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통제' 실패한 Arm 차이나…英 본사, 中 시장서 경영권 상실
'국가 주권'에 발목 잡힌 넥스페리아…中 자본, 유럽서 첫 '자산 몰수'
'국가 주권'에 발목 잡힌 넥스페리아…中 자본, 유럽서 첫 '자산 몰수'
이미지 확대보기지난 10년간 중국 반도체 산업은 칩 설계부터 파운드리(위탁생산), 후공정(패키징)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무서운 기세로 팽창했다. 막대한 자본과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은 '기술 자립'이라는 거대 구호 아래, 국제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기세였다.
하지만 이 거대한 구호 이면에 감춰진 구조적 모순이 최근 잇따른 사태로 수면 위에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고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가 2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세계적 야망'과 '국내 통제'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파열음이다.
핵심 기술과 해외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했던 '중국식 세계화' 모델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양상이다. 영국 암(Arm)의 중국 합작사 'Arm 차이나'의 내부 권력 투쟁과, 중국 윙테크에 인수된 네덜란드 '넥스페리아'의 경영권 분쟁은 이러한 중국식 모델의 근본적인 한계와 취약성을 노골적으로 입증한다. 두 사태 모두 중국 기업이 핵심 기술과 해외 자산에 대한 통제력을 무리하게 강화하려 시도하는 순간, 예외 없이 지배구조의 균열과 기술 주권을 둘러싼 지정학 충돌이 뒤따른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내부의 반란' Arm 차이나, 통제 불능의 합작사
표면적으로는 일개 임원의 '항명'처럼 비쳤으나, 그 본질은 국제 반도체 제국의 핵심 고리인 Arm의 중국 사업부를 실질적으로 누가 지배할 것인가를 둘러싼 심각한 권력 투쟁이었다.
Arm 차이나의 주주 구조는 중국 투자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돼 있었다. 앨런 우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베이징 당국이 강력하게 추진하던 '반도체 자급자족' 정책에 적극 편승해, '중국형 반도체 생태계 중심'을 자임하며 '중국의 독립적 IP 주권'을 공공연히 옹호했다. 이러한 자율성 강화 시도는 Arm 영국 본사에는 결코 넘지 말아야 할 '레드 라인'을 넘은 것이었다.
중국 특유의 산업 민족주의와 국제 표준인 Arm 본사의 기업 지배구조가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이 기나긴 대치 국면의 최종 결과는 참담했다. 모회사인 Arm은 자사 최대의 격전지이자 가장 중요한 시장인 중국에서 사실상 경영권을 상실하고 소외되는, 뼈아픈 상처를 입었다. 이후 3년간 Arm 차이나는 사실상 준국유화된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이는 2023년 Arm의 나스닥 상장 준비과정에도 큰 악영향을 끼쳤다. 이 사태는 외국계 반도체 기업이 중국 내 합작 파트너와 운영 시, '지배·감사권'을 명확히 확보하지 않으면 법률상 통제력이 무력화될 수 있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외부의 역습' 넥스페리아, 주권 충돌의 희생양
그로부터 5년 뒤, '국가 주권의 역습'으로 요약되는 '넥스페리아 위기'는 Arm 사태의 각본을 그대로 재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판돈이 훨씬 더 커졌고, 사태는 일개 기업의 지배구조 분쟁을 넘어 국가 간 주권 다툼이라는 지정학 대립으로 즉각 비화했다.
