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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가 된 노련한 무용가의 아련하고 서정적인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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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가 된 노련한 무용가의 아련하고 서정적인 몸짓

나의 신작연대기(42) 박명숙(현대무용가, 예술원 회원, 경희대 명예교수) 안무·출연의 ‘하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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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가의 일생이 다섯 개의 막대기에 끼워져 만화경을 단다/ 바람이 이는 언덕에서/ 시간이 말을 걸어 온다/ 일상의 삶에서 시작된 사유/ 윤무의 격정을 거쳐 민족사의 아픔에 이른다/ 순간, 그미는 도시 나그네가 되고/ 날마다 혼잣말을 연습한다/ 낯선 땅에서 지금껏 살아온 자/ 삶은 지구별 소풍/ 구름인 산은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전생에 무슨 사랑의 죄 저질렀기에/ 대속하고 기도하는 삶 삐져나오고/ 아리게 다가오는 영혼의 프레임마다/ 늦가을 정동 성당의 이른 햇살 같은/ 하늘 정원의 훈김이 씌워진다

지난 9월 28일 저녁 7시 30분, 29일 저녁 4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박명숙댄스씨어터(예술총감독 박명숙,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예술감독 김영미) 주최·주관, 서울특별시·서울문화재단 후원, 박명숙 안무 50년 기념 ‘하늘 정원’(Garden of Sky)이 공연되었다. 안무가 박명숙은 ‘편집광’(1977) 이래, 안무한 250여 편 가운데 대표작 ‘혼자 눈뜨는 아침’(1993), ‘에미’(1996), ‘초혼;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1981), ‘윤무’(2011), ‘유랑’(1999) 다섯 편을 엄선, ‘혼자…’와 ‘초혼’에 직접 출연하는 열정을 보였다.·
‘하늘 정원’은 여성 삶의 내면을 극적으로 묘사한 '혼자 눈뜨는 아침(A Morning Wake Up Alone)', 영원한 생명의 근원인 모성에 대한 찬가를 그린 '에미(Mother)', 전통음악과 정중동(靜中動)적인 춤의 조화를 묘사한 '초혼;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Invocation for the Dead Spirit)', 사랑과 성에 관한 10개의 에피소드를 묘사한 '윤무(Reigen)', 소금꽃으로 피어난 사람들을 위한 진혼인 '유랑(Journey into Shadowland)'의 인상적이고 의미 있는 장면의 빛나는 부분을 콜라주하고 재구성하여 참신하게 만들었다.

박명숙은 섬세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한 유태인 작곡가 구수타프 말러를 사숙한다. 프리셋은 번스타인 지휘의 말러의 교향곡 4, 5번 아다지오로 분위기를 창조한다. 무거운 내면에 걸친 깊은 사색과 격정적 감정의 음악은 다섯 작품에 걸친 다채로운 주제와 운명적 비극을 주조하기에 적합하다. 심오한 사색을 통한 풍부한 감정적 표현은 내면적 갈등과 우울, 사랑과 죽음을 스쳐 간다. 박명숙의 현대무용은 신과 인간 사이의 대화를 움직임으로 옮겨놓는다. 깊은 서정의 움직임은 거친 기도를 정제한 명경지수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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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눈뜨는 아침’: 이경자 소설로 빚은 현대무용, 초연 당시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40대 초반이었다. 영상과 사진 자료를 타고, 독무는 여성으로 시대의 일상을 살아내는 이야기가 공간 활용과 사운드를 자극한다. 뭉크의 ‘절규’를 눌림한 일상, 여성의 몸과 마음에서 추출한 아침의 독백이 해독되고, 마음에 이는 이야기와 외양이 심리적 구분을 한다. 지향했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이 오버랩 된다. 보이첵 키랄(Wojciech Kilar)의 ‘연애 사건 연표’에서 따온 '비텍과 알리나(Witek & Alina)'가 심경을 대변한다. 이 작품은 현대무용의 미학적 승급을 촉발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에미’: 브레히트의 시 ‘나의 어머니’가 동인(動因)이 된다. 고난과 희생이 점철된 질곡의 삶을 살아낸 어머니 이야기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네 살 때부터 느지막한 나이에 이를 때까지 용기의 원천이었던 모친에 대한 박명숙의 사모곡(思母曲)이다. 국립국악원의 김보남(한국무용), 진명여중고의 김정욱(발레), 이화여대의 육완순(현대무용) 선생 등이 그녀를 조련했다. 리플렛에는 오랜 세월 후원하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피난 시절 부모님과 찍은 작은 사진이 함께한다. 어느 나라이건 어머니는 경전 같은 힘을 소지한다. 이 작품은 현대사회의 이기심과 소통의 부재 속에 상처받은 ‘에미’의 영혼을 달래면서 모성의 신비와 생명의 연속성을 춤의 언어로 형상화한다.

