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생산량 급증에 수요 위축 겹쳐…지난해 최고가 대비 40% 하락
최대 산지 서아프리카는 병충해·노령화로 부진…공급 불안은 여전
최대 산지 서아프리카는 병충해·노령화로 부진…공급 불안은 여전

24일(현지시각) 블룸버그가 세계 코코아 시장 전문가 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는 10월 시작하는 2025-26 시즌의 코코아 생산량은 소비량을 약 18만6000톤 웃돌 것으로 나타났다. 현 시즌 예상 과잉 물량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시장의 수급 균형이 공급 우위로 뚜렷하게 기울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늘어난 공급 여력은 그간 급격히 고갈됐던 세계 재고가 회복될 결정적인 계기가 될 전망이다. 앞서 서아프리카의 공급 차질은 뉴욕 선물 시장의 코코아 가격을 3년간 4배 넘게 밀어 올렸고, 급기야 지난해 12월에는 톤당 1만2906달러(약 1800만 원)라는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최종 소비재인 초콜릿 가격의 연쇄 인상을 불렀다.
하지만 한때 천정부지로 치솟던 가격은 올해 들어 40%가량 급락해 현재 7000달러(약 976만 원)에서 7600달러(약 1060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소비자들이 비싸진 초콜릿에 지갑을 닫고, 초콜릿 제조업체들이 원가 부담을 줄이고자 조리법을 바꾸거나 대체 원료 사용을 늘리는 등 수요 위축이 뚜렷해진 탓이다. 라보뱅크의 오란 판 도르트 분석가는 지난주 유럽 코코아 포럼에서 "단기와 중기로 볼 때 가격이 하락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원투수'로 떠오른 남미…가격 급등이 증산 유도
이번 공급 개선의 진원지는 단연 남미다. 세계 1, 2위 생산국인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농가들은 정부가 정한 고정 산지 수매 가격을 받기 때문에, 시장 가격 급등이 곧바로 생산량 증대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반면 시장이 자유화한 남미에서는 가격 급등이 농가에 강력한 경작 확대 동기로 작용했고, 수년 전 심은 새로운 코코아나무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코코아콩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3대 생산국으로 떠오른 에콰도르는 수확률 개선과 신규 농장 조성에 힘입어 다음 시즌 생산량이 약 5% 늘어난 58만 톤에 이를 전망이라고 라탐 커머디티 트레이더스의 훌리오 모스코소 상업 이사는 밝혔다. 스톤엑스 그룹의 블라디미르 지엔텍 거래 담당자는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의 생산량 증가까지 더해지면, 악천후만 없다면 남미 전체 생산량이 최대 10만 톤까지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싸진 코코아콩 가격이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 역시 공급 과잉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일부 초콜릿 제조업체들이 코코아 구매량을 줄이거나 대체재 사용을 늘리면서 소비 둔화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올해 2분기 유럽, 아시아, 북미 지역의 코코아콩 분쇄량(가공량)은 모두 감소했고, 다음 분기에는 감소 폭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전망한다.
여전한 위험 요인, 서아프리카…병충해·노령화 '삼중고'
다만 서아프리카의 생산량 회복이 더딘 점은 여전히 시장의 핵심 불안 요인으로 남아있다. 이 지역 코코아 농가들은 악천후와 나무 노령화, 그리고 '부고병(swollen shoot)' 같은 작물 질병 확산과 더불어 고질적인 블랙팟병(Black Pod disease) 문제라는 삼중고를 겪으며 생산량 증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문에 응한 거래인 5명은 코트디부아르의 차기 시즌 생산량을 현 시즌과 비슷한 약 180만 톤으로 내다봤는데, 과거 최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물량이다.
거래인들은 지난 7월과 8월, 기록적으로 혹독했던 건기가 끝난 뒤 다시 비가 내리면서 토양 수분이 회복되는 현지 기상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라보뱅크의 오란 판 도르트 분석가는 "지난주 강우량이 개선되고 추가 강수 예보가 있음에도, 전반적인 날씨는 2025-26 시즌 생산에 이상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지난 두 달 날씨 탓에 생산량 전망치를 일부 낮췄을 가능성이 크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국제 코코아 시세의 급격한 변화는 국내 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직접적인 교역 관계가 크다고 보긴 어렵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은 국내 초콜릿과 관련 제과업체의 원가 부담과 최종 제품 가격에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가격 안정 국면과 중장기적인 공급량 확대는 국내 관련 산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역대급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으로 요약되던 코코아 시장은 2025-26년을 기점으로 점차 공급 과잉 국면에 접어들며 가격 안정과 산업 구조 변화를 알리고 있다. 다만 최대 생산지인 서아프리카의 불확실한 공급 상황은 언제든 시장을 다시 흔들 수 있는 지속적인 위험 요인으로 남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