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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달라이 라마, 90세 생일 앞둔 '폭탄 선언'…"내 후계자는 중국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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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달라이 라마, 90세 생일 앞둔 '폭탄 선언'…"내 후계자는 중국 밖에 있다"

中 "후계자 지명은 우리 권한" 황금항아리 내세우자 "中 지명자 거부하라" 맞불
2011년 정치권력 이양·탐색 재단 설립…'달라이 라마 없는 티베트' 차분히 준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2024년 6월 23일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2024년 6월 23일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90세 생일을 앞두고 자신의 후계자 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어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 지명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태도를 공공연히 밝혀온 만큼, 이번 발표는 티베트의 미래와 국제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1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는 이번 주 인도 다람살라에서 열리는 사흘간의 주요 불교 지도자 회의에서 연설에 나선다. 1959년 중국의 압제를 피해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는 오는 7월 6일 90세 생일을 맞는다. 그는 이 시기를 즈음해 자신의 사후 영적 유산을 이을 후계자를 어디서 어떻게 찾을지에 대한 단서를 공유하겠다고 예고했다.

달라이 라마는 지난 월요일 자신의 장수를 기원하는 추종자들에게 "남은 생을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며 "달라이 라마 제도의 지속을 논의할 수 있는 일종의 '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자유 세계 환생' vs '황금항아리'... 후계자 놓고 정면충돌
티베트 불교는 깨달음을 얻은 고승이 환생을 통해 영적 대를 잇는다고 믿는다. 달라이 라마 본인도 두 살 때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자신의 다음 환생자가 중국 영토 밖, 아마도 망명지인 인도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으며, 중국 정부가 지명하는 후계자는 절대 인정하지 말라고 추종자들에게 당부해왔다. 최근 저서와 공식 발언에서는 "전통적 임무를 이어가기 위해 '자유 세계'에서 환생할 것"이라고 명시하며 베이징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후계 구상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반면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 독립을 추구하는 분리주의자로 규정하고, 그의 후계자 지명은 반드시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청나라 시기부터 이어진 '황금항아리 추첨' 방식 등 국가 주도의 환생 절차를 법적·전통적 근거로 내세우며 달라이 라마의 환생도 자신들이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지난 3월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을 대표할 권리가 없는 정치적 망명자"라고 비난하며, 티베트와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인정해야만 그의 미래를 논의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티베트 망명 정부는 이 제안을 일축했다.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 의회의 돌마 체링 테이캉 부의장은 "중국은 모든 기회에 달라이 라마를 비방하면서도, 그의 환생 문제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규칙을 만들려 하고 있다"며 "중국은 이 제도를 정치 목적으로 장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달라이 라마의 화신은 티베트의 문화와 종교, 국가의 생존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안녕을 위해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달라이 라마는 환생 제도 자체의 존속 여부도 티베트인과 고승들의 논의를 거쳐 결정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 90세 생일 행사 '국제적 이목'… 할리우드 스타·印 장관도 참석

티베트의 최고 국가 신탁인 툽텐 응오둡 역시 "원래 승려가 살아있을 때 환생을 논하는 경우는 없지만, 중국 정부가 간섭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2019년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종교 회의에는 100명이 넘는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이 참석하며, 티베트 불교의 오랜 신자인 할리우드 배우 리처드 기어도 자리를 함께할 예정이다. 달라이 라마는 7월 5일 망명 정부가 주관하는 기도회에 참석하고, 6일 생일 기념행사에서 약 30분간 연설한다. 이 행사에는 인도의 키렌 리지주 의회 담당 장관 등 인도 고위 관리들도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달라이 라마의 이번 발표를 두고, 티베트 불교의 독립성과 문화 정체성을 지키려는 상징적 저항이라는 해석과 함께 중국뿐 아니라 인도, 미국 등 국제 사회도 그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 368년 전통 깨고 정치권력 이양…'포스트 달라이 라마' 대비

그가 지난 2011년, 368년간 이어져 온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이양하며 스스로 정치권력에서 물러난 것은, 망명 정부와 달라이 라마 재단(Gaden Phodrang Foundation)이 후계자 탐색 체계를 마련한 것과 함께 자신이 없는 미래를 대비한 조치로 풀이된다.

테이캉 부의장은 "그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 올 것"이라며 "존자께서는 그날을 위해 우리를 정말로 준비시키셨고, 마치 그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게 하셨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