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증시 곧 폭락"…'곱버스' 투자 경험 앞세워 투기성 베팅
"장기 보유는 필패" 구조적 결함…전문가들 "폭탄 돌리기" 경고
"장기 보유는 필패" 구조적 결함…전문가들 "폭탄 돌리기" 경고

블룸버그는 19일(현지시각) '거품 논쟁이 한국 개인 투자자들을 위험한 VIX 베팅으로 몰고 있다(Bubble Debate Drives Korean Retail Investors to Risky VIX Bets)'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국 증시의 변동성 관련 초고위험 상품에 한국 자금이 몰리는 현상을 집중 보도했다.
미국 증시의 고공행진 이면에 드리운 '거품 붕괴' 논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국내 투자자들이 변동성에 투자하는 초고위험 상품으로 몰려가고 있다. 시장의 하락 가능성에 베팅하며 단기 차익을 노리거나 기존의 대규모 미국 주식 보유분을 헤지(hedge·위험 회피)하려는 목적이지만, 상품의 복잡한 구조와 내재된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투자자들이 '2배 롱 VIX 선물 상장지수펀드(ETF)'(티커명 UVIX)에 쏟아부은 자금은 약 1억3000만 달러(약 1850억 원)에 이른다. 이는 같은 기간 이 ETF에 유입된 전 세계 자금의 약 20%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특히 지난 7월에는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미국 상장 ETF 7위에 오르며 서학개미의 새로운 투자처로 급부상했다. 이 상품은 '공포지수'라는 별칭이 붙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 선물의 일일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한다.
수년간 빅테크와 암호화폐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이어온 국내 투자자들이 이처럼 변동성 베팅에 나서는 이유는 미국 증시의 잠재적 급락 가능성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증시 가치평가(밸류에이션)가 역사적 고점에 근접하고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거품 논쟁이 확산하자, VIX 관련 상품이 △급락 방어용 헤지 수단 △고위험 단기 투기 △VIX 지수 상승을 노린 차익 거래 등 다양한 목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장기 보유 시 가치 '0' 수렴"…상품의 구조적 결함
전문가들은 이러한 투자의 위험성을 강하게 경고한다. 렉스 셰어스의 프랜시스 오 아시아 사업 개발 책임자는 "이러한 레버리지 VIX ETF는 투자자들이 공포에 기반한 시장 붕괴 상황에서 더 큰 수익을 얻기 위해 사용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 상품의 구조적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시장 붕괴 시 보호막을 제공할 수 있는 저평가 자산을 매입한다고 믿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레버리지 상품은 수익을 극대화하는 만큼 손실 역시 배가시키는 본질적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VIX 선물과 연계된 상품은 구조적으로 더 큰 위험을 내포한다. 기초자산인 선물을 끊임없이 교체(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통상적으로 가격이 낮은 근월물을 팔고 비싼 원월물을 사야 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자연스럽게 하락하는 '롤 비용(Roll Cost)', 즉 "싸게 팔고 비싸게 사는" 손실이 쌓인다. 단기적으로 급등하더라도 장기 보유 때 손실을 볼 확률이 매우 높은 구조인 셈이다.
UVIX의 과거 수익률은 이러한 위험을 명확히 보여준다. 최근 시장 변동성이 재차 부각되며 이달 들어 19% 상승했으나, 2025년 연간 기준으로는 여전히 65% 하락했다. 더욱이 이 펀드는 출시 이후 해마다 75%가 넘는 손실률을 기록해왔다. 다른 유사 상품인 '프로셰어즈 울트라 VIX 단기 선물 ETF(UVXY)'와 '아이패스 S&P500 VIX 단기 선물 ETN(VXXB)' 역시 연초 이후 각각 59%, 48%의 손실을 기록했다.
규제 피해 해외로…'스테로이드 위 스테로이드' 투자
일부 전문가는 서학개미의 VIX 베팅을 기존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과 연결 지어 해석한다. 노무라 홀딩스의 찰리 맥엘리갓 상무는 "한국발 VIX 매수세를 단순히 시장에 대한 공포 심리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라며 "투자자들은 이미 레버리지 ETF로 미국 증시에 대한 대규모 롱 포지션을 구축하고서 변동성 상품을 추가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스테로이드 위의 스테로이드' 투자"라고 매우 큰 위험성을 꼬집었다.
'개미'로 통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위험 선호 성향은 해외 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국내에서는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을 거래하려면 최대 17시간의 사전 교육과 모의 거래를 이수해야 하는 등 규제 장벽이 있으나, 해외 상장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에는 이러한 제한이 없어 접근이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카카오톡 등에서는 VIX나 레버리지 상품을 깊이 있게 논의하는 수백 명 규모의 단체 대화방이 십여 개 이상 운영되는 등 투자 열기가 뜨겁다.
실제로 국내 투자자들의 고위험 상품 선호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5년 1분기 기준 국내 ETF 시장 총 규모는 약 85조 원에 이르며, 이 중 개인 투자자 비중은 65%로 국제 평균(28%)을 크게 웃돈다. 특히 레버리지와 인버스 ETF 거래 비중이 42%를 차지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고위험 ETF 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시장 중 하나로 꼽힌다. 국내 증권사들 역시 '신한 S&P500 VIX 단기선물 ETN' 등을 상장하며 관련 상품을 활발하게 공급하고 있다.
'돈쌤'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는 정현두 '경제학 1교시' 경제연구소 소장은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치열한 인공지능(AI) 개발 경쟁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 완화 기조 등을 고려할 때, 가까운 미래에 미국 시장이 대폭락할 가능성은 작다"라며 "VIX ETF는 시장 공포가 극대화될 때 잠시 급등할 뿐, 장기 보유는 거의 100% 손실로 이어진다. UVIX 투자자들은 구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사실상 VIX 투자자들은 구조적으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