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입자 가속기' 고장 제로화 도전…CERN, 27km 지하터널에 AI 로봇 쥐 투입

글로벌이코노믹

'입자 가속기' 고장 제로화 도전…CERN, 27km 지하터널에 AI 로봇 쥐 투입

초소형 로봇 '파이프이니어' 영하 271도 극한지대 누빈다…AI 예방 정비 시대 개막
국내 가스·에너지 배관망 점검 체계 혁신 시사점…고위험 현장 '무인화' 가속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가속기 내부의 핵심 혈관이라 불리는 빔 파이프 점검을 위해 AI 탑재 초소형 로봇 ‘파이프이니어(PipeINEER)’를 전격 실전 배치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가속기 내부의 핵심 혈관이라 불리는 빔 파이프 점검을 위해 AI 탑재 초소형 로봇 ‘파이프이니어(PipeINEER)’를 전격 실전 배치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인류 근원의 수수께끼를 푸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기술을 입고 ‘중단 없는 실험’을 향한 기술적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영국 IT 전문 매체 ‘더 레지스터(The Register)’의 지난 5일(현지시각) 보도와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가속기 내부의 핵심 혈관이라 불리는 빔 파이프 점검을 위해 AI 탑재 초소형 로봇 ‘파이프이니어(PipeINEER)’를 전격 실전 배치했다.

이는 지난 30여 년간 가속기 유지보수의 난제로 꼽혔던 ‘해체 후 점검’ 방식을 ‘자율 주행 예방 정비’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하 271도 진공 튜브의 파수꾼…2000개 모듈 실시간 전수 조사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지대 지하 100m에 설치된 27km 길이의 LHC는 우주 탄생 초기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영하 271.3도의 극저온과 초고진공 상태를 유지한다. 이 거대 장치 내부에는 열팽창과 수축을 조절하는 플러그인 모듈(PIM)이 약 2000개가량 촘촘히 박혀 있다.

문제는 모듈 내부에 위치한 얇은 무선 주파수용 전기 접점 부품인 ‘핑거(RF fingers)’다. 이 미세한 부품이 극한의 환경에서 휘어지거나 변형될 경우, 빛의 속도에 가깝게 회전하는 입자 빔의 궤적을 이탈시켜 수조 원대 장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과거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가속기 구간을 통째로 해체해야 했으나, 이제 너비 3.7cm의 파이프이니어가 이 난제를 정조준한다.

영국 원자력기구(UKAEA) 산하 원격응용환경로봇센터(RACE)가 개발한 이 로봇은 배터리 전력만으로 최대 6km를 자율 주행한다.

특히 라이다(LiDAR)와 비행시간 거리 측정(ToF) 센서를 활용해 칠흑 같은 파이프 내부에서 자기 위치를 cm 단위로 정확히 짚어낸다.

'온디바이스 AI'로 통신 절벽 극복…국내 에너지 시설 적용 가능성 증폭

파이프이니어의 핵심 경쟁력은 외부와의 통신이 단절된 진공관 안에서 스스로 결함을 판단하는 ‘온디바이스(On-device) AI’에 있다.

로봇에 탑재된 ‘엣지 임펄스(Edge Impulse)’ 플랫폼 기반 AI 모델은 고해상도 영상을 촬영함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부품의 변형 여부를 판독한다.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로봇은 즉시 출발지로 귀환해 결함의 위치 정보를 보고한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국내 에너지 및 사회간접자본(SOC) 관리 분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로봇 업계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CERN의 사례처럼 극한 환경에서 구동되는 초소형 점검 로봇 기술은 국내의 복잡한 도시가스 배관이나 지하 공동구, 원전 내부 협소 공간 점검에 즉각 도입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국내 일부 스타트업들도 유사한 형태의 파이프 점검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이번 CERN의 실전 투입 결과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CERN의 로봇 군단 생태계…'로봇 개'부터 '모노레일 감시단'까지


CERN은 파이프이니어 외에도 다각화된 로보틱스 에코시스템을 구축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4족 보행 로봇인 'CERNquad'는 계단과 장애물을 넘나들며 방사능 수치와 산소 농도를 감시하고, 천장 모노레일을 달리는 'TIM(Train Inspection Monorail)'은 시속 6km로 이동하며 실시간 온도 분포를 분석한다.

이들 로봇 군단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위험 구역의 데이터를 수집해 예방 정비 시스템을 완성하는 역할을 한다.

닉 사이크스 RACE 소장은 공식 발표를 통해 “핵융합 에너지와 입자 물리라는 인류 최첨단의 영역이 로봇 기술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게 됐다”며, 이러한 원격 핸들링 기술이 미래 거대과학 시설의 표준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무인화 기술, 과학을 넘어 산업 안전의 표준으로


CERN이 이번에 도입한 AI 로봇 쥐는 단순한 정비 보조 도구가 아니다. 이는 거대 인프라 관리의 패러다임을 '사후 처리'에서 '실시간 예측'으로 전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국내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강화와 노후 배관망 교체 주기가 맞물리면서 고위험 현장의 무인화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영하 271도의 혹한을 견뎌낸 파이프이니어의 기술력은 조만간 우리 일상의 안전을 담보하는 지하 가스관이나 열수송관 내부로 이어질 전망이다.

인류의 근원을 찾는 실험실에서 검증된 AI 로봇 기술이 산업 현장의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