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솜방망이 처벌이 먹고 튀는 나라 조장한다

글로벌이코노믹

솜방망이 처벌이 먹고 튀는 나라 조장한다

[비정상의 정상화, 이것부터 하자]③ 경제사범 엄단해야
[글로벌이코노믹=곽호성 기자]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이래 압축 성장을 달성해 초단기간에 세계 상위권 경제력을 가진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렇지만 압축 성장의 잔상이 너무 컸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非)정상 문화다. 글로벌이코노믹는 회계부정, 학벌사회, 탈세 문화, 지하경제, 양성평등, 경제사범, 약속 불이행, 국회 선진화 등의 비정상 문화들을 바로잡고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선진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려 한다. 세 번째 주제는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 문제다. <편집자 주>

지금은 고인이 된 김윤환 전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5년 단임제(現 대통령제)는 ‘먹고 튀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 이 나라는 ‘먹고 튀는 나라’다.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튀지만’ 솜방망이 처벌만 받는다. 기자가 만난 자영업자들은 한결같이 “한국 사회는 사기꾼 천지”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원인은 경제사범에 대한 철저한 처벌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사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2013년4월10일 주가조작사범 처벌 강화가 골자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는 불공정거래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 벌금’을 기준으로 하고 ‘최대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 규정을 두고 있다. 문제는 실제 재판에서 실형보다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고 벌금도 너무 적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10년 징역형 혹은 거액의 벌금도 흔하다. 그러나 한국은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 사람이나 물건의 피해의 경우 명확한 피해자가 있는데 비해 경제사범의 경우 명확한 피해자가 없거나 피해자가 있어도 고소를 꺼리는 관행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은 부유층의 경제범죄가 흔하다. 대표적 사례가 탈세 횡령 배임 혐의로 처벌을 받고 있는 이재현 CJ 회장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2월14일 이재현 회장에게 징역 4년, 벌금 26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604억원의 국내외 비자금을 조성하면서 260억원을 탈세하고 회사에 11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끼쳤다고 보았다. 이 회장의 탈세액 260억원 중 40억원이 조세피난처 버진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한 역외(域外)탈세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역외탈세란 해외에서 발생한 이익을 감춰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다. 역외탈세를 색출하기 위해서는 외국 정부와의 협력이 필요해 잡아내기 힘들다. 이 회장의 경우 검찰 수사 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돼 급기야 2013년 신장이식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은 실제로 건강이 나쁜 경우이지만 수사를 받을 때 꾀병을 앓는다고 의심받는 이들도 있다. 영훈학원 김하주 이사장의 경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으러 법원에 들어갈 때는 간이침대에 누워 링거를 꽂고 있었다. 그런데 구속이 결정되자 혼자 걸어 나왔다. 다른 재벌 중에도 범죄에 대한 조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기 위해 검찰이나 법원에 출석할 때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이들이 있었다. 평상시에는 멀쩡하던 재벌들이 검찰이나 법원에 출석할 때 환자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해 동정심을 일으키려 하거나 강한 처벌을 모면하려는 계산일 것이라는 의심의 목소리도 나온다. 법원은 2월1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횡령·배임혐의를 받고 있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원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300시간을 명령했다. 2000억원대 사기성 기업 어음을 발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구자원 LIG 회장에게도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또 법원은 2월 1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 씨에게 불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 씨에게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8월15일 34만명을 광복절 특사로 사면했다. 이렇게 감옥에 들어가도 사면을 통해 금방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구조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경제범죄를 더욱 부추길 것이란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 되는 이유는 한국 상류층의 특성에 있다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상류층, 법조인-재벌-정치인 등의 경우 대개 학맥과 혼맥, 지연과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학맥-혼맥-지연과 혈연으로 똘똘 뭉쳐 사실상 한국의 ‘귀족계층’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원해주고 부정부패를 묵인해주면서 그들의 특권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간다는 분석이다. 과거 개발독재 시대 때부터 형성된 이 ‘귀족계층’은 정권교체가 있었음에도 건재했고 현재는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만일 이들 ‘귀족계층’이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자신들에게 해가 될 일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이 약한 이유는 바로 이들 ‘귀족계층’이 경제범죄를 저질러도 낮은 수준의 처벌을 받기 위한 것이란 추측이 성립된다. 홍헌호 시민사회경제연구소장은 “경제범죄를 엄단하려면 법규를 전면적으로 뜯어 고쳐야 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며 “세월호 침몰 사건 처리를 예로 들면 관피아를 척결하고 제대로 된 감시기구를 설치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정치인들이 지목한 사람들이 관피아가 밀려난 자리를 채워 ‘정피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학맥, 인맥, 혼맥 등으로 연결된 기득권층과 맞서서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 주도의 개혁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정치권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