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獨 동시 투자, 역대 최대 420억 달러…단기 마진 희석 불가피
시장, '공급망 다변화' 긍정 평가…3분기 매출 40% 급증·주가 47%↑
시장, '공급망 다변화' 긍정 평가…3분기 매출 40% 급증·주가 47%↑
이미지 확대보기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대만 섬을 벗어나 전 세계를 무대로 공격적인 생산기지 확장에 나서고 있다. 2025년 한 해에만 9개에서 10여 개에 이르는 신규 생산 시설 건설을 추진하는, 역사상 가장 빠르고 공격적인 전개다. 미국, 일본, 독일에 동시다발적으로 신규 팹(공장)을 건설하는 전례 없는 '영토 확장'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폭증하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수요에 대응하는 현명한 투자라는 시각과, 천문학적 비용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값비싼 무리수'라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고 셰어 와이즈가 지난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TSMC의 이번 전 세계적 행보는 표면적으로 AI와 고성능 컴퓨팅(HPC) 칩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고, 미국 등 주요 고객사들의 지역 다변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대응 전략이다. 동시에, 미·중 패권 경쟁, 중국-대만 간 긴장 고조와 수출 규제 등 지정학적 긴장에 대비해 생산기지를 다변화함으로써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다층적 포석을 깔고 있다. 특정 지역, 즉 대만에 생산 역량이 과도하게 집중된다면 발생할 수 있는 공급망 붕괴 위험을 원천적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다.
물론 대만 내 투자도 병행한다. 타이중, 신주, 가오슝 등지에서는 2nm(나노미터)에서 1.4nm에 이르는 차세대 초미세공정 중심의 신규 팹 증설이 한창이다. 2025년에만 총 9~10개의 신규 시설 중 8~9개가 첨단 웨이퍼 팹이며, 1곳은 CoWoS 등 고도화된 패키징 공장으로 구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 이점에도, '비용' 문제는 TSMC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해외 팹은 운영비, 인건비, 건설비 등이 대만보다 훨씬 높아 단기적인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TSMC는 이 때문에 2~4%포인트(p)의 마진 희석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2025년 예상 자본지출(CapEx)은 380억~420억 달러(약 54조 7000억~60조 4000억 원)로, 2024년(292억 달러) 대비 대폭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2022년의 352억 달러(약 50조 6800억 원)도 넘어선 수치다.
'비용 압박' 속 59.5% 마진율…견조한 수익성 과시
이러한 막대한 비용 압박에도, TSMC는 특유의 '수익성 방어 능력'을 과시하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실제 TSMC의 2025년 3분기 매출 총이익률은 59.5%에 이르렀다. 전년 동기 대비 1.7%포인트 증가한 이 수치는 급증하는 비용 부담을 흡수하고도 남는 견조한 수익성을 입증한 셈이다.
TSMC는 '규모의 경제'와 '고도화된 자동화', 그리고 각국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비용 격차를 궁극적으로 상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현지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있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가 붙는다.
TSMC의 계산은 명확하다. 2nm(나노미터)와 앞으로 1.6nm, 1.4nm 공정 등 최첨단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세계 '큰손' 고객사들이 신뢰할 수 있고 지역적으로 다각화된 공급업체를 절실히 원하고 있기에, 지금의 막대한 투자가 미래의 더 큰 과실로 돌아올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TSMC의 '이원화 생산 전략'이 세계 고객의 수요와 공급 위험 관리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시장은 이미 TSMC의 이러한 성장에 화답하고 있다. 2025년 3분기 TSMC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8% 급증한 331억 달러(약 47조 원)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달성했다. 증권 분석가들은 TSMC의 세계 확장 전략과 AI발(發) 첨단 칩 수요가 맞물리면서 이러한 성장 추진력이 앞으로 몇 년간 지속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미국 금융정보업체 잭스(Zacks)의 시장 평균 추정치에 따르면, TSMC의 2025년과 2026년 매출은 각각 전년 대비 33.8%, 20.6%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인 현지 전략을 살펴보면, 미국 애리조나에서는 2~3개 공장을 신·증설해 2025년과 2026년에 걸쳐 4nm, 3nm, 2nm급 생산을 차례로 시작한다. 일본 구마모토에서는 2026년까지 2개 이상의 팹을 가동하며 10nm 이하 첨단 공정에 집중한다. 유럽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2024년에서 2025년 사이에 착공하며, N12, N16, N22, N28 등 주로 자동차와 산업용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인텔·GF, '타도 TSMC' 각기 다른 해법
물론 파운드리 시장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타도 TSMC'를 외치는 인텔(INTC)과 전통의 강호 글로벌파운드리스(GFS) 등도 AI 칩 제조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으며 첨단 칩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1.8nm급인 '18A' 공정에 사운을 걸고 있으며, 이 공정이 TSMC의 차기 주력인 N2(2nm) 칩보다 더 높은 성능과 효율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면 대결을 예고했다.
글로벌파운드리스는 TSMC나 인텔과는 달리, 성숙(레거시) 공정(22nm 등)에 상대적으로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엣지 컴퓨팅이나 임베디드 AI 분야를 중심으로 AI 관련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공급망 유연성을 중시하는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생산 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세계 확장 전략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현재까지 매우 긍정적이다. TSMC의 주가는 연초 대비(YTD) 47.2%가량 급등하며, 잭스 컴퓨터와 기술 부문의 평균 상승률인 23%를 두 배 가까이 웃도는 기염을 토했다. 기업 가치 평가 측면에서도 매력은 여전하다. TSMC의 주식은 앞으로 12개월 실적 전망치를 기준으로 한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25.53배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동종 기술 부문 평균인 28.98배보다 낮은 수준이다.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음에도 여전히 고평가 논란에서 비껴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수익 전망 또한 밝다. 잭스의 시장 평균 추정치에 따르면 TSMC의 2025년과 2026년 주당순이익(EPS)은 각각 전년 대비 44.9%, 20.4%라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한다. 특히 최근 7일간 2025년과 2026년의 실적 추정치가 일제히 올라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잭스 인베스트먼트 리서치는 TSMC를 현재 '매수'(Buy)에 해당하는 2등급(Rank #2)을 부여하고 있다.
TSMC의 세계 팹 증설은 AI와 고성능 컴퓨팅 시대에 필수적인 '공급망 안정성'과 '첨단 기술 리더십'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첨단 공정 독점력과 세계 고객 맞춤형 대응, 지정학적 위험 회피를 위해 필수적인 선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단기적인 마진 저하와 더불어 EUV(극자외선)와 High-NA EUV 등 차세대 장비 도입에 따른 팹당 투자비 폭증, 그리고 세계 공장 운영 효율 저하 등은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위험 요인으로 남는다.
업계에서는 중장기적으로 TSMC의 시장 지위가 '공급 다변화', '첨단공정 독점력', 그리고 '현지 정부 지원' 간의 균형점을 어디서 찾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