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브릭스 정상회담 불참, EU 정상회담 단축, 미중 정상회담도 계속 늦어져

◇ EU 정상회담 하루 만에 종료...외교 의전도 격하
지난달 24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EU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했으나,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서 국빈급 환영식 대신 셔틀버스로만 영접받았다. 당초 이틀 일정으로 계획됐던 정상회담은 하루로 단축됐고, EU 대표단은 예정보다 일찍 베이징을 떠났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회담에서 중국에 시장 개방과 산업 과잉 생산능력 해결을 촉구했으나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실패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둘러싼 지정학적 견해의 차이는 유럽 지도자들의 지속적인 불만을 사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최근 중국이 값싼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러시아의 전쟁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 시진핑 브릭스 불참, 10년 만에 첫 결석
더욱 주목받는 것은 시진핑 주석이 이달 초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에 불참한 점이다. 이는 미국의 지배력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표방해온 신흥 경제국 모임에 시 주석이 참석하지 않은 10여 년 만의 첫 사례다.
중국 당국은 시 주석의 브릭스 불참 이유를 '일정 충돌'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분석가들은 내부 정치 혼란과 증가하는 경제 압력으로 인해 그가 글로벌 의제 추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형사재판소 체포 영장으로 인해 화상으로만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브릭스의 핵심 지도자들이 모두 빠지면서 정상회의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브릭스는 2009년에 설립됐으며 처음에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이 포함됐다. 이듬해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가입했고, 지난해에는 이집트,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로 더욱 확장됐다. 그러나 올해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만이 합류해 확장 속도가 둔화를 보였다.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탈달러화'를 추진했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미국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현지 통화 무역을 지지했다. 그러나 신개발은행 자금의 약 70%가 여전히 달러 표시로 유지되고 있으며, 많은 브릭스 회원국 통화들이 미국 달러에 고정되거나 의존하고 있어 실질적 성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브릭스 내부 균열도 확대되고 있다. 인구 기준 가장 큰 브릭스 회원국인 인도는 남반구 내에서 중국의 리더십에 공개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중국은 인도 내 폭스콘 아이폰 공장에서 300명 이상의 엔지니어를 철수시켰고, 인도는 대만, 미국, 한국, 일본에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 6월 인도는 인더스 강 조약을 중단하고 중국의 파키스탄 내 댐 건설에 항의하며, 카슈미르 공격 문제로 상하이협력기구 공동성명 승인을 거부했다.
상하이협력기구도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추가된 이후 이란(2023년)과 벨라루스(지난해)만이 가입해 총 회원국은 10개국이 됐다. 회원국의 거의 절반이 환전 불가 통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러시아, 이란, 벨라루스 등 3개국은 강력한 국제 제재를 받고 있다.
◇ 트럼프와 정상회담도 오리무중
글로벌 경제와 안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두 나라 정상의 만남이 계속 연기되고 있다. 트럼프의 집권 2기 출범이 올해 1월 시작된 이래 여러 차례 만남에 대한 기대가 제기되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장관급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양국 정상의 만남은 상호 견해 차이로 계속 늦어지고 있다. 10월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 회동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 복잡한 중국 내부 속사정
중국의 외교 어려움은 국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 6월 10일자 인민일보의 사회복지 개혁 기사는 시진핑 사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리창 중국 총리는 최근 헌법 충성식에서 시진핑을 언급하지 않고 연설했다. 지난 6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의 회담도 고위 보좌관이나 언론 보도 없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런 흐름을 주목하면서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미국 달러에 대한 지속적인 의존과 눈에 띄는 내부 균열로 인해 통일된 반서방 블록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구상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이 중국 주도 경제 블록의 매력을 약화시키면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도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야망은 점점 더 불확실해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