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토요타·정부 연합…TSMC보다 빠른 공정으로 고객사 확보 속도
ASML·도쿄일렉트론 등 장비·소재사 총동원…공급망 전체가 기술 뒷받침
ASML·도쿄일렉트론 등 장비·소재사 총동원…공급망 전체가 기술 뒷받침

◇ '제로에서 성공'…기술보다 앞선 실행력
2나노급 시제품은 세계에서도 TSMC 등 일부 기업만이 생산 계획을 세운 수준이다. 특히 라피더스는 생산 속도에서 기존의 반도체 기업들을 압도했다. IBM과 사전에 기술 조건을 조율해 시간 절약에 나섰고, 웨이퍼를 한 장씩 처리하는 '완전 매엽식' 생산 라인을 처음 도입했다. 공정 과정에선 딥러닝 기반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장비 상태와 신호를 실시간으로 반영했다. 이 같은 시스템 덕분에 일반적으로 6개월 이상 걸리는 시제품 제작 기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할 수 있었다.
설비 설치 과정도 빨랐다. 네덜란드 ASML의 최신 EUV 노광 장비는 통상 6개월 걸리는 설치 기간을 4개월 이내로 줄였다. 장비팀과 운송 시스템 업체들이 현장에서 밀착 협력했다. 라피더스를 찾은 네덜란드 정부 관계자는 "소설 같은 속도"라고 말했다.
시제품의 품질 역시 기대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이케 사장은 "이번 제품은 처음 만든 트랜지스터에서 바로 전류가 흐른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개발팀은 2,000개 이상의 공정을 조정하며 매일 조건을 바꿔가며 테스트를 반복했다.
◇ 인력·속도·공급망…일본형 모델이 다시 움직인다
이번 성과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에서 비롯됐다. 라피더스에는 1980년대 일본 반도체 호황기를 경험한 베테랑 기술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들은 실험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실제 생산에 옮기는 데 강점을 가진 인력들이다. 여기에 신입 인재 유입도 빠르게 늘고 있다.
초기에는 '아저씨 집단'이라는 조롱도 있었지만, 2023년부터 매달 30명씩 채용을 이어가며 빠르게 체질을 바꿨다. 정규직 인력은 800명, 파견 인력을 포함하면 1000명을 넘어섰다. 평균 연령은 48세로 낮아졌다.
젊은 연구자들은 IBM과의 공동개발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4년 입사한 첫 신입사원 8명은 1개월 만에 미국 뉴욕주 오버니의 IBM 연구소에 파견됐다. 공동개발 현장에서 라피더스 측 기술자가 제안한 설계 방식이 채택된 사례도 있었다. 라피더스는 단순한 기술 수혜자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라피더스는 30~40개 기업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고객사 수요에 맞춘 설명회를 따로 열고 있으며, 시제품 결과를 바탕으로 설계 지원 키트(PDK)를 2025년 안에 제공할 계획이다.
고이케 사장은 "우리는 TSMC와 경쟁하지 않는다.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대체 공급처로 고객에게 선택받는 것이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TSMC의 미국 애리조나 공장은 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물류와 관세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
양산 시점은 2027년으로 설정돼 있다. 라피더스는 이미 공정 내 각 조건의 조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수율 확보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자금 조달도 중요 과제로 남아 있다. 라피더스는 정부의 재정 지원 외에 민간에서 1000억 엔 이상을 유치할 계획이다. 최근 시제품 개발 성공 이후 출자나 융자를 검토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고이케 사장은 "투자자들의 신뢰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인재 확보는 여전히 큰 도전 과제다. 설계·생산관리 인력이 TSMC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도쿄대에 공동연구소를 연 TSMC, 마이크론과 일본 11개 대학이 공동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등 글로벌 기업들의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대응해 라피더스는 최첨단반도체기술센터(LSTC)와 함께 5년간 200명의 반도체 설계 인력을 양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선발된 인력은 미국 반도체 스타트업인 텐스트레인트의 실무 현장에서 AI 반도체 설계를 경험하게 된다.
라피더스는 앞으로 신입과 경력직의 비율을 1대1로 맞추고, 양산 단계에서는 2,000명 이상 규모로 인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고이케 사장은 "지금은 1.5합쯤 올라왔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성공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