‘초혼;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 코리안 레퀴엠, 박명숙은 시대, 공간, 움직임을 조망하면서 삶과 죽음을 성찰한다. 그녀는 일관되게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무용에 매진해 왔다. 그녀는 칠십 중반을 잊은 채 춤으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기쁨을 얻었다. 영상과 사진 자료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노련한 무용가의 움직임은 시가 되고 현대무용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비가시적 초월적 존재와 영혼에 대한 믿음의 위령무(慰靈舞)는 작품의 심도와 민속적 가치를 보여 주었다. 이 작품은 유행적 주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와 연결된다. 박명숙은 몸으로 표현되는 몸의 진정함을 부각 시켰으나, 종교예술로 몰입,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윤무’: 오스트리아의 희곡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윤무’가 동시대적 무용으로 해석된다. 원전 무용(네 쌍)과 다르게 네 명의 남녀 무용수가 신분을 표현했던 열 개의 에피소드가 두 개로 축약된다. 남녀 간에 성(性) 담론과 음식 알레고리가 이야기된다. 세기 전의 시대상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 아르코 소극장에서 2주간 공연되었던 초연, 세월이 지났어도 작품은 빠른 장면 전환과 역동적 춤으로 바로 무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윤무’는 예술에 필연적으로 달라붙는 음습을 털고, 광륜(光輪)을 지향하는 여성 예술가의 일생을 표현한다. 대도시에서의 사랑법은 깊고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파도를 안고 쓰러지듯 상상이 현실을 지배한다.

‘유랑’: 한민족 디아스포라. 20세기 초, 연해주에서 타슈켄트로 쫓겨난 고려인, 신순남(니콜라이 신) 화백의 작품이 영감을 주었다. 참혹했던 이주 과정, 척박한 삶이 주제이다. '레퀴엠 한민족 유민사'展(1997)에 걸린 연작은 높이 3m, 가로 44m였다. 경찰 감시를 피해 숨어서 그려야 했던 그림들이 춤의 내용이 된다. 원전의 스케일은 가져올 수 없었지만, 분위기는 춤으로 과거와 현재가 이어졌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풀어져 나오면서 이주민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죽은 영혼들이 새가 되어 올라갔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 준 작품은 아직도 진행 중인 ‘유랑’의 실상을 보여 주었다.

동작은 모든 행동을 통합시키고 조화롭게 만든다. 소설가 이경자는 “박명숙은 어머니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춤추는 사람으로만 보이는 여자, 그녀의 움직임은 늘 느낌에 사로잡히도록 한다”라고 적었다. 박명숙은 춤밖에 모르는 사람이며, 매일 아침 눈 뜨고 잠드는 모든 순간이 춤이다. 매일 그런 생각으로 발은 땅을 딛고 머리는 구름 위로 날아다닌다. 그녀에게 춤은 에너지 원(源)이며 생명이다. 그녀에게 작품 제작 과정은 행복 자체이고,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시간은 생명과도 같이 소중하다. 정상인의 두뇌 회로와는 다르다.

박명숙 현대무용가(예술원 회원, 경희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박명숙 현대무용가(예술원 회원, 경희대 명예교수)

현대무용가 박명숙은 왕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왕비를 위해 ‘하늘 정원’을 만든 것을 기억해 냈다. ‘하늘 정원’은 반세기 동안의 안무작 인상 가운데 다섯 편을 재구성했다. 축소판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5)의 막달라 마리아 역을 주조한 안무가 육완순의 예술정신을 이음했다. 박명숙은 1975년부터 육완순의 ‘컨템포러리무용단’에서 활동했으며 출산 후 한 달 만에 미국 순회공연을 간 전사였다. ‘하늘 정원’은 박명숙댄스씨어터 창단(1978), 카네기홀 무대 출연(1981)과 같은 현대무용사가 연상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국 현대무용의 종가인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발아한 박명숙의 춤이 중흥을 거듭하여 K-Culture 탄생에 촉매가 되었음을 입증하였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