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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삼성전자, '초격차' 회복 위해 반도체 전략 전면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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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삼성전자, '초격차' 회복 위해 반도체 전략 전면 재편

AI 시대 주도권 확보 목표…고대역폭 메모리(HBM)에 역량 집중
고객 중심주의 선언한 파운드리, '턴키 서비스'로 통합 솔루션 제공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생산 라인. 삼성전자가 '초격차' 회복을 위해 반도체 전략을 전면 재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I 시대 주도권 확보를 목표로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역량을 집중하고, 고객 중심주의를 선언한 파운드리 사업에서 '턴키 서비스'로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삼성전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생산 라인. 삼성전자가 '초격차' 회복을 위해 반도체 전략을 전면 재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I 시대 주도권 확보를 목표로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역량을 집중하고, 고객 중심주의를 선언한 파운드리 사업에서 '턴키 서비스'로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삼성전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사진=연합뉴스
'초격차 신화'마저 흔들린다는 위기감 속에서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의 판을 새로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을 중심으로 각 사업부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해 맞춤형 성장 전략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자율주행차 같은 신성장 동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2025년 반도체 '초강세장(슈퍼사이클)' 진입이 기대되는 가운데, 심화하는 기술 경쟁과 비용 압박을 넘어 미래 시장을 주도할 성장 기반을 다시 구축하려는 고강도 쇄신책이다.

15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 등 국내외 보도를 보면, 삼성전자 DS 부문은 메모리, 파운드리, 시스템 LSI 등 반도체 사업 구성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전략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 단순히 기존 전략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사업 구조와 운영 방식을 시장과 고객 중심으로 전면 재정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HBM에 '올인'…AI 메모리 왕좌 되찾는다


메모리 사업의 핵심은 단연 고대역폭 메모리(HBM)다. 차세대 AI 시장의 판도를 가를 HBM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첨단 공정 기술 기반의 제품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특히 고객사의 요구에 정확히 부응하는 적기 공급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2025년 HBM 공급량을 2024년 대비 두 배로 확대할 계획이며, 엔비디아, AMD 등 주요 고객 확보로 시장 경쟁력을 다지고 각 고객사에 최적화한 맞춤형 HBM 개발 역시 기존 일정에 맞춰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엔비디아와 긴밀히 협력해 HBM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고 생산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AI 데이터센터 시장을 겨냥해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제품군을 다각화하고 서버 중심의 판매를 강화해 매출과 수익성을 동시에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고객이 왕'…몸 낮춘 파운드리, 턴키로 승부수

위탁 생산(파운드리) 사업에서는 뿌리부터 체질을 개선한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삼성전자가 사업 성공의 열쇠가 '고객 우선주의'에 있음을 명확히 깨닫고, 기존의 공급자 중심의 경직된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고 있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외부 칩 설계 기업(팹리스)들의 다양한 요구에 즉각 대응하는 고객 중심 조직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제품군에 활용할 반도체 설계자산(IP)을 미리 확보해 고객 중심의 설계 기반을 구축하는 한편, 고질인 수율 문제를 개선하고 비용을 절감해 수익성을 최적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나아가 삼성전자는 자사의 최대 강점인 사업부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도 강화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 메모리, 첨단 패키징 역량을 하나로 묶는 '턴키(일괄 수주)'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운다. 최첨단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에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3D 패키징 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다른 회사가 모방할 수 없는 통합 해법을 제공함으로써 제품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올린다는 계산이다.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속도를 낸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차량용 전자장비 시장에 대응하려고 맞춤형 제품을 마련하고, 첨단 공정의 핵심 경쟁력 지표인 전력·성능·면적(PPA)을 꾸준히 개선해 신규 고객 기반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시스템 LSI 사업부 역시 자체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건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 시스템온칩(SoC)은 차세대 주력 스마트폰 탑재를 목표로 최고 성능 구현에 개발 역량을 집중한다. CMOS 이미지 센서(CIS) 분야에서는 경쟁사와 격차를 벌리기 위해 고화소 중심의 기술 경쟁을 주도하며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이 밖에도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의 기술 차별화를 추진하고, 성장 잠재력이 큰 전력관리반도체(PMIC) 사업도 본격 확장해 제품군 구성의 완성도를 높인다.

장기 기술 우위를 확보하려는 투자와 내부 혁신도 병행한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꿀 차세대 기술을 먼저 차지하려고 연구개발(R&D) 노력을 늦추지 않을 방침이다. 특히 기존 트랜지스터 구조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직 채널 트랜지스터(VCT), 첨단 본딩 기술 같은 혁신 기술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단순히 기술 개발을 넘어, DS 부문 안에서 인력을 재교육하고 협력사와 함께 성장하는 데 중점을 두며 운영 투명성을 높이는 등 조직 문화 강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NH투자증권 등 국내 증권가에서는 이번 전략 전환을 높이 평가하며, 삼성전자가 2026년까지 대규모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전략 재편이 흔들리는 '반도체 왕국'의 위상을 되찾는 결정적 한 수가 될지, 아니면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맞선 고독한 사투로 기록될지, 삼성전자는 이제 운명의 시험대에 올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