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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침대 창업주 안유수 회장 별세…향년 9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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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침대 창업주 안유수 회장 별세…향년 94세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 사진=에이스침대이미지 확대보기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 사진=에이스침대

에이스침대 창업주인 안유수 회장이 지난 26일 늦은 밤 별세했다. 향년 94세.

27일 에이스침대에 따르면 안 회장은 전날 밤 11시경 별세했다. 안 회장은 1930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안유수 회장은 1930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51년 1·4후퇴 당시 부모와 떨어져 혈혈단신으로 월남했고 부산에 위치한 미군 부대에서 잡역부를 하며 생활하던 중 미군 야전에서 처음으로 서양 입식 생활의 문물인 침대를 접했다.

이후 안 회장은 서울로 올라와 방송국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일을 하며 가구점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제법 큰 규모의 가구점임에도 침대가 없는 것을 보고 침대 사업을 추진했다.

침대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63년에 안 회장은 서울 금호동에 터를 잡고 ‘에이스침대 공업사’를 설립했다. 변변한 스프링 제조기술은 물론 기기도 없던 이 시절에 안 회장은 손으로 강선을 감아 제품을 개발해가며 지금의 에이스침대로 키웠다.

평소 ‘최초’,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온 안 회장은 국내 최초의 매트리스 스프링 제조설비, 침대 업계 최초의 KS마크 획득을 비롯해 300개의 특허획득 등의 기록을 세웠다.

회사가 아직 소규모던 1970년대 후반에는 당시 기업들에게 생소했던 ‘품질관리실’이라는 부서를 만들어 모든 업무를 표준화·문서화하며 에이스침대의 회사 규격을 설립 이래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안 회장은 1978년 서울 성수동에서 경기도 성남으로 공장을 이전한 후 KS 마크 획득에 힘을 쏟았다.

침대업계 최초로 도전하는 KS 마크였기에 획득 과정은 더욱 험난했다. 침대 검사설비를 위해서는 규격에 맞는 검사 방법을 하나하나 숙지하며 시험 설비를 만들어야 했다.

안 회장은 1992년 침대 기술의 독립화, 침대 기술의 한국화를 목표로 업계 최초로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 시기 에이스침대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력을 토대로 수년간 미국의 유명 브랜드와 기술제휴를 맺고 선진기술을 흡수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를 통해 최고의 연구 설비를 갖추고 국내 석학들을 연구 위원으로 위촉하여 각종의 연구 과제를 가지고 연구한 결과, 이제는 우리 침대의 품질과 제품 이론이 세계 일류 수준으로 도달하게 됐다. 에이스침대가 연구소를 통해 획득한 특허와 실용신안은 국내외를 합해 300여 개, 총 출원은 880개로 업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생전 안 회장이 전한 “지금의 에이스침대를 만든 건 최초와 최고를 향한 굳은 신념과 도전 정신이었다. 침대는 과학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았던 것은, 내 손으로 직접 강선을 꼬아가며 개발한 침대가 곧 우리나라 침대 산업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에서 안 회장의 자부심과 진심을 엿볼 수 있다.

안 회장은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 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했다. 1999년부터 25년 동안 설과 추석 명절마다 지역 사회에 백미를 기부해 왔으며,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해 15억에 달하는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 지역 사회와 소외계층을 위해 꾸준한 관심과 도움을 실천했다.

자녀는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와 안정호 시몬스침대 대표, 안명숙씨 등 2남1녀를 두고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에 마련됐다.


송수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sy12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