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 회수 막히자 '좀비 펀드' 속출…출자자 불만 폭발
대형사는 다각화로 활로 모색, 중소형사는 고사 위기…양극화 심화
대형사는 다각화로 활로 모색, 중소형사는 고사 위기…양극화 심화
이미지 확대보기한때 시장을 주름잡던 '미다스의 손'들은 자금 조달에 고전하고 투자금 회수는 요원해지면서 출자자(LP)들의 불신은 최고조에 달했다. 일부 운용사는 '이미 사망 선고를 받았다'는 극단적 진단마저 나오는 가운데, 산업 지형을 뒤바꿀 거대한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투자 전문 PEF 운용사 인사이트 파트너스의 사례는 업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200억 달러(약 27조 8700억 원) 규모의 13호 대표 펀드 조성을 추진하며 야심 찬 출발을 알렸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운용사는 투자자들에게 "금리 인상 전 시장 고점에서 너무 성급하게 투자했다"는 과오를 인정하며 자본 회수에 집중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싸늘해진 시장의 신뢰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목표액을 125억 달러(약 17조 4200억 원)까지 낮췄음에도 최종 모집액은 115억 달러(약 16조 원)에 그쳤다. 물론 인사이트 파트너스는 신뢰를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약 900억 달러(약 125조 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이 회사는 올해 과거 투자금의 회수 속도를 높여, 2024년에 기록한 80억 달러(약 11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회사 대변인은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자금 분배 지연은 심각하다. 금융정보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현재 미국 바이아웃 펀드가 보유한 1만 2000여 개 기업의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는 데는 약 9년이 걸릴 전망이다. 돈이 묶이자 새로운 펀드에 대한 투자 심리도 얼어붙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현재 1만 8000개가 넘는 사모펀드가 3조 3000억 달러(약 4598조 원)의 자금을 모으고 있지만, 투자자를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토마 브라보의 올랜도 브라보 매니징 파트너는 "사모펀드는 길을 잃었다"며 "가장 똑똑한 인재들이 모인 이 산업이 가장 잘하는 본연의 모습, 즉 기업을 사고팔아 투자자들에게 훌륭한 수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분위기가 나빠지자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KKR 등 대형사 최고 경영진들은 경쟁사들의 줄도산을 공개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아폴로의 짐 젤터 사장은 이를 '자연스러운 도태' 과정이라 칭했다. 채용 전문업체 셀비 제닝스의 찰스 윌슨 수석 부사장은 "많은 PE는 이미 죽었지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라며 "생존 여부는 앞으로 자금 모집에 나설 때 LP들이 운용사들을 얼마나 용서해 주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내놨다.
'현금 없는 이익'’에 등 돌리는 출자자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모펀드 업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10년 이상 이어진 초저금리는 이들의 완벽한 자양분이었다. 값싼 돈으로 기업을 사들여 재무 구조를 개선한 뒤 비싼 값에 되파는 전략은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그러나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가파른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판도는 180도 바뀌었다. 자금 조달의 문이 좁아지면서 과거와 같은 수익률로 보유 자산을 처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올해 초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이 규제 완화 기대감을 키우며 거래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을 뛰어넘는 고율 관세를 발표하며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를 키웠고, 이는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을 더욱 낮추는 악재로 작용했다. 그 결과, '미소진 자금(드라이 파우더)'만 쌓여가고 있다. 베인에 따르면 올해 중반 기준 업계의 드라이 파우더는 1조 2000억 달러(약 1672조 원)에 이르며, 이 중 4분의 1은 4년 이상 묵은 돈이다.
수익률 지표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2021년 2분기 13.5%에 달했던 미국 PEF의 분기 수익률은 지난해 4분기 0.8%까지 곤두박질쳤다.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LP들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의 학습 효과가 작용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손실을 감수하고 PE 시장을 떠났던 기관 투자자들은 이후 이어진 강력한 반등 장세를 놓친 것을 크게 후회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손실을 감수하고 섣불리 발을 빼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장부상으로는 이익을 내고 있지만 현금은 돌려주지 않는 '좀비 펀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출자금 대비 분배금(DPI)' 비율이 운용사를 평가하는 핵심 잣대로 떠올랐다. 레이먼드 제임스 파이낸셜의 수나이나 신하 할데아 대표는 "DPI 지표 하나가 기관 투자자들의 최종 투자 후보 명단을 결정한다"고 단언했다.
궁지에 몰린 운용사들은 대안적 출구 전략 모색에 나섰다. 기존 펀드의 자산을 '컨티뉴에이션 펀드'라는 새 펀드로 옮기거나, 세컨더리 시장에서 펀드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미봉책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컨티뉴에이션 펀드는 운용사가 자산의 매도자와 매수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수수료만 높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텍사스 공과대학 시스템의 크리스토퍼 화이트 선임 투자 책임자는 "컨티뉴에이션 펀드는 GP가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신호"라고 꼬집었다.
다각화·체질 개선…생존 위한 각자도생
사석에서 많은 기관 투자자들은 앞으로 10년간 사모펀드 투자 기대치가 이전 10년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고 인정한다. 일부 연기금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텍사스 교원 퇴직연금은 대형 바이아웃 펀드 비중을 줄이고 30억 달러(약 4조 원) 미만의 소규모 펀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알래스카 영구 기금 역시 중견 시장 바이아웃과 유럽 투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애리조나 공공안전 요원 퇴직 시스템의 마크 스티드 CIO 또한 포트폴리오를 변경했다. 그는 중형 펀드 수를 늘리고, 건당 투자액을 과거 최대 2억 달러(약 2787억 원)에서 5000만~7500만 달러(약 696억~1045억 원)로 줄였다. 스티드 CIO는 "거대 운용사들 사이에 오만함이 스며들면서 더는 LP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며 "과거 2~3호 펀드 시절 가치를 창출했던 파트너들은 지금 요트 위에서 시간을 보낼 뿐 일상 업무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대형 운용사들은 사업 다각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폴로, 블랙스톤, KKR 등은 전통적인 바이아웃을 넘어 신용, 부동산, 인프라, 보험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원스톱 사모 시장 자산 상점'으로 변신하고 있다. 또한 기관 투자자 대신 부유한 개인 투자자나 퇴직연금(401k) 시장을 새로운 자금원으로 주목하고 있다.
반면, 순수 바이아웃에만 집중해 온 중소형 운용사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트릴랜틱 캐피털 파트너스는 목표액의 6분의 1밖에 모으지 못했고, 오넥스 파트너스, 크레스트뷰 파트너스 등 다수의 운용사가 자금 모집을 중단하거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분야는 세컨더리 시장이다. 제프리스 파이낸셜 그룹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세컨더리 시장 거래 규모는 1030억 달러(약 143조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나 급증했다. 하지만 이 시장 역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인사이트 파트너스조차 컨티뉴에이션 펀드 조성을 위해 세컨더리 시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기대만큼의 자금을 모으지 못했다. 사모펀드 업계의 기나긴 겨울이 이제 막 시작됐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