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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사람 내쫓은 AI, 세금도 내라"…빌 게이츠의 '로봇세' 경고, 8년 만에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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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사람 내쫓은 AI, 세금도 내라"…빌 게이츠의 '로봇세' 경고, 8년 만에 현실로

MIT "AI가 美 일자리 11.7% 대체, 임금 1조2000억 달러 증발"…세수 절벽 공포
IBM·아마존 인력 감축 가속화 속 韓·EU '로봇세' 도입 논쟁 재점화
인공지능(AI) 자동화 확산으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인력 감축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AI가 대체한 노동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로봇세'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8년 전 처음 제기한 경고가 현실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인공지능(AI) 자동화 확산으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인력 감축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AI가 대체한 노동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로봇세'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8년 전 처음 제기한 경고가 현실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인공지능(AI)이 전 세계 산업 지형을 뿌리째 흔들면서 해묵은 논쟁 하나가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바로 '로봇세(Robot Tax)'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한 기계와 AI 알고리즘이 과연 인간을 대신해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1일(현지시각) 엠마 로저스(Emma Rogers)가 웹프로에 기고한 분석 기사에 따르면, 이는 더 이상 이론적인 탁상공론이 아니다. 생성형 AI의 도입으로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급격히 소멸하면서, 각국 정부는 세수 부족을 메우고 사회 안전망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조세 모델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의 예언, 생성형 AI 시대를 만나다


'로봇세' 논의의 뿌리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2017년 제안한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게이츠는 자동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실직자 재교육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로봇에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년이 지난 지금, 챗GPT(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 도구가 일자리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면서 이 주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AI가 전 세계 일자리의 약 40%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연구 결과는 더욱 구체적이고 충격적이다. 현재의 AI 기술만으로도 미국 전체 노동력의 11.7%를 대체할 수 있으며,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조2000억 달러(약 1680조 원)에 달하는 임금이 증발한다는 분석이다. 이는 곧 정부가 거둬들일 소득세와 급여세(payroll tax)의 막대한 손실을 의미한다.

"월급 받는 인간이 사라진다"…붕괴하는 조세 기반

현행 조세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인간 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업이 근로자를 고용하면 근로소득세와 사회보장세 등이 발생하고, 이것이 국가 재정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 그러나 AI 에이전트(Agent)가 급여나 복리후생 없이 인간의 업무를 처리하게 되면 이 연결고리는 끊어진다.

이미 주요 기업들은 행동에 나섰다.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따르면 IBM, HP, 아마존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AI 도입과 함께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이는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의미하지만, 국가 재정 입장에선 과세 대상이 사라지는 재앙이다. 엑스(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과세되지 않은 AI가 기업의 부를 독점하고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테크 애널리스트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제조업의 조립 라인 로봇을 넘어, 회계나 고객 서비스 같은 화이트칼라 영역까지 AI가 침투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한 금융 분석가는 "2030년이면 AI가 회계 업무 전반을 장악해 인간의 개입 없이 세금 계산과 감사를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단순 노동직뿐만 아니라 고소득 전문직의 세원까지 위협받는 상황을 시사한다.

유럽의 '보편적 기본소득' vs 미국의 '혁신 저해' 우려


각국 정책 입안자들의 셈법은 복잡하다. 사회 안전망이 강력한 유럽에서는 AI가 대체한 노동의 가치만큼 세금을 부과해, 이를 '보편적 기본소득(UBI)'이나 재교육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는 로봇세가 기업들로 하여금 자동화 도입을 더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인 과세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 환경오염에 탄소세를 부과하듯,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AI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에 직접 부담금을 물리거나, AI가 창출한 부가가치에 대해 별도의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영국의 한 의원은 일자리를 자동화하는 기업에 법인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의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외신은 한국이 이미 자동화된 제조 시설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사실상의 로봇세 개념을 실험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AI의 확산과 함께 다른 국가들이 참고할 만한 선례로 평가된다.

반면 반대론자들의 논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로봇세가 기술 혁신을 저해하고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는 "AI 지출은 단순한 일자리 대체가 아니라 자원의 재분배 과정"이라며 과도한 규제가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물리적 로봇과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구분할 것인지 등 실행 단계의 난제들도 산적해 있다.

골드만삭스 "2030년 사무직 70% 대체"…1조 달러의 딜레마


미래 전망은 명확하다. 맥킨지 데이터를 인용한 골드만삭스의 예측에 따르면, 2030년까지 AI 에이전트가 사무직 업무의 70%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는 S&P 500 기업들이 AI와 로봇을 통해 연간 1조 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의 이익은 1조 달러가 늘어나지만, 그만큼 노동 소득은 줄어드는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해커눈(HackerNoon)은 이를 두고 "노동의 정의와 경제적 생존 방식을 재정립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AI 직원은 세금 공제 대상인 '비용'으로 처리되는 반면, 인간 직원은 '과세 대상'이라는 현재의 회계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재정 위기는 피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결국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노동과 자본 과세 사이의 균형을 이동시켜 소득 분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IMF 역시 AI의 잠재력을 활용하되, 그 혜택이 인류 전체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신중한 조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MIT의 '아이스버그 인덱스(Iceberg Index)' 시뮬레이션은 현재 행정 및 금융 분야가 AI 대체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혁신을 장려하면서도 무너지는 조세 기반을 지탱하고, 소외되는 노동자들을 보호할 '지속 가능한 프레임워크' 마련이 시급하다. 빌 게이츠가 던진 8년 전의 화두는 이제 전 세계 경제가 풀어야 할 생존의 과제가 되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