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갈등과 미중 패권 경쟁이 만드는 새로운 세력균형과 한국의 대전략
이미지 확대보기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늘 있어 왔던 갈등이 늘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2025년 말,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을 계기로 폭발한 이번 긴장은 단순한 외교적 마찰이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이 동아시아에서 어떤 형태로 굳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사건이다. 글로벌 온라인 매체인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지가 이번에 고조된 긴장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고 보는 이유는 감정의 문제도, 의지의 부족도 아니다. 그보다는 국제 질서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하는 질서 속에서 국가들은 체면이 아니라 생존의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일본이 대만을 일본의 생존 문제로 정의한 순간, 중국은 그것을 내정 간섭의 문장으로 규정하며 응징의 문법으로 대응한다. 이 충돌은 완화되기 어렵다. 양측 모두 국내 정치와 군사 전략, 그리고 미중 경쟁이라는 거대한 외부 구조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다카이치 총리 개인의 강경 노선이나 중국의 전랑 외교의 재현으로만 읽으면, 한국은 또 한 번 동아시아의 변곡점을 놓치게 된다. 지금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의 본질은 영토 분쟁도, 감정의 역사도 아니다. 그것은 패권 전쟁의 실물 전선이 군사와 경제, 기술과 공급망을 하나로 묶어내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재편의 한가운데에 일본이 있고, 그 일본을 둘러싼 미중의 전략이 동시에 재정렬되고 있다. 한국은 이 전선에서 관전자일 수 없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전선이며 산업적으로 병목이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 경쟁의 성격 변화가 중일 갈등의 의미를 바꿨다
미중 경쟁은 더 이상 관세나 무역적자 같은 표층의 분쟁이 아니다. 핵심은 레버리지의 전쟁이다. 상대의 국가 운영과 산업 가동을 멈춰 세울 수 있는 병목을 누가 쥐느냐가 결정한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AI 컴퓨팅, 장비와 소프트웨어, 금융 제재와 표준을 지렛대로 삼아 중국의 상승을 제어하려 한다. 중국은 희토류와 전략광물, 핵심 중간재, 그리고 방대한 내수와 생산능력, 기술의 대규모 배치로 맞선다. 이 경쟁은 결국 동맹 구조를 갈라놓고, 우호국의 선택을 강요하며, 회색지대 분쟁을 확대한다.
이제 중일 갈등은 일본과 중국의 쌍방 문제가 아니다. 미중 경쟁의 동아시아 운영 방식이 일본이라는 축을 통해 구체화되는 과정이다. 중국이 일본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 했다는 대목은 이 구조를 정확히 드러낸다. 중국은 단지 일본을 벌주려는 것이 아니라, 대만을 둘러싼 연대가 확장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 일본을 고립시키는 것은 곧 미일, 더 넓게는 한미일의 결속을 흩뜨리는 간접 전략이다.
일본의 국내 정치가 위기 완화의 출구를 막는다
이번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일본의 국내 정치 변수를 외부 구조와 결합해 봐야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강경 보수의 상징으로 자신을 규정해왔고, 아베 노선을 계승하는 정체성이 정치적 기반이다. 대중 강경은 정책 선택 이전에 정치적 생존의 언어다. 그는 방위비를 GDP 대비 2퍼센트로 조기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논의까지 열어 놓았다. 위기 국면은 이런 정책을 정당화한다. 외부 위협이 커질수록 내부 반대는 약해진다. 따라서 갈등은 다카이치에게 단지 부담이 아니라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
더 결정적인 변화는 일본의 연정 구조와 당내 권력 지형이다. 대중 관계의 완충재 역할을 했던 세력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회색지대에서 타협을 설계할 수 있는 채널이 줄어들수록, 위기 관리 능력은 떨어진다. 외교는 결국 사람과 채널의 기술인데, 채널이 줄어든 환경에서는 작은 사건도 크게 번진다. 일본은 과거 위기를 겪으며 공급망을 디리스킹해왔고, 중국 의존을 낮추는 방향으로 산업 정책을 움직여왔다. 이는 위기 관리의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중국의 경제 압박을 ‘결정타’로 만들기 어렵게 한다. 그러면 중국은 더 강한 압박과 군사적 시위를 통해 심리적 효과를 노리게 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긴장을 낮추기보다 긴장을 ‘일상화’한다.
