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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중국은 지렛대를 쥐었다고 믿고 미국은 시간을 벌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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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중국은 지렛대를 쥐었다고 믿고 미국은 시간을 벌었다고 믿는다

10월30일 김해공항 회담 이후 ‘희토류 휴전’이 드러낸 미중 게임의 본질과 한국의 생존 전략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로이터

지난 10월30일 부산 김해공항에서 열린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 이후, 베이징은 자신감에 차 있고 워싱턴은 숨을 고르는 분위기다. 미 외교안보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12월12일 베이징발 현장 보고는 이 착시의 구조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희토류라는 지렛대를 손에 쥔 채 미국을 상대로 ‘관리 가능한 긴장’의 시간을 벌었다고 믿고, 미국은 중국이 ‘일반 허가’라는 형태로 희토류 통제를 사실상 풀었다고 해석하면서 동맹과 함께 대체 공급망을 구축할 1년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두 나라가 동시에 유리하다고 믿는 순간에야말로, 게임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둘 다 옳을 수는 없다. 어느 쪽이 현실을 정확히 읽고, 상대의 다음 수를 먼저 준비하느냐가 2026년의 승패를 가른다. 그리고 이 승패는 동아시아 질서의 설계도를 바꾸며, 한국의 안보와 경제를 같은 방향으로 압박한다.

질서의 재편은 ‘관세’가 아니라 ‘레버리지’의 전쟁이다


미중 경쟁은 더 이상 교역 규모나 관세율을 중심으로 한 통상 분쟁이 아니다. 핵심은 레버리지, 곧 상대의 산업과 군사, 사회 운영을 멈춰 세울 수 있는 병목을 누가 쥐고 있느냐의 싸움이다. 반도체 장비와 첨단 칩, AI 컴퓨팅 같은 영역에서 미국은 통제의 지렛대를 구축해왔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미국만이 목을 쥘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줄 카드가 필요했고, 희토류와 특정 전략광물의 수출 통제는 그 카드였다.
이번 보고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중국 내부가 희토류를 단순한 경제 품목이 아니라 ‘패리티를 만드는 버튼’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중국 시각에서 희토류 지렛대는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오게 했고, 미 행정부의 태도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이런 경험을 한 베이징이, 미국이 동맹과 함께 대체 공급망을 구축하도록 순순히 시간을 내어줄 것이라는 가정은 위험하다. 과거 중국이 가격 덤핑으로 경쟁국의 채굴과 가공을 무너뜨린 전례는, 이번에도 ‘시장’이 아니라 ‘국가전략’이 움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2026년은 단순한 휴전의 1년이 아니라, 레버리지 재구축의 1년이다. 미국은 희토류 바깥의 공급망 병목을 동맹으로 묶어 더 촘촘히 만들 것이고, 중국은 희토류 지렛대를 정교하게 ‘허가와 예외의 미로’로 설계해 기업들을 선별적으로 살리고 죽이며, 미국의 대체 공급망 프로젝트에 비용과 시간을 최대한 부담시키려 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2기식 거래는 ‘따뜻한 정상회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현장 보고는 중국이 트럼프의 대면 태도와 재무 라인의 실용주의를 ‘좋은 신호’로 읽고 있음을 전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방식은 장기적 신뢰에 기반한 제도적 안정이 아니라, 순간의 성과를 과시하는 거래의 연쇄다. 오늘은 관대하고 내일은 돌변하는 변동성이 협상 자체의 일부가 된다. 중국이 “이제는 좋은 경찰만 상대한다”고 믿는 순간, 미국 내부의 다른 부처와 의회, 산업 이해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다시 개입할지에 따라 관계는 급격히 흔들릴 수 있다.

여기서 한국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 미중 경쟁의 진짜 전선은 정상회담의 표정이 아니라, 상무부 규정 문장과 라이선스의 조건, 동맹의 조달 기준, 금융의 리스크 프리미엄, 그리고 ‘제재가 아니라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규칙들이다. 트럼프 2기는 그 규칙들을 더 거래적으로, 더 빠르게, 더 예측 불가능하게 휘두를 수 있다. 그 결과는 동맹국의 기업과 금융시장에 먼저 충격으로 전달된다.

