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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외상' 애써 외면하며 고통 쌓는 일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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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외상' 애써 외면하며 고통 쌓는 일 멈춰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68)] 위장된 강함과 상담

가상의 미국 해군 최정예 부대가 전 세계 위험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과 그 안에서 팀원들과 팀원들이 가족 사이에 겪는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 '씰팀'.이미지 확대보기
가상의 미국 해군 최정예 부대가 전 세계 위험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과 그 안에서 팀원들과 팀원들이 가족 사이에 겪는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 '씰팀'.
2017년 처음 방영을 시작한 미국 드라마 '씰팀(Seal Team)'은 많은 인기를 끌면서 현재 시리즈 7을 기다리고 있다. '씰팀'은 가상의 미국 해군 최정예 부대로 전 세계적으로 위험한 임무를 계획하고 수행하는 과정과 그 안에서 팀원들과 팀원들이 가족 사이에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팀원들 대부분은 일 년에 거의 300일을 집을 떠나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 특히 부인과 갈등을 겪게 된다.

전쟁을 수행 중인 군인들, 혹은 치열한 전투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군인들이 일상적인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가족이나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갈등을 겪는 것은 비단 '씰팀'의 주제만이 아니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을 다룬 거의 모든 영화나 드라마 혹은 문학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이다. 조국을 수호하고 국제적인 평화를 지키기 위해 생사를 오가는 극렬한 전투를 겪은 것도 힘든 일인데 가족들과 불화까지 겪는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왜 대부분의 특수부대원들이나 참전 용사들이 가족과 불화를 겪는 것일까? 이들은 한결같이 마음의 문을 닫고 제일 많이 이해해줄 가족, 특히 부인에게도 심리적인 벽을 쌓고 단절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부인들과 감정적인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지 못한다. 실제로 특수부대원으로서의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부인과 가족에게서 멀어진다. 결국 대부분 이혼으로 끝나게 된다.

사실상 적진 깊숙이 침투해 비밀리에 격렬한 전투에 참가한 대부분의 특수부대원들은 전투에 참여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다. 신체적인 부상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외상(外傷)에도 시달린다. 이들은 대부분 외상성 뇌손상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다. 외상성 뇌손상은 외상으로 뇌에 손상을 입은 상태로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신체적·인지적·정신적 기능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의사소통 기능이나 기억 등이 저하되고 성격 변화 등이 나타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람이 전쟁·고문·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부인들은 남편들이 위험한 전쟁터에서 지내는 것에 대해 당연히 걱정을 많이 한다. 하지만 부인들이 정말 힘든 것은 다른 것이다. 이미 남편들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원이라는 것을 알고 결혼했다. 그리고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용맹하게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껴 결혼까지 한 것이다.

군인·경찰관·소방관, 극도의 표현자제가 정신적으로 힘들게 해


부인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남편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상황에서 오는 고립감과 남편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정작 도움을 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무력감이다. 실제로 특수부대원들은 힘든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같은 경험을 한 팀원들과 공유한다. 더 정확하게는 자신이 느끼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팀원들과도 공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팀원들에게 '부적격자'라는 낙인이 찍힐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팀원들과 공유하는 것은 함께한 경험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고통은 발각될 때까지 감춘다. 그래서 그들은 생사를 함께하는 팀원들의 도움도 거부한다.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가능한 한 자신에게도 감추는 것뿐이다. 이들이 신체적으로보다 정신적으로 먼저 병드는 이유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위험한 일을 수행하는 특수부대원이나 군인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위험한 임무와 험한 업무를 많이 다루는 경찰관이나 소방관들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특히 폭력적인 범죄인과 상대하는 강력계 형사들은 특수부대원들과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 이들도 험악한 환경에서 폭력적인 범인과 상대하면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신체적인 증상들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심리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심리적인 증상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면서 증상을 쌓아가고 있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이 심리적 외상(外傷)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걸 억압하고, 의식했다고 해도 표현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한다.

'상담' 통해 심리적 상처 맘껏 분출하고 심적외상서 벗어나야

넓게 보면, 한국의 남성들에게도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경향이 있다. 남성들은 감정적 표현을 나약한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 속에서 교육받고 성장했다. 예를 들면 어린 사내아이가 울면 어른이나 형들이 “남자는 평생에 세 번밖에 울지 않는다”며 울음을 멈추도록 반협박을 하거나, “계집애처럼 질질 짜지 마라”고 면박을 주곤 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성장하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나약한 것이고 “계집애” 같은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상담(相談)이다. 이들이 자신에게도 억압하고 있는 심리적 상처들을 마음 놓고 꺼내고 공감과 위로를 받아야 비로소 심리적 외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정적 감정은 충분히 표현되어야 긍정적 감정으로 승화된다. 이들이 힘든 것은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이 승화되지 못하고 마음속에 계속 쌓여 있기 때문이다.

