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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전망대] 가계부채 2000조의 그늘…‘빚으로 쌓은 성’, 국가 경제 뇌관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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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전망대] 가계부채 2000조의 그늘…‘빚으로 쌓은 성’, 국가 경제 뇌관이 되다

가계부채, 기업채무 국가채무보다 더 많아
GDP의 90%, 세계적인 ‘가계부채 고위험국’…기업보다 가계가 더 취약
고금리·집값 하락 땐 ‘제2의 외환위기’ 우려…‘영끌 불패’ 환상 깨야
사진=오픈AI의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일컬어 흔히 ‘부채경제’라고 부른다. 경제가 빚에 기대는 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나온 말이다. 이제는 ‘빚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가 됐고, ‘빚 권하는 사회’가 됐다.

경제가 성장하고, 지폐를 마구 찍어내면서 통화량도 폭발하듯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은 일상이 됐다. 시중에 돈이 넘치니 쉽게 빌려주고, 쉽게 빌릴 수 있게 됐다. 빚더미 위에 쌓아 올린 아슬아슬한 풍요다.

경제성장기에는 빚이 투자를 북돋우는 양념이었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진 부채는 도리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족쇄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어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충격이 경제와 금융, 가계와 정권을 혼란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겪은 대표적인 ‘블랙스완(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다. 국가 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기업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어 대량실업 사태가 터지며 가계 파산이 늘었다. 기업들이 진 과도한 빚이 원인이었다.
자본주의 경제 주체는 정부, 기업, 가계로 나눈다. 빚을 지는 주체도 정부, 기업, 가계다. 이에 따라 부채도 정부부채(국가채무), 기업채무, 가계부채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가계부채를 살펴보자.

공공부문부채보다 비대한 가계 빚, 세계적인 ‘가계부채 고위험군’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Household Debt)는 20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수치에 근접했다. 국내총생산(GDP)의 90%에 이른다. 기업 여신 규모는 70% 수준으로 가계부채 비중보다 오히려 낮다.

지난해(2024년) 말 기준 국가채무(중앙·지방정부 부채)는 1175조 원으로 GDP의 46%,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한 공공부문부채는 1739조 원으로 GDP의 68% 정도다. 가계부채가 공공부문부채보다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캐나다, 스위스, 호주 등과 함께 한국도 세계적인 ‘가계부채 고위험국’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1997년 외환위기가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 다가올 위기의 진원지는 기업이 아닌 ‘가계’가 될 공산이 크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재무 건전성을 확보했지만, 가계 빚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해 왔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구성을 뜯어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가계부채의 절반이 넘는 55%가 주택담보대출이다. 나머지는 신용대출, 전세대출, 카드 대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을 가진 가계만 보면 주택담보대출 몫이 매우 크다. 가계 빚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가장 크다는 뜻이다.

자영업자가 자기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면 겉으로는 주택담보대출이지만 쓰임새는 사업자금이다. 따라서 가계대출이 아닌, 개인사업자대출 또는 기업대출로 분류한다. 이를 포함하면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더 커질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주택건설 경기와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데 이바지한 공은 부정할 수 없다. 주택담보대출 덕분에 건설사는 집을 지을 수 있었고, 누구나 분양받을 수 있었다. 주택보급률 100% 달성의 일등 공신이다. 이제는 가계의 소비 여력을 갉아먹고 내수 침체를 부추기는 거대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빚을 내서 집을 사고, 그 집값이 오르면 부가 증식된다는 믿음이 지난 30여 년 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 가계부채와 주택담보대출은 30여년 넘게 줄곧 상승 곡선을 그리며 늘기만 했다. 갈수록 커지는 가계부채는 가계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운영에도 큰 짐이다.

금리↑·집값↓·실업 ‘3중 충격’에 취약…‘영끌 불패’ 환상 버려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릴 때 가계부채를 걱정한다. 기준금리를 지나치게 올리면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가계가 무너지지 않을까, 반대로 내리면 이자율이 낮아져 가계 빚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렇듯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부채는 ①금리 급등 ②대량실업 ③주택가격 하락에 취약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이를 겪었다. 환율과 금리가 치솟았다.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으며 가장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여기에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며 많은 가정이 파탄 나는 비극을 겪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반지하 사글셋방으로 내쫓기거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다.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사면 아파트 가격은 올랐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수도권 불패론 역시 언제까지 유효할지 장담할 수 없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주택보급률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도시화율도 싱가포르나 홍콩 못지않다. 재건축·재개발 부담금은 늘어가고 있다. 인구 감소와 노동력 감소는 불 보듯 뻔하다. 이미 소도시 주택가격은 정체되거나 내림세로 돌아섰다.

전국 부채 보유 가구당 평균 대출 규모는 1억 원 후반이다. 반면 서울은 2억 원을 넘는다. 가구당 대출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실 가구 소득으로 생활비, 교육비를 충당하고 나면 대출 원금을 갚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대출 규모가 클수록 달마다 이자만 갚는 가구가 많다. 주식으로 ‘대박’이 나거나 상속·증여를 받지 않는 이상, 월급 만으로 대출 원금을 갚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계가 가장 많이 투자하는 대상은 주택이다. 따라서 가계부채에서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빚내서 집 사도 집값이 올랐다’는 생각은 지금까지다. 이대로 계속되리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장밋빛 전망보다 투자는 최악의 위험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판 ‘잃어버린 20년’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외환위기 때처럼 금리가 10% 이상 치솟아도, 집값이 폭락해도 버틸 수 있을까. 직장을 잃어도 원리금을 갚을 수 있을까. 퇴직할 때까지 대출 원금을 다 갚을 수는 있을까.

막연한 낙관론에 기대어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는 ‘영끌’ 투자 시대는 저물었다. 정부 역시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킬 정교한 로드맵을 내놓아야겠지만, 책임은 빚을 진 가계의 몫이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빚을 관리하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 그것만이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남는 생존법이다.


황상석 글로벌이코노믹 수석 전문위원 h123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