중국의 강점은 혁신의 신화가 아니라 ‘배치 속도’다

이번 보고가 던지는 또 하나의 경고는 기술의 본질이 연구실의 논문이 아니라 현장의 배치 속도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종종 기술 우위를 ‘최첨단 개발’로 정의하지만, 중국은 ‘대규모 적용’에서 이익을 축적한다. 로봇택시, 스마트 제조, 로봇의 일상화는 완벽하지 않아도 먼저 깔고, 데이터를 모으고,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기술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가격과 공급과 유지보수까지 포함한 패키지 경쟁력을 만든다.

이는 동아시아 질서에 직접적 함의를 갖는다.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시장에서 AI와 디지털 인프라가 국가 운영의 기본재가 되는 순간, 더 싸고 더 빨리 깔리는 솔루션이 표준이 된다. 과거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그랬듯, 이번에는 AI와 로봇, 스마트 제조 운영체제가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미국이 ‘수출 통제’만으로 중국을 늦추는 동안, 중국은 ‘배치’로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한국에겐 이것이 단순한 기술 뉴스가 아니다.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과 품질뿐 아니라, 글로벌 고객의 생산 시스템에 얼마나 깊이 들어가 있느냐로 결정된다. 중국식 AI·로봇 패키지가 세계 공장에 표준으로 깔리면, 한국 기업은 부품과 장비를 공급하더라도 운영체제와 데이터 레이어에서 주도권을 잃을 위험이 커진다. 제조 강국의 위기는 공장 문이 닫히기 전에 표준과 데이터에서 시작된다.

동아시아 질서의 핵심은 ‘경제 안보의 군사화’다


희토류, 갈륨, 게르마늄, 흑연 같은 품목이 정상회담 의제의 중심이 되는 시대는, 경제가 안보의 언어로 완전히 전환된 시대다. 동아시아에서 이는 한미일과 중러의 구도가 단지 군사동맹의 대치가 아니라, 공급망과 기술표준, 금융제재, 보험료, 선박과 항로의 리스크를 함께 포함한 총체적 경쟁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는 전선이고, 산업적으로는 병목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과 방산, 디스플레이와 정밀화학, 원전과 AI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미중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동시에 어느 쪽에게도 ‘완전히 안전한 파트너’로 간주되기 어려운 모순적 지점에 서 있다. 미중이 서로의 레버리지를 확인하고 정교화하는 2026년에는, 한국이 의도하지 않아도 ‘압박의 전달선’이 된다.

한국의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핵심 병목의 ‘군사적 취약성’으로 나타난다

희토류와 전략광물은 민간 산업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군사력의 토대다. 정밀유도무기, 레이더와 통신, 전기추진, 위성 시스템, 드론과 로봇의 핵심 소재가 얽혀 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될수록, 병목 품목의 통제는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가동 중단’의 위험으로 변한다. 동아시아 위기 상황에서 공급이 흔들리면, 방산 생산과 유지보수까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한국 안보의 새로운 취약점은 전통적 의미의 전력 숫자가 아니라, 전력 유지에 필요한 소재와 부품의 지속 가능성이다. 이는 한국의 억제 구조에도 영향을 준다. 억제는 의지와 능력의 결합인데, 능력의 바닥을 이루는 산업 기반이 병목 통제에 흔들릴 경우, 억제의 신뢰도 자체가 떨어진다. 북한 변수까지 겹치는 한국에게는 이 취약성이 더 치명적이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수출’이 아니라 ‘마진과 자본비용’으로 온다


많은 분석은 미중 경쟁이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관세와 통상으로 설명하지만, 더 중요한 충격은 마진과 자본비용에서 발생한다.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면, 원재료와 부품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재고 비용이 늘며, 보험료와 해상운임, 환헤지 비용이 증가한다. 여기에 미국의 규정 변화, 중국의 라이선스 변화가 겹치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이 깨지고, 투자와 증설의 타이밍이 꼬인다. 결국 기업의 이익률과 현금흐름이 흔들리고, 금융시장은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한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 비중이 크고, 대기업의 글로벌 밸류체인 연결이 깊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치적 이벤트’가 곧 ‘회계의 이벤트’가 된다. 2026년형 미중 레버리지 전쟁은 한국 기업의 손익계산서에 먼저 찍히고, 이어 자본시장과 고용에 전파된다.

