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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發 관세 압박에 혼다 'HV 올인'…토요타와 손잡고 현지 생산에 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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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發 관세 압박에 혼다 'HV 올인'…토요타와 손잡고 현지 생산에 사활

트럼프 행정부발(發) 관세와 전기차 성장 둔화 이중고…미국 내 생산·공급망 현지화로 활로 모색
수익성 높은 HV 앞세워 북미 집중 공략…'적과의 동침'도 불사, 위기 속 기회 찾는다
혼다는 미국의 관세 압박과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HV 현지 생산을 대폭 늘리고, 경쟁사인 토요타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는 등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혼다는 미국의 관세 압박과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HV 현지 생산을 대폭 늘리고, 경쟁사인 토요타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는 등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다. 사진=로이터
혼다가 미국 내 하이브리드차(HV) 생산을 크게 늘리며 현지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닛케이가 지난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혼다는 이날 미국 인디애나주 그린즈버그에 있는 완성차 공장을 언론에 공개하고, 미국 내 HV 생산을 대폭 강화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공장 공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와 부품에 25%의 높은 관세를 매긴 이후 일본 완성차 업체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내 생산 확대와 공급망 현지화 의지를 대내외에 알린 행보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높은 관세 정책에 대한 대응, 최근 북미 시장의 전기차(EV) 수요 부진, 미국의 EV 보조금 축소와 환경규제 완화 같은 정책 변화에 따라 HV 중심으로 전략을 바꾼 것, 그리고 이익이 많이 남는 HV를 북미 시장에 집중적으로 생산·판매해 안정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경쟁사인 토요타 자동차에서 HV용 배터리를 공급받는 이례적인 협력까지 포함하고 있어 업계의 눈길을 끈다.

◇ 관세장벽·EV 성장 둔화, '미국 현지화'로 돌파구


혼다 인디애나 공장은 한 해 25만 대를 만들 수 있으며, 현재 주력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CR-V'와 인기 차종인 '시빅'(Civic) 등의 HV와 가솔린 모델을 하루 1000대 넘게 생산하며 공장을 완전히 가동하고 있다. 2024년 기준 공장 전체 생산량의 60%가 HV였으며, 혼다는 이 비중을 앞으로 더욱 늘릴 계획이다.

오는 9월부터는 일본 사이타마 제작소에서 만들던 미국 시장용 인기 차종 '시빅' HV 모델 생산을 인디애나 공장으로 모두 옮긴다. 이번 조치로 미국에서 팔리는 시빅 HV는 사실상 전량 현지 생산 체제로 전환된다. 나아가 혼다는 앞으로 주력 세단인 '어코드(Accord)' HV 모델의 인디애나 공장 생산도 검토하고 있어, 생산 차종을 다양하게 하고 생산 라인을 유연하게 운영해 정책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혼다 인디애나 공장의 록사나 메츠 공장장은 "HV 생산 확대가 혼다 세계 전략의 핵심"이라며, "현재 공장 전체 생산량의 60%인 HV 비중을 장기적으로 더욱 늘릴 계획이다. 가솔린차와 HV를 한 생산 라인에서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 강점을 살려 정책 불확실성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생산 현지화 전략의 가장 큰 배경은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내세워 자동차와 부품에 매긴 25%의 높은 관세다. 혼다의 미국 판매 차량 가운데 수입 비중은 약 40%로 경쟁사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부품까지 생각하면 관세 때문에 비용 부담이 크다. 혼다의 미베 도시히로(三部敏宏) 사장은 앞서 지난 13일 "중장기적으로 관세 조치가 이어진다면 미국 내 생산 능력을 더욱 늘릴 것"이라며 관세 장벽을 넘어서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인디애나 공장 HV 전초기지화…토요타와 '배터리 동맹' 구축


부품 현지 조달률을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인디애나 공장 완성차의 현지 부품 조달 비율은 80% 수준이지만, 여기에는 관세 면제 혜택이 확실하지 않은 멕시코와 캐나다산 부품이 일부 포함돼 있어 장기적으로 미국 내 조달 비중 확대가 숙제로 남아있다.

특히 핵심 부품인 HV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혼다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2025년부터 미국 안에서 만드는 HV 차량의 배터리를 기존 중국·일본 등에서 들여오던 방식에서, 토요타가 노스캐롤라이나에 새로 지은 현지 배터리 공장에서 차츰 조달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를 통해 기존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던 물량을 단계적으로 바꿔, 관세 부담을 줄이고 공급망을 안정시킨다는 계획이다.

혼다는 이 협력으로 한 해 약 40만 대 분량의 HV 배터리를 미국 안에서 조달해, 북미 HV 판매 전체를 현지 생산 배터리로 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공급망 재편은 관세 부담을 덜고, 현지 부품 사용 비율을 높이며, 일본·중국에서 배터리를 들여오는 위험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두 경쟁사의 이러한 '배터리 동맹'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빠르게 변하는 전동화 시장 환경 속에서 새로운 공급망 만들기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혼다는 2024년 미국 시장에서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난 30만8000대의 HV를 팔았으며, 이는 미국 전체 판매량(142만 대)의 22%에 해당한다. 나아가 2030년에는 전 세계 HV 판매량을 2024년보다 50% 늘린 130만 대까지 끌어올린다는 큰 목표를 세웠다. 토요타에서 공급받는 배터리는 주로 SUV 'CR-V' 등 주력 HV 모델에 쓰일 것으로 예상한다.

