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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47주년에 돌아본 김우중의 '세계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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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47주년에 돌아본 김우중의 '세계경영'

[글로벌이코노믹=곽호성 기자] 22일 대우그룹 창립 47주년 행사가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에서 그룹 전직 임직원 모임인 '대우인회'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주최로 열렸다. 오전 10시 대우재단빌딩에 모여 남산 둘레길을 걷는 행사로 시작한 후 점심을 함께하며 창립 기념행사를 가졌으며 저녁 6시30분에는 옛 대우그룹 임직원 모임인 대우인회의 정기총회도 열릴 예정이다.

김우중 전(前) 대우그룹 회장은 이번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 2월 공무원이나 기업인 등 일반인의 차명 재산도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김우중 법'이 국회에 상정됐다. 따라서 김우중 전 회장은 17조 9253억원의 추징금을 내야 할 처지다.

김 전 회장은 1936년 태어났다. 김 전 회장의 부친 고(故) 김용하 선생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스승이었다. 그는 1960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한성실업이라는 기업에 입사해 6년 간 경험을 쌓은 후 1967년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실업은 미미한 크기로 시작했지만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 등에서 섬유산업으로 성공해 1970년대에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으로 사업을 확장, 신흥 재벌로 떠올랐다. 1983년 대우그룹은 새한 자동차를 인수하고, 재계 4위로 올라섰다. 1989년에 출판한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3년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선포했다.
그러나 1998년의 IMF 구제금융 사태는 한국 경제와 대우그룹에 큰 타격을 주었다. 빚이 많았던 대우그룹은 결국 무너져 내렸다. 1999년 8월 26일, 구조조정으로 계열사 41개중 16개가 매각되었고 남은 25개 회사 중 12개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1999년 11월 1일, 김 전 회장은 13명의 대우그룹 사장단들과 함께 경영권 포기 및 회장직 사퇴를 발표했다.

이후 5년 8개월 간 해외 도피를 했고 2005년 6월 14일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검찰조사를 받았다. 2006년 11월 3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6개월,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의 형을 구형받았는데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2008년 1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사면됐다.

대우그룹이 93년 ‘세계 경영’을 모토로 내세웠던 것은 당시 대우그룹의 상황 때문이었다. 대우그룹은 조선업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자동차의 경우에는 현대그룹에, 전자의 경우에는 삼성과 LG에 막혀 있었다. 건설도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막혀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는 더 이상 뻗어나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CEO 김우중은 세계 경영을 목표로 내걸은 것이다.

김우중 회장은 개발도상국가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을 내세웠다. 그래서 폴란드에 대우자동차가 진출하고, 루마니아에 대우중공업이 진출하고 월남에 ㈜대우가 진출하는 식으로 활발한 진출이 이뤄졌다. 1990년대 말 대우그룹은 재계 2위까지 그 지위가 상승한다. 그렇지만 세계경영은 막대한 빚을 만들었고 결국은 그 빚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해외 진출과정에서 김 전 회장은 무리한 차입 경영을 했고 투자금 대부분을 외부 차입을 통해 마련했다. 문제는 이익을 내는 해외 사업장이 드물었다는 점이다. 대우의 원화 단기 차입금은 지난 98년말 9조8500원까지 늘어났고 부채 역시 22조원에 달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외환위기는 대우그룹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비록 과감한 해외 진출이 한국 경제의 발전과 기업들의 도전정신 고취에 기여한 부분도 있지만 무리한 차입경영과 높은 부채비율은 결국 기업을 무너뜨렸다.


▲지난해열린대우그룹창립46주년행사에참석했던김우중前대우그룹회장이미지 확대보기
▲지난해열린대우그룹창립46주년행사에참석했던김우중前대우그룹회장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소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우의 세계경영은 무리한 차입경영으로 한 순간에 붕괴된 것”이라며 “바람직하지 못한 경영이었고 김우중 전 회장의 추징금도 완전히 환수가 안 된 상황이기 때문에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고 끝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다시 세계경영에 나선다면 그룹 전체의 이익보다는 개별 회사 자체의 이익에 충실하고, 독립경영을 존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우그룹 약사


-67년 3월 대우실업 창립
-69년 8월 국내기업 해외지사 1호로 호주 시드니 지사 개설
-74년 1월 대우전자 설립
-77년 6월 대우센터 본사사옥 준공
-78년 7월 새한자동차 인수
-78년 9월 대우조선 설립
-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82년 1월 (주)대우 출범
-93년 3월 '세계경영' 전략 채택
-98년 1월 쌍용자동차 인수
-99년 7월 대우그룹 구조조정 가속화 및 구체적 실천방안 발표
-99년 7월 김우중 회장, '자동차 정상화 후 퇴진' 선언
-99년 8월 (주)대우 등 12개 계열사 워크아웃 돌입
-99년 11월1일 김우중 회장 및 12개 계열사 사장단 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