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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국, 미국산 반도체 겨냥 '쌍끌이 조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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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국, 미국산 반도체 겨냥 '쌍끌이 조사' 착수

아날로그 IC 덤핑·차별 정책 동시 겨냥…TI·ADI 등 정조준
무역협상 앞둔 '계산된 반격'…글로벌 공급망 불안 재점화
미중 반도체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중국이 미국산 아날로그 IC에 대한 '쌍끌이 조사'에 착수했다. 무역 협상을 앞둔 중국의 반격으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미중 반도체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중국이 미국산 아날로그 IC에 대한 '쌍끌이 조사'에 착수했다. 무역 협상을 앞둔 중국의 반격으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반도체 전선에서 다시 격화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각) 웹프로뉴스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미국산 아날로그 반도체에 대한 반덤핑 조사와 자국 기업을 향한 차별 정책 조사를 전격 개시했다. 고위급 무역 협상을 코앞에 둔 시점에 나온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압박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성격이 짙어,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또 한 번의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이번 조치는 미중 무역 갈등이 한층 심화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아날로그 반도체·불공정 정책 '정조준'


중국 상무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두 건의 조사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을 겨냥한다. 첫 번째는 미국에서 수입하는 특정 아날로그 집적회로(IC) 칩에 대한 반덤핑 조사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스마트폰, 자동차, 산업 장비 등 거의 모든 전자기기에서 빛이나 소리 같은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거나 처리하는 핵심 부품으로, 미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해왔다. 이번 반덤핑 조사는 미국 기업들이 제품 판매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춰 중국 내수 시장에 피해를 주었다는 혐의에 따른 것이다.

업계는 이번 조치가 세계 1, 2위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와 아나로그디바이스(ADI)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분석한다. 중국 상무부가 이들 기업의 덤핑 혐의를 확정하면,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물리거나 수입을 제한하는 등 강력한 제재가 뒤따를 수 있다.

두 번째 조사는 중국 반도체 기업에 영향을 미친 미국 정책에 대한 '반차별 조사'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시행해 온 수출 통제, 중국 기업의 미국 기술 접근 차단, 투자 제한 같은 조치가 자국 기업을 차별하고 불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든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조사는 이러한 미국의 정책들이 국제 무역 규범에 부합하는지 공식적으로 따져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시기적으로 매우 전략적인 이번 조치는 무역 협상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중국의 계산된 압박 전술로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수입품에 최대 300%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위협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2025년 2월부터 이어진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에 맞서 중국은 미국산 에너지·농산물 보복 관세, 희토류 수출 규제 등으로 대응 수위를 높여왔다. 이번 조치는 단순 보복을 넘어 상대의 약한 고리를 겨냥하는 정교한 전략으로 진화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공급망 충격과 기술 분절 가속화


중국의 이번 조치가 가져올 파급효과는 양국 관계를 넘어 세계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위협한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조립 생산 기지에서 차지하는 압도적인 역할을 생각할 때, 미국산 칩에 관세를 물리면 이는 세계 전자제품 제조업체의 비용 상승과 공급망 지연을 일으킬 수 있다.

더 나아가 반차별 조사는 국제 무역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근거로 취하는 무역 제한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어겼는지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미국 기업들은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중국 시장 접근성이 떨어져 매출 감소와 경쟁력 약화라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경우 중국 시장 매출 비중이 상당해, 조사 결과에 따라 큰 타격이 예상된다.

발표 직후 뉴욕 증시 시간 외 거래에서 반도체 관련 지수들이 일제히 하락하며 금융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업계 원로들은 이러한 흐름이 결국 세계 기술 표준과 공급망이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나뉘는 '기술 생태계의 분절(bifurcation)'을 재촉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제 세계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과 고도의 위험 관리를 요구받고 있다. 세계 혁신과 경제 성장을 담보로 한 양국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