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종속 끊겠다" 베이징의 도박… 화웨이·캠브리콘엔 기회, AI 생태계엔 위기
하드웨어 자립 외치다 인재 떠날라… '기술 쇄국' 딜레마 현실화
하드웨어 자립 외치다 인재 떠날라… '기술 쇄국' 딜레마 현실화
이미지 확대보기디지타임스는 22일(현지시각) "미국 정부가 규제 요건을 충족한 H200의 중국 수출을 승인했음에도 중국 정부가 이를 거부해 공급 계획이 전면 보류됐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엔비디아의 중국 진입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로 미국의 제재가 아닌 베이징 당국의 '의지'를 지목했다.
美는 "팔겠다"는데 中은 "필요 없다"… 엇갈린 셈법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내 IT 기업들은 H200 도입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H200은 전작인 H100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약 2배 빠른 최신 칩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탑재해 생성형 AI 연산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판단은 냉정하다. 자국 AI 반도체 기술이 이미 실무에 사용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으므로, 더는 미국의 기술 종속을 심화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이러한 기조는 화웨이(Huawei), 무어스레드(Moore Threads), 캠브리콘(Cambricon), 티헤드(T-Head) 등 현지 칩 제조사에는 즉각적인 수혜로 이어진다. 세계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엔비디아 칩과 직접 경쟁을 피하면서 거대한 내수 시장을 독점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사(CSP)들은 정부 압박에 따라 국산 칩 비중을 늘려야 하는 처지다.
화웨이 '어센드' vs 엔비디아… '강제 자립'의 그늘
중국 정부가 빗장을 건 자신감의 배경에는 화웨이의 AI 가속기 '어센드(Ascend) 910B'가 있다. 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어센드 910B의 연산 성능(FP16 기준)은 엔비디아의 이전 주력 모델인 'A100'의 80~90% 수준까지 올라왔다. 텍스트 기반의 일반적인 AI 추론 작업에는 무리가 없다는 게 베이징의 계산이다.
그러나 'H100'이나 'H200' 등 최신 모델과 비교하면 기술 격차는 여전하다. 특히 AI 학습 속도를 좌우하는 '메모리 대역폭'과 칩 간 데이터 전송 속도에서 화웨이 칩은 엔비디아에 크게 뒤처진다. 하드웨어보다 더 큰 장벽은 소프트웨어 생태계다. 전 세계 AI 개발자의 표준인 엔비디아 '쿠다(CUDA)' 플랫폼을 화웨이 자체 플랫폼 '캔(CANN)'으로 대체하기에는 호환성과 안정성 면에서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장비 뒤처지면 사람도 떠난다"… 인재 유출 '경고등’
문제는 현실적인 인프라 격차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우회 경로를 통해서라도 엔비디아 칩을 확보하려 애쓰는 현실은 국산 칩만으로는 고도화된 AI 모델 학습에 한계가 있음을 방증한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칩 업체들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도 고립 상태다. 미 상무부 제재로 세계 1위 파운드리인 대만 TSMC의 첨단 공정을 이용할 수 없어서다. 자국 파운드리인 SMIC가 7나노 이하 공정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수율과 성능 면에서 TSMC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AI 생태계 전체를 고사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드웨어 성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최신 연구가 불가능하고, 이는 곧 핵심 인재 이탈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디지타임스를 통해 "중국의 AI 개발 환경이 미국보다 낙후되면 해외 유학파 인재들이 귀국을 꺼릴 것"이라며 "이는 중국 AI 경쟁력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자주독립'을 외치다 '기술 고립'에 빠지는 딜레마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엔비디아와 AMD 등 미국 기업들은 거대 중국 시장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미·중 양국 정부의 정치적 셈법 사이에 끼어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번 H200 사태는 기술 패권 경쟁이 기업의 이익을 넘어 국가의 자존심 대결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남을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