중국의 대응은 과거형 보복이 아니라 미래형 억제다
중국이 유엔에 공식 항의를 하고 각국 정상들에게 일본 비판에 동조하도록 압박했다는 대목은, 중국이 이 사안을 양자 문제로 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를 자처하며 국제 여론전의 자신감을 갖고 있다. 러시아를 지지하는 입장도 그 연장선에 있다. 즉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유라시아 전쟁과 글로벌 남반구의 정치 지형까지 묶어 “서방 동맹의 확장과 포위”라는 프레임으로 재구성한다. 이 프레임이 굳어질수록, 동아시아 위기는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 구조가 된다.
트럼프 2기 변수는 동아시아의 불확실성을 구조화한다
더 컨버세이션지가 도달하는 결론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축은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동맹에 대한 신뢰를 흔들며 국제체제의 양극화를 가속화했다는 점이다. 동맹이 흔들리면 억지는 약해지고, 억지가 약해지면 회색지대 도발은 늘어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동맹이 흔들릴수록 동맹국은 더 강경해질 수도 있다. 일본이 “대만 유사시는 일본의 생존 위협”이라고 규정한 배경에는, 미국이 언제나 자동으로 개입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약해진 구조적 불안이 깔려 있는 것이다. 확신이 약해질수록, 동맹국은 자기 의지를 과시하려 하고, 그 과시는 상대에게 위협으로 읽힌다. 이것이 동아시아의 안보 딜레마가 갖는 본질이다.
트럼프식 거래 외교는 위기 관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거래 외교는 순간의 성과를 만들 수 있지만,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대만과 센카쿠 같은 사안은 신뢰가 약해지는 순간, 오판의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은 미국의 동맹 운영 방식이 일관되지 않다고 판단할수록, ‘지금이 기회’라고 느낄 수 있다. 일본은 미국이 일관되지 않다고 느낄수록, 더 빨리, 더 크게 방위 역량을 강화하려 한다. 그 사이에서 한국은 선택의 압박을 더 직접적으로 받게 된다.
동아시아 질서에서 일본의 역할이 바뀌면 한국의 전략 공간도 바뀐다
일본은 단지 주변국이 아니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미국 전략의 핵심 거점이며, 중국 견제의 전초다. 일본이 대만을 안보 중심축으로 올려놓을수록, 미일 동맹은 대만해협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 재편은 자연스럽게 한미일 협력의 범위를 확장한다. 정보 공유, 미사일 방어, 해양 감시, 공급망 협력, 방산 협력의 연결이 강화된다. 한국에게 이것은 기회이자 부담이다.
기회는 명확하다. 한국이 동맹 네트워크를 통해 군사·기술·산업 협력의 심도를 높이면, 한국의 억제력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부담도 명확하다. 중국은 한미일 결속을 자신의 전략적 포위로 간주한다. 일본이 전면에 서면 한국은 후방이 아니라 측면이 된다. 즉 한국은 대만 문제와 무관하게, 대만 문제의 파장 안으로 끌려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한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군사 충돌보다 억제 신뢰의 붕괴에서 먼저 온다
한국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전쟁이 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억제(deterrence)가 어떻게 약화되는가”라는 질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중일 긴장이 상시화되면, 미군과 동맹국 전력은 분산된다. 분산은 곧 기회다. 북한은 이런 순간을 잘 이용한다. 북한은 대형 도발보다 회색지대 도발과 위협의 단계적 상승으로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흔드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긴장이 커질수록, 북한은 자신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한국은 두 개의 전선, 한반도와 대만해협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구조로 들어간다.
또한 경제안보의 군사화가 가속화된다. 전략광물과 소재, 부품의 병목은 방산 생산과 유지보수에 직결된다. 일본과 중국이 과거 희토류를 둘러싸고 충돌했던 기억은 상징이 아니라 실물 위험이다. 위기 상황에서 병목이 흔들리면, 군사력은 숫자가 아니라 가동률에서 무너진다. 한국의 억제력은 전투기와 미사일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운용할 수 있는 산업 기반과 공급망의 지속성에 달려 있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수출 감소가 아니라 비용 구조의 붕괴로 나타난다
중일 갈등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교역 통계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충격은 비용 구조에서 온다. 해상 리스크가 커지면 보험료가 오르고 운임이 오르며 재고가 늘고, 자본비용이 증가한다. 기업의 현금흐름은 그만큼 약해진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확대될수록 투자 결정은 늦어진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 정밀화학 같은 장치산업은 증설 타이밍이 이익률을 좌우한다. 타이밍이 흔들리면 경쟁력은 장기적으로 손상된다.