넥스페리아는 본래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칩 제조사 NXP의 사업부였으나, 2019년 중국의 주요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인 윙테크 테크놀로지(闻泰科技)에 완전 인수됐다. 당시 이 거래는 중국 기업이 유럽의 유서 깊은 칩 제조사를 통째로 인수한 첫 사례로, 중국의 유럽 진출 성공 사례로 불리며 중국의 '국제 제조 굴기' 야망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성과로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불과 6년 만인 2025년, 그 화려했던 승리는 쓰라린 실패로 변질됐다. 네덜란드 정부가 '심각한 지배구조 실패'와 '핵심 기술 유출 위험'을 명분으로 '국가전략물자보안법(Strategic Goods Security Act)'을 발동, 본격 개입하고 나섰다. 네덜란드 정부는 넥스페리아에 대해 자산 일시 압류 및 중국 본사의 경영권 제한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넥스페리아의 중국 법인과 모회사 윙테크는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이는 '중국식 기업지배 구조 준수에 맞는 경영 합리화'"라며, 네덜란드의 개입은 명백한 주권침해라고 주장했다. 단순한 경영권 다툼이 순식간에 기업의 정체성과 국가 이익이 충돌하는, 중국과 네덜란드 간의 첨예한 '주권 대치'로 격화된 순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내부의 반도체 지형 변화가 넥스페리아의 입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2020년, 윙테크의 장쉬에정(張學政) 설립자는 상하이 린강신구에 '상하이 윙스카이세미 크래프츠먼 코어 테크놀로지(上海闻创工匠芯科技)'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했다. 차량용 전력 반도체(IC)와 12인치 웨이퍼 제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윙스카이세미'의 급부상은 역설적으로 윙테크가 인수한 넥스페리아의 중국 내 전략상 입지를 급격히 잠식했다. 차량용 및 전력 관리 칩 분야에서 윙스카이세미를 비롯한 중국 토종 경쟁사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넥스페리아 내부의 불안감은 증폭됐다. 이러한 내부 불안은 기업 내부의 긴장을 격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네덜란드 간의 거시 분쟁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넥스페리아는 네덜란드 정부에 의해 '사실상 공공 통제 하'에 놓이게 됐으며, 이 일은 유럽 내 첫 중국 자본 반도체 기업의 국유화 사건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Arm에서 넥스페리아에 이르기까지, 두 차례의 거대한 기업 풍파는 중국의 국제 확장 전략이 '지배구조의 격차'와 '기술 주권 추구'라는 난제와 어떻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비즈니스 전략과 지정학은 더 이상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 사례(Arm 차이나)는 중국 자회사가 외국 모회사에 공공연히 반기를 든 '내부의 반란', 즉 '외국 본사에서 중국 자회사로 권한이 넘어간' 사건을 보여준다. 다른 사례(넥스페리아)는 서방 정부가 중국 모회사의 경영에 직접 개입한 '외부의 압력', 다시 말해 '중국 본사에서 유럽 자회사의 권한이 제한된' 사건을 반영한다. 하나는 내부 문제, 하나는 외부 문제지만, 두 사태 모두 국제 기술 지형 속에서 중국이 처한 불안한 입지와 구조적 불신을 명확히 드러낸다.
중국 반도체 산업이 얻어야 할 교훈은 명백하다. '해외 자산의 소유가 곧 기술의 통제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이다. 이 사태는 '소유'와 '지배'의 분리가 명확히 드러난 사례이기도 하다. 거세지는 지정학 반발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이제 싫든 좋든 내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윙스카이세미의 부상, 그리고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CXMT(창신메모리)와 YMTC(양쯔메모리)의 약진은 이러한 흐름을 방증한다. 중국 칩 제조사들은 현지 생산 능력 확대와 독자 기술 확보를 통해 '공급망 복원력'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그 어느 때보다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 정치의 격동성이 커지면서, 중국이 겪는 전환기의 성장통은 이제 금융이나 전통 제조업의 경계를 훨씬 넘어 반도체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Arm과 넥스페리아 사태는 기업 지배구조와 국가 간 신뢰가 국경을 넘지 못할 때, 애써 쌓아 올린 세계화의 성과가 얼마나 취약하게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증거다.
중국의 전략이 단순한 '기술 수입'에서 '통합 시스템 구축'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앞으로도 극심한 고통이 따르겠지만, 동시에 필연의 경로가 될 것이다.
더 넓은 시각에서 볼 때, Arm과 넥스페리아의 값비싼 경험은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 기술 공급망에 중대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미-중에 이어 중-유럽 간의 기술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본격화되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미-중, 중-유럽 간의 파고 속에서 민첩성을 잃지 않는 동시에, 엄혹한 지정학 제약 하에서도 중립성과 효율성을 견지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앞으로 몇 년간 국제 시장에서 누가 진정한 경쟁력으로 생존할지를 판가름하는 핵심 잣대가 될 것이다.
Arm 사태가 '내부 통제 실패에 따른 국제 신뢰 붕괴'의 전형이라면, 넥스페리아 사태는 '외부 통제에 따른 해외 자산 상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두 사건은 정부, 기업, 투자자 간 신뢰와 투명성이 결여되면 '성공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냉엄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