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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유의 N잡탐구] 일자리 51% 흔드는 AI…"도구였던 AI, 내 직업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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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유의 N잡탐구] 일자리 51% 흔드는 AI…"도구였던 AI, 내 직업 삼킨다"

HR 플랫폼 ‘딜’의 국내 기업 임원진 대상 인공지능 도입과 채용 변화 설문 조사' 자료. 응답자의 32.5%는 AI가 사람보다 효율적이면 AI를 채용하겠다고 답했다.이미지=딜 이미지 확대보기
HR 플랫폼 ‘딜’의 국내 기업 임원진 대상 인공지능 도입과 채용 변화 설문 조사' 자료. 응답자의 32.5%는 "AI가 사람보다 효율적이면 AI를 채용하겠다"고 답했다.이미지=딜
인공지능(AI)이 한국의 고용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심지어 한 국책연구기관은 오는 2030년까지 전체 일자리의 90%를 AI와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대체 대상은 단순 노무직은 물론, 복합 창의성과 판단력을 요구하는 전문직도 포함돼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한국 근로자들이 누려온 평생 직장, 평생 직업이 멸종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형국이다.

한국은행의 2025년도 보고서 'AI와 한국 경제'에 따르면 전체 일자리 중 51%가 AI의 직접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가운데 27%는 '대체 위험'에, 24%는 '생산성 향상' 효과에 노출돼 있다. AI가 돕는 도구인지, 내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한 HR 테크 기업 관계자는 "매일의 업무를 회사가 AI로 자동화하면서 훨씬 간편하고 빠르게 처리하게 됐지만, 매번 내 피드백을 학습하며 더 정교해지는 시스템을 보면서 언젠가는 내가 아예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면서 "일부러 모든 조언을 하지 않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털어놨다.

AI의 영향은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고학력·고소득 전문직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은 국내에서 AI로 대체 가능한 일자리가 약 327만 개(전체의 13.1%)이며, 이 중 60%는 전문직에 집중돼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금융업에서는 대체 위험군의 99%가 경영·재무 전문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30년까지 전체 일자리의 90%가 AI와 로봇으로 상당 부분 대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방장, 냉난방 설비 조작원, 음료 조리사 등은 100% 자동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작가(80%)나 항공기 조종사(78%)처럼 복합 창의성과 판단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직무조차 높은 대체율을 기록했다.

AI 침투가 어려운 직종도 있기는 하다. '대면' 상호작용이 중심인 가수, 대학교수, 운송 서비스 종사자, 사회복지사 등은 인간의 감성과 판단이 요구돼 대체율이 낮았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미국에서 법률(44%)과 행정(46%) 직무는 AI 노출도가 높지만, 건설이나 유지보수 분야는 6% 이하로 분석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동시에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WEF는 2030년까지 약 9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대신 AI·빅데이터·사이버보안 관련 분야에서 1억7000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메릴랜드대학교와 링크업(LinkUp)의 분석에 따르면, 2022년 말 이후 미국 내 AI 관련 채용 공고는 68% 증가했으며, AI 비관련 직무는 27% 줄었다.

기업의 대응은 신기술 인력 충원을 하지 않고 오히려 구조조정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 보인다.

정보기술 기업 IBM은 인사 부문에서 200명을 챗봇으로 대체했고,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전체 직원 수를 5000명에서 3000명으로 줄였다. 미국 경제 매체 CNBC에 따르면 "기업들이 감원을 '재편성'이나 '최적화' 같은 표현으로 포장하며 AI 도입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독일 틱톡 지사에서는 '콘텐츠 모더레이터' 업무를 중국산 AI와 외주로 대체하려 해 직원들이 집단 시위에 나선 바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우리가 기계를 가르쳤는데, 기계가 우리를 해고한다"며 항의했다.

국내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한 HR 플랫폼 '딜'의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확인된다. 응답자의 32.5%는 "AI가 사람보다 효율적이면 AI를 채용하겠다"고 답했으며, 36.4%의 기업은 이미 AI 채용 기술을 도입한 상태다. 절반 이상은 AI 도입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구직자 처지에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상반기 체감 구직난이 '심화했다'는 응답이 83.1%에 이르렀다.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다. 38.4%는 '더 악화할 것'이라고 봤고, 48.9%는 '현재 수준이 유지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노동시장 구조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HR 업계 한 관계자는 "내가 쓰는 AI라는 도구가 나를 삼키게 되지 않도록, 도구를 다루는 인력에 대한 자리 보장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결 열쇠는 AI가 어디까지 사람의 일을 '보완'하고, 어디서부터 '대체'해도 되는지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 판단이 기업과 기술이 아닌 사람의 손에 남을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방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김지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ainma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