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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 건조 '비상'…철강 공급망 붕괴에 '스틸 리스크'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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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 건조 '비상'…철강 공급망 붕괴에 '스틸 리스크' 현실화

리버티 스틸 달젤 공장, 현금 고갈로 원자재 매입 중단… FSS 함정용 강판 3만4000톤 공급 불투명
산지브 굽타 회장의 재정 위기가 국가 안보 위협으로 전이… "정부 개입해 국산 철강 생태계 살려야"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리버티 스틸 달젤(Liberty Steel Dalzell) 제철소 전경. 영국 해군의 차세대 함대 군수지원함(FSS) 건조를 위한 강판 공급 계약을 맺었으나 재정난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회사 측은 나반티아와의 주문 계약을 이행 중이며, 곧 시범 생산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가디언이미지 확대보기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리버티 스틸 달젤(Liberty Steel Dalzell) 제철소 전경. 영국 해군의 차세대 함대 군수지원함(FSS) 건조를 위한 강판 공급 계약을 맺었으나 재정난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회사 측은 "나반티아와의 주문 계약을 이행 중이며, 곧 시범 생산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가디언
영국 해군의 차세대 함대 군수지원함(Fleet Solid Support·FSS) 3척 건조 사업이 '철강'에서 걸렸다. 함정 건조용 강판을 공급하기로 한 스코틀랜드 리버티 스틸 달젤(Liberty Steel Dalzell) 공장이 원자재 매입 자금이 바닥나 본격 생산을 시작하지 못하면서, 핵심 자재 수급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18일(현지 시각) "달젤 공장에 슬래브(slab)를 살 현금 흐름이 없다"는 복수의 소식통 발언을 인용해, 영국 해군 조선 프로젝트가 공급망 리스크에 노출됐다고 보도했다.

돈 없어 원자재 못 사는 제철소... 멈춰 선 군함용 강판 생산


보도에 따르면 달젤 공장은 FSS 3척 건조에 들어갈 강판 3만4000톤을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그러나 강판 가공의 출발점인 슬래브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생산이 멈춘 상태다. 달젤은 브리티시 스틸(British Steel)로부터 슬래브를 들여와 넓은 강판(plate)으로 압연·가공해야 하는데, 대금 지급 여력이 떨어지며 공급이 막혔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소규모 시험 생산은 약 1000톤 수준으로, 공장 기준 "약 3일치 출력"에 불과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공장 직원들은 현재 임금의 80%를 받으며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차질은 리버티 스틸 모기업 GFG 얼라이언스의 유동성 위기와 직결돼 있다. GFG의 핵심 대출 창구였던 그린실 캐피털(Greensill Capital)이 2021년 파산한 뒤, 산지브 굽타(Sanjeev Gupta) 회장이 소유한 금속 사업군은 연쇄적으로 압박을 받아왔다. 가디언은 굽타가 일부 자산 통제권을 상실했고, 달젤 공장은 5년째 결산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으며, 영국 중대사기수사청(SFO)이 장기간 사기 혐의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FSS는 영국 해군 군수지원 전력의 핵심으로, 항공모함 전단에 탄약·식량 등 보급품을 공급하는 왕립함대보조함(Royal Fleet Auxiliary)용 대형 플랫폼이다. 선박 길이는 216m로, 3척 모두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건조될 예정이다. 스페인 국영 조선사 나반티아(Navantia)가 사업을 맡고 있으며, 나반티아는 지난해 영국 기업의 경영 붕괴 이후 하랜드 앤 울프(Harland & Wolff) 조선소 부지를 인수한 것으로 보도됐다. 첫 함정인 RFA 리서전트(Resurgent)는 2031년 인도가 예상된다. 다만 강판 공급이 지연되면 후속 공정 전반에 연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보 주권의 위기... "철강 없이 군함도 없다"


스코틀랜드 금속업계 거물 데이비드 머레이(Sir David Murray) 경은 정부의 개입을 촉구했다. 머레이는 달젤 공장 운영권을 넘기도록 정부가 리버티 스틸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공장 정상화를 위해 5000만 파운드(약 986억 원) 투자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혀 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는 "조선소(하랜드 앤 울프)와 BAE 시스템즈 같은 고객이 불과 17마일 떨어져 있는데도, 영국 경제가 넓은 강판을 자체 공급할 역량을 잃어가도록 방치하는 것은 끔찍한 판단 착오"라며 "앞으로 모든 것을 수입에 의존할 수는 없고,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고 말했다.

달젤 공장 정상화는 브리티시 스틸에도 의미가 있다. 브리티시 스틸은 스컨소프(Scunthorpe)에서 생산한 슬래브의 주요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가디언은 영국 중앙정부가 지난해 4월 중국 징예(Jingye)로부터 브리티시 스틸을 사실상 통제하는 조치를 취했고, 손실을 메우기 위해 2억7400만 파운드(약 5400억 원)를 투입해왔다고 전했다.

리버티 스틸은 "나반티아 주문을 이행하고 있다"면서 "시험 생산이 곧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값싼 수입산과의 경쟁으로 판재(merchant plate) 판매 여건이 어려웠지만, 영국의 무역 조치와 영·미 관세 환경 등이 달젤 공장의 생산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반티아 영국 법인은 논평을 거부했다.
이번 사안은 '국산 조달'과 '공급망 안정'을 내세웠던 방산 프로젝트가 정작 중간 공정(가공) 단계의 유동성 위기 하나로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이 해군 전력과 산업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과정에서, 철강·조선 등 기초 제조 기반의 재무 건전성과 국가 차원의 리스크 관리 체계를 어디까지 끌어올릴지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황상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123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