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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0원씩 추가 저축 3000일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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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0원씩 추가 저축 3000일간 하면?

[Click 도전 Record(22)] '티끌 모아 태산'을 몸소 실천한 진정군 그린전기 대표
은행통장 개수는 무려 30개…최종일 입금액은 4만4600원

20년 간 매일 10원씩 더하기 저축을 한 진정군 그린전기 대표이미지 확대보기
20년 간 매일 10원씩 더하기 저축을 한 진정군 그린전기 대표
초등 3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진정군 그린전기 대표(75)는 3000일 동안 하루에 10원씩 추가 저축하는 진기록에 도전했다. 그는 20년 간 매일 10원 추가 저축을 하는 동시에 12년 간 1원 모으기를 했다. 뿐만이 아니다. 동전으로 대형 태극기를 만들어 기네스에 등재되는가 하면, 저축한 돈으로 이웃을 위해 7000여 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하루 10원 더하기 저축이라는 이색 기록에 도전한 그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을 온 몸으로 실천한 주인공이다. [편집자 주]

진정군 그린전기 대표는 초등 3학년 중퇴라는 불리한 학력 때문에 입사 지원할 때 졸업증서 대신에 양면 쾌지 위에 "모범사원이 되겠습니다"를 열 손가락으로 한자씩 열 자를 써서 제출해 입사에 성공했다. 실제 그는 27년간 모범사원으로 일하면서 '대리'로 퇴직했다.

자신의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진 대표는 초등 검정고시에 이어 중학교, 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마쳤다. 강서구 방화동에서 15년째 전파상을 운영하는 그는 동전 모으기 국내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진 대표는 지난 2002월드컵 당시 매일 10원씩 더하며 적립해 모은 돈을 기부해 유명해졌다. 1995년 6월12일 프랑스에서 한-일 월드컵 개최가 확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날부터 '10원 모으기'를 시작했다.
'10+20+30+40….' 매일같이 금액을 10원씩 늘려가며 저축한 그는 2002일째 되는 2002년 3월7일 2150만원을 출금해 한국복지재단에 쾌척했다. 이후에도 10원 모으기 운동을 계속하여 2003년 8월 강서구 자원봉사센터에 1000만 원을 전달했다. 10원 모으기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 지난 6월11일 만 20년이 되었다. 여기에 소요된 은행통장 개수는 무려 30개이고, 최종일 입금액은 4만4600원이었다. 은행이 문을 여는 날에는 2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은행을 다녔다.

기네스 인증서이미지 확대보기
기네스 인증서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 간 매일같이 10시에 맞추어 입금을 했다. 강산이 2번이나 바뀌었지만 그의 목표를 향한 집념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또 하나의 진기록을 갖고 있다.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경의선 복원이 결정된 2000년 8월 1일부터 1원 모으기를 시작하여 2012년 2월 16일 까지 은행에 3000회를 다녔다. 1원씩 모은 돈이 12년 간 448만1932원이다. 도보, 자전거, 버스, 지하철, 기차를 타고, 제주도에는 비행기를 이용하여 전국 은행지점을 찾았고 교통비가 더 많이 든 '1원 추가하기 저축'을 하였다. 모두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그는 삼천리강산 우리나라의 통일을 기원하는 소원과 1원의 소중함을 주고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기록에 도전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진정군 대표는 해방이 되자 한국으로 건너왔다. 열 살 어린 나이에 벌어진 6·25 전쟁으로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고 이때부터 온갖 인생 역경이 시작되었다.

“초등 중퇴의 학력에, 호적도 없으니 정말 힘들었지요. 남들은 가기 싫다는 군대에 가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군에 있을 때 가장 행복했었어요. 군에서는 먹을 걱정도 없고 호적도 생겼어요.”
통일을 기원하며 1원씩 저축한 통장이미지 확대보기
통일을 기원하며 1원씩 저축한 통장
그러나 제대 날은 다가왔고 다시 먹고 살기 위해 직장을 구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초등 중퇴 학력으로는 갈 곳이 없던 터라 궁리 끌에 "모범사원이 되겠습니다"라는 혈서를 제출하여 어렵게 입사하였다. 회사 대표에게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던 그는 버려지는 산업폐기물을 선별처리 하여 그 수입금으로 통근버스를 구입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27년간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했지만 높은 학력의 벽은 넘을 수 없었다. 퇴직 당시에 그의 직책은 대리에 불과했다.

못 배운 설음이 너무도 컸던 어르신은 아이들만큼은 잘 가르치겠다는 의지로 퇴직 후 무작정 서울로 이사했다. 강남 8학군으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시작했다. 이어 중학교, 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56세에 방송대학에 진학하여 2000년 10년 만에 학사학위를 받아 졸업했다. 초등 중퇴의 실력으로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기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아 한양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고 마침내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사회복지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그는 계속 10원 동전을 모으던 중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가로 6m×세로 4m, 24㎡ 의 대형 동전 태극기를 만든 어르신은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2008년 4월 16일 공항고등학교 체육관에 전시된 대형 동전 태극기는 만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처음에는 어르신의 10원 모으기에 부정적인 사람도 많았다. 하찮은 10원도 정성껏 모으면 의미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어르신의 뜻이 전해지자 격려의 글이 이어졌다. 가게에 진열된 어르신의 각종 상장과 감사패는 어르신의 선행으로 받은(대통령, 국무총리, 부총리, 한은총재, 행정자치장관, 서울시장, 충북도지사, 표창 인증 등)것 들이다. 이렇게 10원을 모아서 어르신이 기부한 액수는 6700만원이 넘는다.

서울시와 행정자치부 모니터로 활동하고 있는 어르신은 최우수 모니터 상을 수상했다. 그가 모니터한 일 중에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어르신의 아이디어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 대형 마트의 쇼핑백 대신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게 한 것 역시 그의 아이디어다. 왕성한 활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도 실버넷뉴스 시민사회부기자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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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전하는 사람이다. 어려운 환경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며 세상을 변화시킨 힘을 가진 게 분명하다. 그는 못 배운 것에 대한 한을 풀고자 청주에 땅을 사서 학교를 지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곳에 과학단지가 들어오면서 땅을 보상받고 청주를 떠나야 했다. 그 보상금으로 방화동에 작은 건물을 구입하고 1층에서 전파사를 운영하면서 즐거운 인생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동전 모으기를 해왔다.
10원 추가 운동과 1원 추가 저축운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계획으로 끝난 것이 아닌 실천하는 사람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형편에 따라 작은 돈이라도 정성껏 모으면 태산이 된다는 진리도 깨달았다.

그는 오는 7월8일 '도전의 날'에 저축 분야로 최고기록 인증을 다시 받게 된다.

한편 무(無)학력으로 입사해 말년 평사원으로 일한 그는 배움에 대한 설움 때문에 자녀교육에 대해서는 남달랐다. "제가 못 배워 엄청 멸시를 받았기에 자녀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뒷바라지를 해주었지요. 청주에서 상류권 성적을 줄 곧 유지하였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교육을 위해 서울로 전학시켰어요. 강남 학군에 배정을 받아 첫 시험을 보았는데 학급에서 실력이 중간쯤 되었어요. 그때 아이는 크게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여 중학교 졸업 즈음에 장학생이 되었습니다."

진정군 대표의 자녀들은 가난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아들은 한양공대를 나와 H항공 기장으로, 딸은 서울대 물리약학대학원 약학과 석사를 졸업한 뒤 현재 약사로 근무하고 있다.
조영관 Global Record Committee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