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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흙의 발언, 상상력의 즉흥성, 통제의 메시지...이천에서 만난 도자예술의 친근함과 낯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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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흙의 발언, 상상력의 즉흥성, 통제의 메시지...이천에서 만난 도자예술의 친근함과 낯섦

77개국 1,050명 작가 참여, 이천·광주·여주서 현대도자의 확장성 선봬
2m 대상작부터 소통의 오픈 스튜디오까지… 내년 2월까지 연장 전시
‘2026 경기도자 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된 이천 경기도자미술관 입구 전경. 사진=이지은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2026 경기도자 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된 이천 경기도자미술관 입구 전경. 사진=이지은 기자
도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흙으로 빚었지만, 건축물을 닮은 작품이 있고 유약이 흘러내린 흔적 자체가 하나의 표현이 된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2026 경기도자 비엔날레’ 현장에서는 도자가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지난 18일 막을 올린 이번 비엔날레는 오는 11월 1일까지 이천·광주·여주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세계 77개국에서 1,05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 공간은 국제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된 이천 경기도자미술관이다.
올해 국제공모전에는 모두 1,397점이 출품됐다. 두 차례 심사를 거쳐 대상 1점, 우수상 9점, 특별상 5점, GCB상 43점 등 모두 58점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숫자만 보면 세계 각국에서 출품된 수많은 작품 가운데 일부가 선택된 셈이다. 그러나 전시장에서는 그 숫자보다 작품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표현 방식의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26 경기도자 비엔날레’ 국제 공모전 최고상 GCB 대상은 독일 작가 데이비드 라우어의 ‘펀치카드 하우스' 작품. 사진=한국도자재단이미지 확대보기
‘2026 경기도자 비엔날레’ 국제 공모전 최고상 GCB 대상은 독일 작가 데이비드 라우어의 ‘펀치카드 하우스' 작품. 사진=한국도자재단


■ 2m 넘는 도자 구조물…유약은 ‘실수’가 아니라 '창작'


국제 공모전 최고상 GCB 대상은 독일 작가 데이비드 라우어의 ‘펀치카드 하우스(Lochkartenhaus)’에 돌아갔다.

2025년 제작된 이 작품은 높이가 2m를 넘는 대형 세라믹 작품이다. 석기와 유약, 러스터를 사용했고 손으로 형태를 만들었다.

가까이에서 작품을 바라보면 규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징이 드러난다. 작품 곳곳에 남은 색과 흔적을 볼 수 있다.

작품에 묻은 흔적 가운데 일부는 작가가 처음부터 계획한 결과가 아니다. 작가 라우어는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작업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줬고, 아이는 작품 위에 유약을 자유롭게 흘려 부었다.

예상하지 못한 색과 자국이 생겼지만, 작가는 이를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우연과 놀이를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대형 구조물이라는 무게감과 자유롭게 흘러내린 색채가 한 작품 안에서 만난다. 라우어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 한 가벼움과 무거움, 드러남과 사라짐이라는 대비도 여기에서 읽힌다.

도자 제작에서 흔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통제와 정교함의 반대편에 우연과 즉흥성을 놓은 셈이다.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에 대해 흙과 유약이라는 도예 매체의 특성이 잘 드러나면서 대형 작품을 구현한 기술력과 작가의 메시지가 조화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국제 공모전 최고상 GCB 대상 독일 작가 데이비드 라우어가 오픈 스튜디오에서 아이들과 도자 제작을 함께 하고 있다. 사진=이지은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국제 공모전 최고상 GCB 대상 독일 작가 데이비드 라우어가 오픈 스튜디오에서 아이들과 도자 제작을 함께 하고 있다. 사진=이지은 기자


■ 완성된 작품만 보는 전시는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람객에게 열어 놓았다는 점이다.

작가 라우어는 오픈 스튜디오와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을 직접 만난다. 작업과 음악, 놀이, 대화가 결합된 창작 과정을 공유하고 관람객이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과 작품을 만든 사람이 분리돼 있지 않은 것이다.