상담(相談)은 문자 그대로 ‘상대방[相]의 화[炎]를 대화[言]로 풀어주는 것’이다. 화는 우리가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의미한다. 모든 부정적 감정은 마음속에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상대에게 말로 표현해야 없어지고 긍정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 화(火)는 불이다. 불은 에너지이다. 불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하지만 불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재산과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재앙(災殃)으로 변한다. 불을 더 이상 재앙이 아니라 유용한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방법이 상담이다.

자신의 약함 솔직히 인정할 때 두려움은 강함으로 승화


용감무쌍한 전사(戰士)로서의 삶에 긍지를 가지고 있던 팀장이 자신처럼 심리적 외상으로 고통받는 팀원과 함께 그동안 완강히 거부하던 상담실을 찾는다. 그리고 상담실을 찾은 이유를 설명한다.

“이번에도 또 동료를 보냈어요. 동료를 잃은 건 41번째고, 41명의 전사한 부하들이 휴대폰에 남아있죠. 고통스러운 기억이 41개네요. 그냥 다들 살아있을 때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어요.…그리고 무사히 귀국한 동료들은 곁을 지켜주고 도와주고 싶어요.…왜냐하면 전장에서 살아남았다고 다가 아니거든요. 내 동료들에게서 전쟁이 빼앗아 간 것을 되찾아주고 싶고 정말 중요한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전쟁은 영혼까지 옥죄거든요. 앞으로 제가 형제들을 도우려면 제 고통부터 먼저 맞서야 해서 여기 온 겁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친구처럼 함께 전장을 누볐지만 현재 부인과 갈등을 겪으며 위기를 맞고 있는 부팀장에게 빨리 속 시원히 속마음을 털어놓으라고 재촉하는 듯 쳐다본다. 그 부팀장은 지난 작전에서 포로로 잡혀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한 외상을 경험했다. 죽기 직전 간신히 구출된 그는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며 부인과의 관계도 파경 직전에 직면해 있다.

“(머뭇거리다가) 나는 전사이고 남편이자 아버지예요. 씰은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으니까 그저 문제만 계속 해결하면 되죠.…내 고통을 나눠서 뭐 하겠어요? 어떻게 아내에게 망가졌다고 말해요. 애들에게 괴롭다고 말할까요? 동료들에겐 두렵다고 하고요? 나쁜 남편이나 아빠 동료가 되는 편이 더 쉽죠.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느니….(팀장: “레이, 혼자서 감당할 순 없어. 혼자서는 못 버텨.”) 너무 피곤하고…이런 기분을 느끼기 싫어요. (울면서) 모두를 속여야 하니까요. 모두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스스로 세뇌해 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전혀 괜찮지 않아요. 모든 사람을 속였지만 저를 가장 많이 속였어요. 왜냐하면 사실은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고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요.”

그는 상담실에서처럼 용기를 내어 별거하고 있는 아내에게도 털어놓는다.

“나이마, 날 억류한 놈은 바로 구타부터 시작했어.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다가 정신적으로 고문했지…. 당신과 애들을 생각하며 버텼어. 그런데 놈들이 전동드릴을 내 다리에 꽂을 땐 다신 가족을 보지 못할까 봐 더 고통스러웠어. 당신만 두고 떠나기 싫었어서 그 후로 계속 겁이 나. 그냥 겁이 나. 어떻게 당신에게 말하겠어. (울면서) 내가 망가졌다고. (부인: “말할 필요 없었어. 내가 도울 수 있도록 마음만 열었으면 됐으니까.”) 정말 아직도…아직도 그러고 싶어? (부인: 남편을 울면서 껴안으며 “집으로 돌아와.”) 둘이 포옹하고 운다. 그 후 부팀장은 부인과 함께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제대군인들을 돕는 센터를 운영한다.

진정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다. 두려운 감정도 강한 에너지이다. 솔직히 인정할 때 두려움은 강함으로 승화된다. 강함은 신체적인 전투력이 아니라 상대와 공감하며 도움을 받을 때 얻게 되는 힘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