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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필요하다고 깨닫는 것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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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필요하다고 깨닫는 것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

[힐링마음 산책(307)] 진정한 행동의 변화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LG 트윈스 vs 두산 베어스의 경기, 어린이 야구팬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LG 트윈스 vs 두산 베어스의 경기, 어린이 야구팬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많은 사람들 특히 자녀와 학생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과 교사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사람 참 안 변한다”라는 것이다. 하긴 부모나 선생님들이 해주시는 좋은 충고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즉각 실천한다면 지금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도 “과연 성격이 변하는가?”에 대해 설왕설래하고 있으니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어렸을 때 형성된 성격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로 변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반면, 상담심리학의 기초를 놓아준 로저스(Carl Rogers)는 성격이 변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William James)는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유명한 말을 통해 성격이 변할 수 있다는 신념을 피력하고 있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그 두 견해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자신의 생각을 놓게 마련이다.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나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은 성격이나 습관은 한 번 들이면 여간해서는 고치기 힘들다는 뜻으로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대표하는 속담이다. 속담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삶의 지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진실을 담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가지고 있는 연구 공식이 있다. 즉 B=f(P×E)이다. 여기서 B는 행동(Behavior), P는 개인(Person)이고 E는 환경(Environment)이다. 이 공식을 편하게 설명하면, 행동은 개인적 변인(성격)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성격이 변한다거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 정확히 말하면 행동이 변하는지 여부를 말하는 것이다. 성격이 동일하다고 해도 환경이 변하면 당연히 행동이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성격을 변화시키는 방법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환경에는 외부 환경과 내부 환경이 있다. 외부 환경은 말 그대로 개인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환경을 말한다. 행동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는 무엇보다 먼저 중요한 인간관계를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경우, 또 이로 인해 부모가 되는 경우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변할 수 있다. 결혼 안 한 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대개 어머니들이 하는 비난 중에 “너도 시집가서 딱 너 닮은 딸 낳아 봐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부모가 되기 전에는 아무리 설명해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또 다른 환경으로는 남자들의 경우 군대에 갔다 오면 변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남자에게 군대는 부모를 떠나 처음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의미가 크다. “남자는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다.
그리고 내부 환경은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에 마음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상식적인 일이다. 현대 불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고승 중 한 분으로 추앙받는 성철은 많은 일화와 깨우침을 남긴 분이다. 그중 잘 알려진 것은 “팔만대장경의 내용은 모두 마음 심(心)자 한 자 위에 놓인다”는 것이다. 구약성서 '잠언'에도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이만큼 내부 환경인 마음이 어떤지는 변화에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상담이나 심리치료도 한마디로 내부 환경인 마음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다. 성서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예수의 비유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한 농부가 들에 나가 씨를 뿌렸다. 그런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어떤 씨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져 흙이 깊지 않으므로 곧 싹이 나왔으나 해가 돋자 뿌리를 박지 못한 싹은 타서 말라 버렸다.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가시나무가 자라 그 기운을 막았다. 그러나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었다.”

이 비유에도 잘 나와 있듯이, 좋은 씨를 뿌린다고 자동적으로 좋은 결실을 거두는 것이 아니다. 좋은 씨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먼저 옥토(沃土)에 씨를 뿌려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는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밭을 간다. ‘땅 엎기’라고도 부르는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먼저 ‘땅 펴기’를 하기 위해서다. 1년 이상 묵혔거나 겨울을 나며 굳거나 질어진 토지를 잘고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작물 뿌리가 내리기 좋게 만든다. 또 ‘거름 피기’를 한다. 이 작업은 미리 지면에 뿌려놓은 퇴비나 화학비료 등을 골고루 퍼트리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작업은 ‘돌 제거’다. 크고 작은 돌들이 지면으로 나오는데 이 돌들을 제거해야 작물들의 생장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부모나 교사의 충고나 조언이 효과가 있으려면 그것이 얼마나 옳은 내용인지보다 그 충고나 조언을 받는 당사자의 마음밭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충고라도 마음밭이 길과 같다면 새가 와서 쪼아 먹는 것처럼 질이 나쁜 친구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 만약 마음의 밭이 흙이 많지 않은 돌밭과 같다면 싹은 나오더라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말라 죽는 것처럼 작심삼일(作心三日)로 오래 견디지 못한다. 또 마음의 밭이 가시덤불과 같다면 가시나무가 자라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산만하고 한 곳에 주의를 집중하지 못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녀나 학생의 마음밭에 돌덩이가 있는지 점검부터 하는 것이다. 우리 말에도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를 최소한 하나씩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비유적으로 말한다. 아마도 그 돌덩이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로는 부모가, 때로는 배우자가, 때로는 자녀나 친구가 돌덩이가 될 수 있다. 또는 어렸을 때 받은 언어적 혹은 신체적 폭력이 마음의 짐이 되었을 수도 있다.

부모나 교사는 자녀나 학생에게 좋은 씨, 즉 알맞은 충고나 조언을 하기 전에 그들 마음밭의 상태를 점검해 씨를 뿌려도 되는 상태인지 확인해야 한다. 경작해서 옥토로 만든 후에 씨를 뿌려야 한다. 그래서 경험 많은 농부는 반드시 밭을 경작한 뒤에야 씨를 뿌린다. 농부의 경험과 지혜를 마음밭에도 적용해야 한다.

종교심리학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거대한 모순(grand paradox)”이라는 현상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종교는 인간에게 평화와 치유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극단적 갈등과 폭력을 야기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특정 종교를 믿은 기간과 강도는 심리적 성숙과 관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앙 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심리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신앙 생활의 기간과 믿음의 강도는 오히려 본인이 평소 가지고 있는 편견을 강하게 하고 배타적 성향을 강화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개신교나 천주교뿐만 아니라 불교 등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을 '거대한 모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모든 종교의 핵심은 “이웃 사랑”이지만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비종교인보다 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종교를 믿은 기간과 심리적 성숙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종교 집회에 참석하고 수없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설교나 설법을 듣는데 왜 인간적 성숙과는 상관이 없을까?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상담을 공부하고 경험하는 필자로서는 마음밭을 경작하지 않고 좋은 씨만 뿌리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종교 지도자들은 좋은 말씀만 전하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자동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성경이나 불경에는 참으로 좋은 말씀들이 가득 차 있다. 비록 종교적 경전은 아닐지라도 '논어'나 '맹자' 또는 '명심보감'이나 '채근담'에 이르기까지 착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심어주려는 동양의 고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런 좋은 내용들을 읽고 외운다고 해서 기대한 만큼 진정한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이런 경전을 읽는다고 마음밭이 경작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밭에 돌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경작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을 뿐이다. 하지만 경작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닫는 것과 실제로 경작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공염불인 경우가 많다. 먼저 마음밭을 옥토로 바꾸는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은 각자 자신의 몫이다. 상담이나 정신치료는 그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담을 꼭 전문가가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래상담’이나 ‘동료상담’을 통해 얼마든지 밭갈이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 상담 교육이 초등학교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갈등이 꽤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현상을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타협하라는 지당한 말씀들을 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한국 사회의 갈등은 해결될 것이다. 아니 시작부터 염려스러운 갈등 상황 자체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논리와 이론적인 공부만 해서는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삶은 수학 문제처럼 공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먼저 마음속에 있는 갈등의 원인을 찾고 그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마음밭을 먼저 경작해 옥토로 만드는 ‘밭갈이’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