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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재고가 없다"…AI발 메모리 대란, 2027년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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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재고가 없다"…AI발 메모리 대란, 2027년까지 이어진다

HBM·DDR5 '싹쓸이'…전 산업계 '패닉 바잉' 확산
가격 폭등에 '줄 서도 못 사'…"韓 공급사 관계가 전부"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2025년 4분기에 접어들며 시작된 메모리 구매 급증세가 공급망 전반의 '패닉 바잉(공황 구매)'으로 격화되고 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DDR5 RDIMM 모듈에 대한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메모리는 2026년 기업 운영을 좌우할 핵심 '전략 자재'로 부상했다. 모듈 제조업체와 시스템 공급업체들 사이에서는 전면적인 재고 확보 경쟁이 불붙었다.

15일(현지시각)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와 시장 소식통에 따르면 에이수스(Asus), MSI와 같은 브랜드 및 시스템 공급업체들은 공격적인 재고 축적에 나섰다. 메모리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자, DIY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던 팀그룹(Team Group)은 가격비교 사이트 'Price.com.tw'에서 직공급 가격 목록을 일시적으로 철회해 시장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후 가격 정보는 복구되었으나, 유통업계는 2026년 내내 공급업체들이 재고를 유보하고 견적을 중단하며 전반적인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난은 메모리 관련 후방 산업계(OSAT)의 실적에도 즉각 반영되고 있다. 주요 메모리 모듈 제조업체들은 2025년 3분기에 기록적인 실적을 발표했다. 트랜센드(Transcend)의 2025년 10월 자체 추정 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4배 급증했으며, 이는 3분기 전체 이익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업스트림 조립 및 테스트(OSAT) 기업들도 강력한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칩모스(ChipMOS), 월튼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Walton Advanced Engineering), 포모사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Formosa Advanced Technologies) 등 주요 기업들은 모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최근 분기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OSE는 지난 5분기 중 최고의 이익을 기록했으며, 파워텍 테크놀로지(PTI)는 2025년 4분기 매출이 한 자릿수 퍼센트 성장하고 2026년 1분기에는 전년 대비 '훨씬 강력한'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배정 물량 없다"… 불붙은 현물 쟁탈전


메모리 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브랜드 업체들은 현물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에이수스, MSI 등은 서버 메모리와 PC 애플리케이션용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현물 시장에서 대량 구매를 진행 중이다.

일부 클라우드 고객들은 시스템 통합(SI) 업체를 통해 메모리를 조달해왔으나, 시장이 완전한 '판매자 주도'로 전환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대형 CSP들이 이미 공급업체들의 생산 능력 대부분을 확보해버린 탓이다. 뒤늦게 물량 확보에 나선 다른 기업들은 현물 시장을 헤매거나, 익숙하지 않은 공급업체에 대한 자격 인증을 서두르고 있다. 설령 인증을 통과하더라도, 물량 배정을 받기 위해 다시 긴 줄을 서야 하는 실정이다.

에이수스 측은 2025년 3분기 말 기준 부품 재고가 약 2개월치 수준이며, 유통 채널 재고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메모리 부족이 4분기 운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불균형이 장기화될 경우 '적절한' 가격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 시장 소식통은 "공급업체들이 출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 고객에게 배정되는 물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메모리 부족 현상이 2026년 내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현물 시장에서 공급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곧 이익으로 직결되자,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들과 시스템 공급업체들까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일부 업체는 확보한 물량을 다른 CSP에 재판매하는 것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물 시장의 RDIMM 가격은 이미 통제 불능 상태다. 64GB 모듈 가격은 700달러를 넘어섰고, 96GB 모듈은 1200달러, 128GB 모듈은 24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DDR4 > DDR5' 가격 역전…2027년까지 '보릿고개'


메모리 시장은 완전한 패닉 바잉 국면에 진입했다. 업스트림 공급업체들은 신규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공급-수요 격차를 재평가하길 원하고 있지만, 심각한 부족 사태에 대한 보고가 잇따르면서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이는 가격을 더 끌어올리고, 더 공격적인 구매를 부추기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최근 몇몇 대만 기업 임원들은 공급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실제 물량 배정은 공급업체와의 '장기적인 관계'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대만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비용 중심의 조달 전략에 의존해왔으나, 현재와 같이 공급-수요 균형이 역전된 상황에서는 이러한 단기 긴급 구매가 제한적인 성과밖에 거두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심각한 DDR5 부족 사태는 구형 제품인 DDR4 시장에도 불똥이 튀었다. 피터 첸 퀴스다(Qisda) 회장은 DDR4 시장이 "무엇이든 가용한 것을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말했다. 네트워크 스위치 제조업체들은 고정된 설계에 묶여 있어 단기적으로 표준을 바꾸기 어렵다. 이로 인해 현재 DDR4가 동일 용량의 DDR5보다 비싸지는 가격 역전 현상까지 발생하며 비용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D램(DRAM)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일부 PC 브랜드들은 2026년 출시 모델의 D램 용량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K. S. 푸아 파이슨(Phison) 최고경영자(CEO)는 "지속적인 고가의 D램 가격은 소비자 제품 경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적응형 온디바이스 AI 솔루션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D램 용량을 줄이더라도, 이러한 솔루션이 시스템 성능을 유지하고 비용과 성능의 균형을 맞추며 AI PC로의 업그레이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메모리 구매 경쟁은 유통업체에서 시작해 모듈 제조사, 브랜드, 시스템 공급업체로 전방위 확산됐다. AI 서버 수요가 다른 분야의 공급 물량까지 잠식하면서, 극심한 공급 긴장 상태는 2026년을 넘어 2027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