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하이닉스·마이크론, HBM 집중 전환…범용 D램 공급 축소로 가격 상승 부채질
서버용 D램, PC용과 가격 격차 50%로 확대…AI 투자 업은 미주 '질주'·일본 '역성장'
서버용 D램, PC용과 가격 격차 50%로 확대…AI 투자 업은 미주 '질주'·일본 '역성장'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촉발한 기술 혁명이 반도체 메모리 시장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AI 연산에 필수인 고성능 서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핵심 부품인 D램 가격이 불과 2년 만에 두 배 넘게 급등했다. 특히 메모리 기업들이 고수익 제품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에 힘을 쏟으면서 기존 D램 공급량이 줄어든 것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는 기존 D램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부가가치 제품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있다. HBM은 이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세계적인 메모리 강자들의 전략 방향과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1일(현지시각) 미국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서버용 D램의 1기가바이트(GB)당 가격은 4.3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4분기보다 2.4달러나 치솟은 수치다. 같은 기간 PC용 D램 가격이 1.2달러 오른 2.8달러에 머물 전망인 점을 고려하면 서버용 제품의 오름세는 단연 압도적이다.
이 때문에 두 제품 사이의 가격 차이 역시 2년 전 20% 수준에서 최대 50%까지 벌어질 전망이다. PC 시장이 완만하게 회복하는 것과 달리, 서버 시장은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고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다. 이런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구글, 아마존, 메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GAFAM'으로 불리는 미국 거대 정보기술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자체 AI 모델 개발과 서비스 확장을 위해 데이터센터 건설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으며, AI 서버는 보통 일반 서버보다 2~3배 많은 D램을 쓰기에 메모리 수요가 폭증할 수밖에 없다.
AI 시대의 총아 HBM, 시장 판도 뒤흔들다
이러한 기술 우위는 높은 가격으로 이어진다. 옴디아의 미나미카와 아키라 수석 컨설팅 이사는 "HBM 가격은 같은 용량의 일반 D램과 비교해 약 5배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비싼 가격에도 AI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기에 세계적인 정보기술 기업들은 HBM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처럼 이익률 높은 HBM 시장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D램 시장의 절대 강자인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발 빠르게 생산 전략을 바꾸고 있다. 이들 기업은 상대적으로 수익이 낮은 기존 DDR4 제품 생산 라인을 줄이거나 일부 제품을 단종하고, 그 생산 능력을 HBM에 집중하며 시장의 흐름 전환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전환은 DDR4 같은 범용 D램의 공급을 점차 빠듯하게 만들고, HBM뿐 아니라 일반 D램 제품의 가격 상승 압력까지 더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메모리 중심으로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론의 수밋 사다나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최첨단 제품인 'HBM3E'는 2026년 공급 물량 대부분의 계약을 이미 마쳤다"며 뜨거운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차세대 제품 'HBM4'의 샘플 출하를 시작했으며, 업계 최저 소비 전력을 달성해 에너지 효율도 뛰어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또 "몇 달 안에 공급량과 가격이 결정될 것이며, HBM 생산 능력을 모두 팔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 전문가도 HBM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KPMG FAS의 오카모토 준 집행임원 파트너는 당분간 D램 관련 시장에서 "HBM이 수요 확대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도체 시장, 사상 첫 월 600억 달러 시대 열어
AI 서버에서 비롯된 메모리 수요는 D램 시장을 넘어 세계 반도체 시장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발표한 지난 7월 세계 반도체 판매액은 620억 7000만 달러(약 9조 2000억 엔)였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6% 늘어난 수치이자, 월간 판매액이 사상 처음으로 600억 달러를 넘어 새 역사를 쓴 기록이다. 이로써 세계 반도체 시장은 21개월 연속 지난해 같은 달 실적을 웃도는 대기록을 이어갔다.
SIA가 품목별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업계는 이런 성장의 중심에 D램을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와 AI 연산의 두뇌 구실을 하는 로직 반도체가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로직 반도체 부문에서는 미국 엔비디아 그래픽 처리 장치(GPU) 수요가 폭발하며 전체 시장 성장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지역마다 살펴보면, AI 투자를 이끄는 미국 기업들이 있는 미주 지역의 성장이 단연 돋보였다. 7월 미주 지역 판매액은 199억 1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9.3% 급증하며 전체 시장의 오름세를 이끌었다. 같은 기간 중국은 10.4%, 유럽은 5.7%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일본 시장은 36억 6000만 달러 판매에 그쳐 6.3% 줄면서 대조를 이뤘다. 이에 옴디아의 미나미카와 이사는 "일본에는 메모리나 로직 반도체를 공급받아 최종 제품을 조립하는 기업이나 공장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지적하며, AI 서버 수요 급증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제대로 타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2026년까지 이어질 오름세
반도체 업계는 D램 가격의 오름세가 적어도 2026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시장을 이끄는 AI 데이터센터 증설 수요가 탄탄한 가운데, 고성능 메모리가 필요한 5G 스마트폰 확산과 전기차·자율주행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새로운 수요가 더해질 전망이다. 반면, 막대한 투자비와 공급 과잉 부담으로 D램 생산 설비 증설은 더딘 편이어서 공급 부족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요는 많지만 공급은 한정된 지금의 오름세가 오랫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