또 하나의 충격은 표준과 시장 접근에서 온다. 중국과 일본이 충돌할수록, 중국은 비관세 장벽과 보이지 않는 규정으로 시장을 조정하려 하고, 일본은 동맹 표준에 더 깊이 결속하려 한다. 한국 기업은 양쪽 규정의 교차 압박을 받는다. 어느 한쪽만 선택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 선택을 하더라도, 선택의 비용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기업만이 아니라 국가 성장률에 반영된다.
한국의 대응 전략은 줄서기가 아니라 병목을 끊고 표준을 선점하는 국가 설계다
이제 한국의 대응은 외교적 수사로는 부족하다. 동아시아 질서가 레버리지의 전쟁으로 재편되는 만큼, 한국은 병목의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첫째, 중국과 일본 사이의 긴장이 상시화되는 시대에 한국은 공급망의 군사적 취약성을 제거해야 한다. 전략광물과 핵심 소재의 조달을 다변화하는 수준을 넘어, 정제와 가공, 재활용, 대체 소재 개발까지 포함한 내재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것은 산업 정책이면서 안보 정책이다. 위기 시에 끊기지 않는 체인을 갖지 못하면, 억제는 공허해진다.
둘째, 한미일 협력은 군사 협력만이 아니라 경제안보 협력으로 실전화되어야 한다. 공동 비축, 공동 조달 기준, 상호 인증, 공급망 위험 정보의 실시간 공유가 필요하다. 협력은 선언이 아니라 운영체계다.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관계는 ‘의존의 축’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거래의 축’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핵심 병목에서의 과의존을 줄이고, 비핵심 분야에서는 교역을 유지하는 정교한 분리가 필요하다. 전면적 단절은 불가능하며, 무분별한 의존은 위험하다. 한국의 길은 그 사이의 정교한 설계다.
셋째, 대만해협 위기가 한국의 직접 위기로 번지는 경로를 차단해야 한다. 정보와 사이버, 해양 감시와 미사일 방어에서 한국의 독자 역량을 강화하되, 동맹과의 연동을 통해 억제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동맹의 신뢰가 흔들릴수록 한국은 더 강한 자체 역량을 요구받는다. 그 자체 역량은 단지 무기 구매가 아니라, 전시 지속 능력과 방산 생산 능력의 확보로 귀결되어야 한다.
넷째, 경제 측면에서는 비용 충격을 흡수할 금융과 산업의 안전판이 필요하다. 지정학 리스크가 커질수록 보험과 해운, 환헤지 비용이 증가한다. 기업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생산과 고용이 흔들린다. 국가 차원의 경제안보 컨트롤타워는 정보 분석을 넘어 금융 지원, 보증, 세제, 비축, 긴급 수입선 확보를 패키지로 운용해야 한다.
다섯째, 한국은 동남아와 인도, 중동에서 표준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동아시아가 불안정해질수록 글로벌 시장은 ‘대체 파트너’를 찾는다. 한국이 제조, 방산, 원전, 디지털 인프라에서 신뢰 가능한 패키지를 제공하면,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중국식 저가 패키지와 미국식 고가 패키지 사이에서, 한국은 가성비와 신뢰를 결합한 제3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이것은 경제 전략이자 외교 전략이며, 동아시아 질서의 압박을 외부 시장에서 상쇄하는 방법이다.
한국은 작은 사건이 큰 전쟁으로 번지지 않게 할 국가 시스템을 준비해야
중일 갈등은 오래된 갈등이지만, 지금의 갈등은 새로운 질서의 산물이다. 일본이 대만을 생존 문제로 규정한 순간, 중국은 억제의 문법으로 대응했고, 그 사이에서 동아시아는 출구 없는 긴장의 일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트럼프 2기의 불확실성이 동맹 신뢰를 흔들수록 이 긴장은 더 구조화될 것이다.
한국은 이 구조 속에서 중립의 환상으로 버틸 수 없다. 그렇다고 단순한 줄서기로도 살아남을 수 없다. 병목을 끊고 표준을 선점하며, 억제의 신뢰를 산업 기반까지 포함한 국가 역량으로 재정의하는 길만이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동아시아의 다음 위기는 선언이 아니라 공급망과 규정, 그리고 레이더 조준 같은 작은 사건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 작은 사건이 큰 전쟁으로 번지지 않게 만드는 힘은, 외교의 수사보다 국가 시스템의 준비에서 나온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