대응 전략은 ‘줄서기’가 아니라 ‘병목을 끊고 표준을 잡는’ 국가 설계다


한국이 취할 전략은 감정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설계여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누구 편을 드느냐가 아니라, 병목 통제에 흔들리지 않는 체질을 만들고, 신기술 배치 경쟁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첫째, 전략광물의 다변화는 단순한 수입선 다변화가 아니라 정제와 가공, 재활용, 대체소재까지 포함한 ‘산업 생태계’로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광산을 직접 확보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정제와 소재, 자석과 합금, 중간재 공정의 국산화와 동맹 분업을 결합해야 한다. 단기에는 재고와 보험 같은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지만, 중장기에는 기술과 공정의 내재화가 답이다.

둘째, AI와 로봇 배치 경쟁에서 한국은 개발 경쟁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제조 현장에 적용되는 운영기술, 데이터 표준, 안전 인증, 유지보수 체계를 묶어 ‘패키지형 솔루션’으로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강점은 하드웨어 제조력과 현장 공정 능력이다. 이를 AI 운영체제와 결합해, 중국식 저가 패키지와 미국식 고가 솔루션 사이에서 ‘가성비와 신뢰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제3의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형 스마트팩토리와 로봇 배치 모델이 동남아와 인도, 중동에 깔리기 시작하면, 한국은 기술 패권 경쟁에서 소비자가 아니라 공급자가 된다.

셋째, 동맹 전략은 군사동맹을 넘어 경제안보 동맹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한미일 협력은 단지 훈련과 정보공유가 아니라, 조달 기준과 표준, 공급망 인증과 금융지원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관계는 ‘의존의 축’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거래의 축’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핵심 병목에서의 과의존을 줄이면서, 비핵심 영역에서는 상호이익을 유지하는 정교한 분리가 필요하다.

넷째, 국가 차원의 위기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라이선스 변화, 수출 통제, 가격 덤핑, 제재 리스크가 기업 단위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로 발생한다면, 정부는 정보와 금융, 외교를 묶어 ‘경제안보 컨트롤타워’를 실질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이는 선언이 아니라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조달과 비축, 금융지원의 실행체계여야 한다.

다섯째, 안보 측면에서는 전력 현대화와 함께 산업 기반의 지속성을 ‘억제의 구성요소’로 포함해야 한다. 방산 생산과 유지보수의 병목을 국가가 관리하고, 위기 시 조달과 생산이 흔들리지 않도록 동맹과의 공동 비축과 공동 생산 체제를 준비해야 한다. 북핵과 미중 경쟁이 동시에 존재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억제는 더 넓은 의미의 국가 역량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미·중의 착시가 깨질 때 한국은 휘말려서는 안 돼


중국은 희토류로 미국을 멈춰 세울 수 있다는 확신을 키우고, 미국은 중국을 늦출 수 있다는 낙관을 유지한다. 이 둘의 착시는 오래가지 않는다. 2026년은 누구의 착시가 먼저 깨지느냐의 해가 될 것이다.

한국에게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다. 병목을 끊고, 표준을 잡고, 배치 경쟁에서 이기는 나라만이 동아시아 질서 재편 속에서 살아남는다. 부산에서의 따뜻한 정상회담이 아니라, 베이징의 라이선스 문장과 워싱턴의 규정 문장 사이에서 한국의 10년이 결정된다. 한국은 이제 외교의 언어만이 아니라 산업과 기술, 금융과 안보를 한 문장으로 묶어내는 국가 전략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미중 패권 경쟁의 시대에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승리의 길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