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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쟁 비용 마련에 '황금 곳간' 바닥…금·외화 3조원 긴급 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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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쟁 비용 마련에 '황금 곳간' 바닥…금·외화 3조원 긴급 매각

재정 적자 108조 원으로 4배 폭증…'요새 경제' 붕괴 신호탄
에너지 수입 25% 급감에 3년 비축분 4분의 3 증발 GDP 수치만 성장한 '전시 경제'…실물 기초 체력은 고갈
러시아 정부가 장기화하는 전쟁 비용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가복지기금(NWF)'을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처분하고 있다. 에너지 수출 부진으로 세수가 급감하자 비축해 둔 금과 외화를 팔아치우며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 정부가 장기화하는 전쟁 비용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가복지기금(NWF)'을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처분하고 있다. 에너지 수출 부진으로 세수가 급감하자 비축해 둔 금과 외화를 팔아치우며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이미지=제미나이3
러시아 정부가 장기화하는 전쟁 비용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가 자산의 최후 보루인 '국가복지기금(NWF)'을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처분하고 있다. 에너지 수출 부진으로 세수가 급감하자 비축해 둔 금과 외화를 팔아치우며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폴란드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21(현지시각), 러시아 재무부가 부족한 예산을 확보하고자 금과 외화 매각 규모를 지난달보다 두 배 이상 늘렸다고 보도했다. 이는 러시아가 자랑하던 풍부한 외환보유액과 자원 수익이 전쟁 3년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는 결정적인 방증이다.

3년 만에 금 비축량 4분의 3 증발…코로나19 때보다 다급


러시아 재무부는 이번 기간에 총 1921억 루블(36500억 원) 규모의 자산을 시장에 내다 판다. 하루 평균 매각액으로 환산하면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가 마비됐던 시기의 114억 루블(2169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러시아 역사상 자산 매각 속도가 이토록 빨랐던 적은 없다.

러시아 경제 매체 '모스크바 타임스' 분석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러시아의 비상금 노릇을 하는 국가복지기금 규모는 전쟁 전과 비교해 56000억 루블(1065600억 원)이 줄어들었다. 현재 잔고는 전쟁 전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전쟁 수행 과정에서 환금성이 좋은 금 비축량의 약 4분의 3을 이미 현금으로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곳간이 비어가는 속도가 채워지는 속도를 압도한다.

에너지 수입 25% 급감…재정 적자 전망치 4배 폭증


러시아가 이처럼 급하게 '황금 곳간'을 여는 까닭은 국가 수입의 핵심인 에너지 부문이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수입은 전년보다 25% 줄어들며 팬데믹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서방의 가격 상한제와 유럽 시장 상실이 뼈아픈 타격이 됐다.

수입이 줄어드니 나라 살림엔 빨간불이 켜졌다. 당초 러시아 정부는 올해 재정 적자를 12000억 루블(228300억 원)로 예상했지만, 현재는 이보다 4배 이상 높은 57000억 루블(10847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수정 전망했다. 예상보다 전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돈 들어올 구멍은 좁아진 탓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 흐름이 심상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러시아산 원유 가격이 여기서 더 떨어진다면 수출 수입이 350억 달러(512700억 원)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도 나온다.

서방 제재 '지연 효과' 본격화…'요새 경제'의 한계


이번 자산 매각 사태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효과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실물 경제의 뼈대를 깎아내리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그동안 러시아는 높은 에너지 가격과 내수 부양으로 제재를 버티며 외부 충격으로부터 자국 경제를 방어하는 이른바 '요새 경제'를 표방해 왔다. 하지만 이제 그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에너지 수익성 악화와 함께 핵심 부품 공급망 차단에 따른 산업 생산성 저하가 러시아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전쟁 동원으로 발생한 노동력 부족이 임금과 물가를 동시에 밀어 올리는 악순환까지 겹쳤다.

미래 세대를 위해 써야 할 국가 예비비를 소모적인 전쟁 비용으로 탕진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성장 동력을 잃고 장기적인 침체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황금 곳간'을 헐어 쓰는 지금의 방식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비관론이 힘을 얻는다.

러시아 GDP 변화, 2020vs 2025년… '나쁜 성장'의 그늘


한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등의 최신 자료를 종합해 보면, 전쟁 전후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수치상 GDP는 증가했으나 그 내막은 '속 빈 강정'에 가깝다.

전쟁 전인 2020, 러시아의 명목 GDP는 약 14800억 달러 수준(2168조 원)이었다. 당시에는 에너지 수출과 민간 소비가 경제를 지탱하는 정상적인 시장 경제 구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전쟁 4년 차인 2025년에는 명목 GDP가 약 2조 달러(추정치, 2931조 원)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며 표면적으로는 30% 이상 성장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이를 전형적인 '전시 인플레이션 성장'으로 규정한다. GDP 증가분의 대부분이 탱크, 포탄 생산 등 소모성 군수 산업 지출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민간 소비재 생산이나 서비스업 투자는 위축됐다.

더욱이 20204%대였던 기준금리는 2025년 현재 20%를 상회하는 살인적인 수준이며, 물가 상승률 역시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수치상의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고금리·고물가·노동력 부족이라는 '3중고' 속에 러시아 경제의 질적 수준은 2020년 이전보다 현저히 퇴보했다는 것이 글로벌 금융권의 공통된 평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