으로 이동되면서 유통기업들은 품질은 높이고 홍보·마케팅 비용은 줄이면서 마진을 늘려 농수축산물의 불필요한 포장 방식이나 유통거래 방식과 관행 등을 개선하여 유통비용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원재료비, 고정투자비, 연구개발비, 물류비, 마케팅비, 관리비, 이익 등이 있다. 유통업계는 이 중 마케팅비, 물류비, 상품관리비가 약 45%를 차지하므로 자체상품개발을 통해 상당부분 원가를 절감하겠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유통기업들은 자체유통망을 통해 유통 비용과 마케팅 비용은 물론 브랜드 홍보 비용까지도 절감하고 있다. 또한 자체 데이터 베이스 유통정보를 통하여 실시간으로 시장 트렌드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고객 니즈에 맞는 상품개발을 위해 다양한 산지계약 방식으로 가격과 품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전략이다.
미국 등 선진국 유통기업(특히 대형마트)의 경우 자체 브랜드 매출 비중은 평균 50% 수준으로 매출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불황의 그늘 속에서도 자체브랜드(PB) 상품들의 비중이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이 망라되어 매출이 급격하게 증가되면서 제조업체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현재 전년 대비 평균 20%의 성장세를 유지하는 추세가 지속되면 자체 브랜드 상품 비율이 대형 마트는 30%선에 육박하고 편의점은 40%대로 급격하게 신장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상황에서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워 시장을 주도했던 제조업체들은 아직 가격을 낮추거나 판촉을 강화하는 등 직접적인 대응책은 준비하지 못하고 의미를 애써 축소하면서 소비자 추이와 유통경영 전략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결국 2∼3개 업체를 포함하여 갑의 횡포와 제조업체의 출혈 경쟁은 시작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체 브랜드 품질 논란과 납품 업체 책임 문제를 두고 우려가 현실화되었다. 전국 매장에서 우유가격이 일시에 내리고 전량 폐기처분되고 고춧가루와 배추김치에서 식중독균이 검출돼 판매 금지와 회수 조치가 내려졌고, 참기름에서는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과다 검출되고 콩사탕에 금속성 이물질이 들어가 판매가 중지되고 회수 조치된 바 있다. 식품·의류·세제·생활용품 등 다양하게 PB상품을 내놓는 상황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대형 마트나 편의점의 자체 브랜드 상품에 대한 품질관리와 안전성 문제가 도마위에 본격적으로 올라서 국민심판을 받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뒤늦게 제조업체에서 제출받은 생산·기획·품질·안전성·연구 결과 등 유통기업이 주장하는 자체 브랜드의 품질검증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며 이제 대형 유통업체와 제조업체들도 제조물책임(PL)법 등 관련 법률과 시장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임실근 한국에너지공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