특히 ‘펀치카드 하우스’에 어린 아들이 참여했던 제작 방식은 이번 프로그램의 의미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작품을 완성된 결과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과 관계까지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현대미술에서 작가의 아이디어와 제작 과정이 작품 해석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처럼, 이번 국제 공모전 역시 ‘무엇을 만들었는가’ 뿐 아니라 ‘어떻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GCB 우수상 한국 곽윤지 작가 '잔존', 우크라이나 출생 유리 무사토프 작가 '흉상', 러시아·투르크메니스탄 출생 더 그립스 작가 '다시는 눈이 오지 않을 거야', 홍콩 출생 렁 칭만 캘리스 작가 '뼈 사이의 몸 찾아내기'. 사진=이지은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GCB 우수상 한국 곽윤지 작가 '잔존', 우크라이나 출생 유리 무사토프 작가 '흉상', 러시아·투르크메니스탄 출생 더 그립스 작가 '다시는 눈이 오지 않을 거야', 홍콩 출생 렁 칭만 캘리스 작가 '뼈 사이의 몸 찾아내기'. 사진=이지은 기자


■ 한국과 세계 작가의 시선이 한 공간에


전시장 안에서는 국가별 표현 방식의 차이도 확인할 수 있다.

GCB 우수상에는 한국의 곽윤지 작가 ‘잔존’과 이은영 작가의 ‘메타-바이오스피어’를 비롯해 러시아·투르크메니스탄, 홍콩, 튀르키예, 일본, 미국, 우크라이나 작가들의 작품이 선정됐다.

특별상에는 한국 변지원 작가의 ‘임시정원’을 비롯해 중국·홍콩·미국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됐다.

같은 흙과 유약을 사용하지만, 작품이 전달하는 이미지와 방식은 서로 다르다. 전통적인 도자의 쓰임에서 출발해 조형예술과 설치, 실험적 표현으로 확장된 현대도자의 흐름을 한 전시공간에서 비교해볼 수 있는 이유다.

올해 국제 공모전의 출품작은 1,397점이다. 이 가운데 58점이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국제 공모전 자체도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행사는 아니다. 2001년 시작해 2024년까지 13차례 진행됐으며, 그동안 매회 70여 개국에서 약 1,500명의 작가가 참여해 왔다.

세계 도예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동시에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국제공모전으로 자리 잡아온 배경이다.

대상작‘펀치카드 하우스’을 비롯한 '2026 경기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수상작 전시관 전경. 사진=한국도자재단이미지 확대보기
대상작‘펀치카드 하우스’을 비롯한 '2026 경기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수상작 전시관 전경. 사진=한국도자재단


■ 다시 보는 이색적인 전시 공간


전시장을 나서기 전 다시 ‘펀치카드 하우스’를 바라보면 처음 봤을 때와 다른 질문이 생긴다.

도자는 반드시 단단하고 완벽하게 통제된 형태여야 하는가.

작가 라우어의 작품에서는 아이가 남긴 유약의 흔적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대형 구조물의 무게감과 우연히 만들어진 색채가 한 공간에 놓인다.

이천 경기도자 미술관 제1·4전시실에 마련된 국제 공모전 수상작 58점은 비엔날레가 끝난 뒤에도 내년 2월 14일까지 전시된다.

짧은 기간의 축제를 넘어 현대 도자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 기간을 확보한 셈이다.

이번 경기도자 비엔날레의 관람 포인트는 세계 각국의 작품 숫자에만 있지 않다.

흙이라는 오래된 재료가 조형물로 커지고, 유약의 우연한 흔적이 창작의 언어가 되며, 작가와 관람객이 제작 과정에서 직접 만나는 변화에 있다.

도자기를 보러 이천을 찾았지만, 전시장을 나설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도자기가 어디까지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2026 경기도자 비엔날레는 그 답을 하나의 작품으로 제시하기보다 58개의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지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lwldms79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