배터리 공급사인 토요타 역시 이번 협력을 통해 좋은 효과를 기대한다. 토요타는 북미 전동차(HEV, PHEV, BEV) 판매 확대를 목표로 약 2조 원을 들여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에 큰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지었으며, 지난 4월부터 HV 배터리 생산을 시작했다. 혼다에 공급처를 넓혀 생산 효율을 높이고 원가 경쟁력도 함께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토요타는 2030년까지 북미 지역에서 HV를 포함한 전동차 판매 비중을 2024년 40%에서 80%까지 크게 늘린다는 적극적인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혼다는 트럼프 발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공장에서 하이브리드차(HV) 생산을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혼다는 트럼프 발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공장에서 하이브리드차(HV) 생산을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로이터

◇ EV 투자 줄이고 HV 집중…'수익성 우선' 전략 선회


혼다의 HV 집중 전략은 단순히 관세 문제를 피하려는 것을 넘어, 최근 고친 EV 전략과도 깊이 관련돼 있다. 혼다는 애초 계획했던 2030년까지의 EV 투자 계획을 기존 10조 엔(약 95조9560억 원)에서 7조 엔(약 67조 1692억 원)으로 3조 엔(약 28조7868억 원)가량 줄이고, 캐나다에 지을 예정이던 EV 전용 공장 투자도 2년 미룬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전략 수정은 가장 큰 시장인 북미 지역의 EV 수요 증가세가 생각보다 더디다는 판단과 함께, 미국의 EV 보조금 축소, 환경규제 완화 같은 정책·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S&P 글로벌 모빌리티는 2030년 미국의 HV 판매가 2024년보다 2.5배 늘어난 412만 대에 이르러, 전체 신차 판매의 25%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혼다의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한다.

반면, 혼다가 현재 팔고 있는 HV 모델은 꾸준한 원가 절감 노력으로 차 한 대에서 얻는 이익이 기존 모델보다 1.5배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25년 3월 마감된 회계연도 기준 혼다의 전 세계 HV 판매량에서 북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44%로, 불과 5년 전인 2019년 1분기의 16%에 견줘 크게 늘었다. 혼다는 이처럼 '돈이 되는' HV를 주력 시장인 북미에 집중적으로 투입해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한 연설에서 "혼다가 인디애나주에 새 공장을 발표했다"고 말해 혼다의 추가 투자 기대감을 높였으나, 혼다 쪽은 공식으로 새 공장 건설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번 인디애나 공장 생산라인 공개는 이러한 시장의 오해를 풀고, 미국 시장에 꾸준히 투자하려는 뜻을 분명히 하려는 담긴 의도로 풀이된다.

◇ 노동력 확보·공급망 안정 '첩첩산중'…생존 위한 고삐 죄기


그러나 미국 내 생산 확대 전략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숙련된 노동력 확보다. 혼다 인디애나 공장에는 현재 26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지만, 공장이 있는 인디애나주에는 이미 토요타와 스바루 같은 다른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의 생산 공장도 있어 실력 좋은 인력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미베 도시히로 사장을 비롯한 혼다 경영진은 이에 대해 "미국 공장의 가동 체제를 기존 2교대에서 3교대로 바꾸거나 주말 가동을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며 생산량 늘리려는 뜻을 비쳤지만, 구체적인 대상 공장이나 시행 시기는 따로 밝히지 않았다.

공장 터 잡기 자문 전문기업인 글로벌 로케이션 스트래티지스(GLS)의 디디 콜드웰 최고경영자(CEO)는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이 바라는 높은 수준의 품질과 정교한 운영 기준을 현지에서 똑같이 이루려면 무엇보다 인재를 키우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멕시코·캐나다 사이의 관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북미 안에서의 생산·조달 체계로의 전환이 빨라지는 가운데, 일본·중국 등지에서 들여오던 부품과 배터리를 현지에서 만드는 것은 관세와 물류비 부담을 더는 효과가 있지만, 현지 생산 확대가 시급한 문제로 떠오른 만큼 앞으로 비용 효율과 제품 품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 혼다에게 중요한 숙제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공급망 재편과 현지 생산 강화 움직임은 혼다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지난 4일부터 기존 10%였던 추가 관세를 20%로 올렸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산 자동차에 대해서도 현재 2.5%인 관세를 최대 10배인 2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세가 현실화한다면, 한 해 약 130만 대의 차량을 미국에 수출하는 일본 자동차 업계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일본 주요 자동차 6사에 미치는 영향만 3조 엔(약 28조7868억 원) 규모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동차는 공급망 범위가 매우 넓어 HV용 배터리를 포함한 여러 부품 역시 관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혼다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사이에 25%의 관세가 현실이 된다면 한 해 7000억 엔(약 6조7169억 원) 규모의 직접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도 생산기지를 옮기는 등 공급망을 다시 짜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제너럴 모터스(GM)는 지난 1월부터 '쉐보레' 브랜드의 EV 등을 만드는 멕시코 북부 공장의 생산 규모를 줄였으며, 유럽의 스텔란티스 그룹 역시 지난 2월 SUV '지프'를 만드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공장 가동을 잠깐 멈추는 대신, 문을 닫았던 미국 일리노이주 공장을 다시 가동해 중간 크기 픽업트럭을 만들기로 했다.

토요타, 혼다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 내 생산과 조달 협력을 강화하며 관세 위험과 정책 변화에 함께 대응하는 가운데, 이러한 세계 기업들의 생산 전략 수정과 새로운 전략적 제휴와 경쟁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