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트럼프 대공황과 스무트-홀리 관세폭탄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트럼프 대공황과 스무트-홀리 관세폭탄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경제학 박사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경제학 박사
1929년 10월 24일.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흥청거린 뉴욕 증시에 돌연 빨간불이 들어왔다. 너도나도 주식을 마구 내다 파는 매도 폭탄이 터진 것이다. 시가총액이 순식간에 90% 증발해 버렸다. 미국 뉴욕증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부터 10년 이상 초호황을 누려왔다. 연일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면서 오르고 또 올랐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건물.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건물. 사진=로이터

당시 최고의 경제학자로 명성을 날린 어빙 피셔 예일대 교수는 “미국 주식시장은 앞으로 꺼지지 않는 영원한 고점에 도달했다”고 갈파했다. 1920년대 주식에 취한 뉴욕증시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전해주는 유명한 말이다. 영어 원문으로는 'Stock prices have reached what looks like a permanently high plateau.'로 돼 있다. 이 말은 '버블(거품)'을 경고하는 교훈으로 지금도 경제학 교과서에 올라있다. 통화주의 경제학의 뿌리가 된 그 유명한 화폐 교환방정식 'MV=PT'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어빙 피셔 교수는 수학자보다 수학 능력을 바탕으로 복잡한 경제 현상을 수식으로 단순화하면서 경제학을 정치한 과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최초의 계량경제 학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태두인 셈이다. 시카고 학파로 유명한 밀턴 프리드먼이 그의 제자다.

주식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어빙 피셔의 이른바 '영원한 고점' 발언이 나온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뉴욕증시는 거꾸러졌다. 경제사학자들은 뉴욕증시가 폭락하기 시작한 바로 그 10월 24일을 경제 대공황의 포문을 연 '검은 목요일'로 기록하고 있다. 어빙 피셔는 이 상황에서 모든 재산을 주식에 퍼부었다. 주가가 곧 되살아날 것이라는 데 베팅한 것이다. 주가는 계속 떨어졌다. 어빙 피셔는 결국 패가망신했다. 투자한 주식이 깡통으로 전락하면서 살던 집까지 넘어갔다. 경제 대공황으로 직격탄을 입은 학자는 어빙 피셔만이 아니었다. 시장 만능주의를 외친 고전주의 학파 전체가 몰락했다. 경제학의 일대 위기였다.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쑥대밭이 되자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건국 이래 최고 호황기를 맞이했다. 유럽 복구를 위해 물자를 공급한 미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이런 가운데 1920년대 초반 미국은 감세 정책을 펼쳤다. 그 자금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리면서 활황을 보였다. 미국 증시는 1921년 이후 8년 동안 상승세를 달렸고, 수많은 미국인이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증권가로 몰렸다. 대출이 쉬워 빚 내 주식 투기를 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하루 만에 주가가 대폭락 하리라고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향후 12년 동안 전 세계는 대공황에 빠졌다. 주식과 채권 시장의 붕괴로 기업들이 줄도산했다. 대출을 회수하지 못한 은행들은 문을 닫았다. 예금주들은 맡겨둔 돈을 찾기 위해 은행 앞에 모여들었고 대량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가 발생했다. 기업과 금융권이 무너지자 수많은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은 엄청난 실업난에 빠졌다. 미국은 1932년 기준 실업자가 무려 1300만 명에 이르렀다.

뉴욕증시가 흔들린 가장 큰 이유는 과도한 밸류에이션이었다. 주가가 계속 오르다 보니 기업에는 돈이 넘쳐 났다. 이 돈으로 투자를 늘리면서 과잉공급이 야기됐다. 과잉공급은 재고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졌다. 재고가 늘면서 기업의 자금줄이 막혔다. 판로가 막힌 과잉투자는 결국 기업 도산과 뉴욕증시 폭락으로 이어졌다. 당시 미국을 이끈 집권 공화당과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폭증하는 재고를 해소한다는 이유로 관세 카드를 뽑아 들었다. 무려 49%의 관세로 외국산 제품의 미국 시장 진입을 막은 것이다. 이것이 그 악명 높은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이다. 법안을 발의한 리드 스무트 상원의원과 윌리스 C. 홀리 하원의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30년 관세법(Tariff Act of 1930)이라고도 부른다. 후버 대통령이 1930년 6월 17일 공포했다.

이 법은 외국 수입품에 고관세를 부과해 미국 경제를 외국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표면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실제로 의도한 것과 정반대 효과를 가져왔다. 이 법은 국내 생산 회복 후 경제 회복을 방해하고 무역을 저해했다. 대공황을 오히려 악화시킨 것이다. 경제학계에서는 스무트-홀리 관세가 대공황의 핵심 요인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미국 의회 역사상 가장 재앙적인 법이다. 전 세계 정부는 외국 상품에 대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관세, 수입 쿼터, 환전 통제'와 같은 다양한 무역 제한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제한은 상당한 양의 양자 무역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 큰 긴장을 유발해 대공황 기간 동안 주요 수출입 감소를 일으켰다. 스무트-홀리 관세는 미국을 대공황으로 몰고 가는 기폭제가 됐다. 미국의 교역 상대국들이 자체 보복관세를 부과해 미국의 수출과 세계 무역량이 급락했다. 대공황 쇼크는 관세 폭탄이 터진 1930년부터 1933년까지 가장 극심했다. 전 세계가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다. 경제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뉴딜정책 등이 나오기도 했으나 한 번 터진 봇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쇼크는 결국 2차 대전으로까지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법원이 상호관세를 취소하면 대공황이 올 것이라며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법원이 상호관세를 취소하면 대공황이 올 것이라며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악몽 같은 대공황의 망령이 요즘 워싱턴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법원이 관세를 위법하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 경제가 '대공황'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11일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제출한 서한에서 정부가 패소할 경우 '1929년식 결과'를 초래해 국민들이 집을 잃고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공적 의료보험)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29년은 미국에서 대공황이 시작된 해다. 트럼프 대통령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법원이 우리의 관세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린다면 대공황이 올 것"이라며 자기가 부과한 상호관세 등의 효력을 놓고 심리 중인 사법부를 압박했다.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USCIT)은 지난 5월 28일 관세를 부과할 배타적인 권한이 의회에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시행한 상호관세의 철회를 명령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바로 항소하면서 항소법원이 USCIT 판결의 효력 정지를 결정한 상태다. 이 사건은 항소심 재판부에 계류 중이다. 최종 결정은 연방 대법원에서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으로 하여금 상호관세 취소 판결을 내리지 못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여론을 선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세계 경제 대공황은 뉴욕증시 폭락의 책임을 엉뚱하게 외국산 제품의 수입에 돌린 후버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촉발했다. 상호관세 취소 판결을 내리면 대공황이 온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대공황이 온다면 그것은 법원 탓이 아니라 미국의 경쟁력 약화 책임을 다른 나라에 돌리면서 관세 폭탄을 터뜨린 트럼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