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발표한 ‘아메리카 퍼스트 투자 계획’을 통해 중국 기업들의 미국 증시 상장 유지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이후 미국 내에서 중국 기업의 상장 폐지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이 계획에 따라 미국 재무부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회계 감사 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와 외국 증시 상장을 위한 기업 구조를 조사 중이다. 이에 대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지난달 중순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가능성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밝혀 상장 폐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현재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286개로 시가총액은 약 1조1000억 달러(약 1470조원)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알리바바, 징둥닷컴, PDD홀딩스 등 대형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은 홍콩 증시로의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홍콩 증시에서 1차 상장을 완료했으며 이를 통해 중국 본토 투자자들이 홍콩을 통해 주식을 거래할 수 있게 됐다. 또 중국 전기차 기업 지리자동차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자회사 지커를 상장 폐지하고 홍콩 증시로 이전할 계획이다. 중국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포니.ai도 홍콩 증시 상장을 검토 중이다.
홍콩 증시는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해 기술 및 바이오 기업의 상장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홍콩 증권거래소와 증권선물위원회는 ‘기술기업 채널’을 통해 기술 및 바이오 기업의 상장을 용이하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제도는 상장 적격성에 대한 명확한 지침 제공, 기업 비공개 IPO 신청 허용, 차등의결권 구조를 갖춘 기업의 상장 허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상장 폐지 위협은 미국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기관 투자자들이 중국 주식에 약 8300억 달러(약 1110조원)를 투자하고 있으며 이 중 약 2500억 달러(약 335조원)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에 투자돼 있다고 추산했다. 만약 상장 폐지가 현실화되면 이들 투자자들은 유동성이 낮은 장외시장(OTC)에서 거래하거나 홍콩 증시로 이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홍콩은 이러한 상황을 기회로 삼아 금융 허브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홍콩 재무장관 폴 찬은 “중국 ADR이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홍콩이 첫 번째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홍콩 증시와 규제 당국이 이를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이 금융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기업들은 미 증시 상장 폐지 위협에 대응해 홍콩으로의 이전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홍콩은 이를 통해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