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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휴머노이드] “내 집 훔쳐본다” 美 프라이버시 vs “도시 전체가 실험실” 中 물량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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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휴머노이드] “내 집 훔쳐본다” 美 프라이버시 vs “도시 전체가 실험실” 中 물량공세

상용화 원년… 초기 가격 2만 달러·원격 제어 한계 뚜렷
美, ‘신뢰·보안’ 검증 주력 vs 中, 선전 앞세워 인프라·생태계 선점
기술 완성도 넘어 ‘사회적 수용성’과 ‘킬러 앱’ 발굴이 시장 패권 가를 분수령
애자일 로보틱스의 디지트는 이미 여러 창고에서 교대 근무를 하고 있지만, 안전을 위해 직원들과 분리되어 있다. 사진=애자일 로보틱스이미지 확대보기
애자일 로보틱스의 디지트는 이미 여러 창고에서 교대 근무를 하고 있지만, 안전을 위해 직원들과 분리되어 있다. 사진=애자일 로보틱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 SF 영화 속 상상력을 넘어 2026년 우리 안방과 공장으로 들어온다. 미국 기술 전문 매체 씨넷(CNET)과 중국 글로벌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14(현지시간), 휴머노이드 로봇이 내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진영이 가정 내 프라이버시와 안전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은 정부 주도로 도시 전체를 로봇 실험장으로 개조하며 생태계 장악에 나섰다.

안방에 낯선 사람이 있다…미국이 마주한 신뢰의 벽


미국 로봇 업계는 기술적 성취보다 신뢰(Trust)’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씨넷 보도를 보면 애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가 개발한 물류 로봇 디지트(Digit)’는 이미 미국 내 물류창고에서 상자를 나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철창이나 안전 펜스로 인간 노동자와 격리된 채 움직인다. 인간의 움직임을 감지해 멈추는 안전 기술을 탑재했지만,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 탓이다.

가정용 로봇은 더 큰 난관에 봉착했다. 오픈AI가 투자한 로봇 기업 1X는 최근 가정용 휴머노이드 네오(Neo)’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은 2만 달러(2950만 원)로 책정했다. 문제는 자율성이다. 1X 측은 초기 모델이 전문가에 의한 원격 조작방식으로 구동된다고 밝혔다. 이는 곧 누군가 내 집 안을 카메라와 마이크로 실시간으로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미국 보안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감시 국가의 공포와 낯선 사람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뒤섞인 형태라고 분석했다. 로봇이 아이나 반려동물과 섞여 생활하려면 단순한 기능 수행을 넘어 완벽한 보안과 프라이버시 보호가 필수다. 1X는 특정 구역 진입 금지 설정이나 데이터 공유 거부 기능을 넣겠다고 밝혔지만, 해킹이나 데이터 유출 우려를 완전히 씻어내기는 어렵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선전, 세계 최초 로봇 친화 구역선포…중국의 거침없는 질주


미국이 안전과 윤리 문제로 속도를 조절하는 동안, 중국은 거침없이 인프라를 깐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는 지난 14로봇 친화적시범 구역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단순히 로봇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로봇이 자유롭게 활보하며 학습할 수 있는 도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1+1+N’ 전략이다.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광둥성은 이미 중국 로봇 산업의 심장부다. 중국 전체 산업용 로봇 생산량의 40%, 서비스 로봇의 80%를 이곳에서 만든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광둥성 AI 핵심 산업 규모는 2300억 위안(48조 원)을 넘어섰다. 중국 정부는 여기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 국가급 제조 혁신 센터에 선정되면 최대 5000만 위안(104억 원)을 지원한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선전에 본사를 둔 유니콘 기업 유비테크(UBTECH)는 최근 단일 계약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휴머노이드 로봇 수주 실적을 올렸다. 중국 산업정보기술부 산하 전문가위원회의 판허린 위원은 중국은 방대한 내수 시장과 강력한 공급망을 무기로 기술 병목 현상을 돌파하고 있다정책 지원에 힘입어 중국 휴머노이드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2025년 중국 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가 82억 위안(17100억 원)에 달해 전 세계 시장의 5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2만 달러의 딜레마와 아이폰 모먼트


장밋빛 전망 속에서도 넘어야 할 산은 높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가격이다. 1X의 네오가 제시한 2만 달러(2900만 원)는 일반 가전제품으로 보기엔 턱없이 비싸다. 500달러(73만 원) 리스 프로그램도 대중화를 이끌기엔 부담스럽다.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처럼 필수재로 자리 잡으려면 확실한 킬러 콘텐츠가 필요하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빨래를 개거나 요리를 하는 등 복합적인 가사 노동을 완벽히 수행하기 어렵다. 초기 구매자들은 로봇을 일꾼이 아닌 고가의 장난감이나 얼리어답터용 기기로 소비할 공산이 크다.

일자리 위협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월가 금융권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장기적으로 노동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2026년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구실을 벗어나 현실 세계와 충돌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인간의 신뢰를 얻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진영이 차세대 아이폰 모먼트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샌드위치 위기의 한국… 제조업 강점 살리되 AI 두뇌 이식 시급


글로벌 로봇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로봇 밀도 세계 1인 한국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위기에 처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진단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Atlas)’와 삼성전자가 투자한 레인보우로보틱스 등이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생태계 전반을 보면 약점이 뚜렷하다. 핵심 부품인 감속기와 서보모터의 국산화율은 높아졌으나 여전히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린다.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AI 파운데이션 모델분야에서는 미국 빅테크 기업과의 격차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인프라와 통신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등 관계 당국은 2030년까지 로봇 산업 규모를 20조 원 이상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KAIST의 한 로봇 공학 교수는 단순히 하드웨어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 로봇이 다양한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SI(시스템 통합) 역량이 한국의 승부처라며 대기업의 자본과 스타트업의 AI 기술을 결합한 오픈 이노베이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026년이 휴머노이드 상용화의 원년이라면, 한국 기업들에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