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 완성을 위해 고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는 그 존재감은 더 희미해졌다. 공교롭게도 조선업 몰락이 시작됐고 동국제강은 포스코, 현대제철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후판사업에서 먼저 손을 땔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2012년 포항 1후판 공장을 폐쇄한데 이어 지난해 8월에는 포항 2후판 공장까지 문을 닫았다.
이 와중에 장세주 회장은 불미스러운 일로 실형선고까지 받으면서 그룹은 더 침울한 시기를 보냈다. 동생인 장세욱 부회장이 그룹 수장을 대신해 맡았다. 표면에 드러난 것은 내외부의 우려 깊은 인식이었지만 사실 동국제강은 이 때부터 대단한 일들을 이뤄내 왔다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한창 시절이 지난, 소위 한물 간 동국제강이 구조조정 1순위로 지목된 시기였기에 장 부회장의 2년간의 성과는 더욱 빛이 났다고 본다.
하지만 그룹의 구조조정과 성장동력 마련, 벽과 틀을 깬 조직문화의 전환 등 그의 행보는 흔들림도 거칠 것도 없없다. 성과는 현재에 빛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2015년 계열사 유니온스틸과의 합병을 마무리하면서 그룹 역량을 집결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간부급이 옷을 벗어야 했다.
후판 공장도 폐쇄해 지금은 1개 라인밖에 남지 않았다. 후퇴로 인식될 수 있지만 유니온스틸 합병과 함께 최근 No.9 컬러강판설비(CCL)까지 완공, 동 분야에서는 글로벌 ‘톱’이라는 타이틀을 사실상 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얻었다.
올해 6월애는 브라질 CSP 준공, 또 하나의 최초 타이틀을 얻으면서 그룹 역사에 기록으로 남겼다.
단지 그룹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지속적이고 열정적인 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위 고하의 벽을 허물기 위한, 조직의 융합과 역량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행보였다. 요즘에는 점심시간을 활용, 사내에 다트(DART) 게임을 토더먼트로 진행해 조직 분위기를 한층 활기차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장 부회장의 지난 2년의 활동은 기자가 인식한 수준에서는 우리나라 철강업계 어느 곳에도 없었던 것 같다.
유수 철강사들이 단지 조직을 자르고 붙이고 실적 목표를 채우기 위한 발버둥에 가까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를 쳤다. 기업 분위기는 삭막하고 늘 예민한 긴장감만이 흘렀다.
대기업 그룹 오너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장 부회장을 한 명의 철강사 경영인, 리더로서의 면만을 보면 다른 철강 기업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일 아닌가.
장 부회장에게 이제 또 하나의 과제가 생겼다. 형님인 장세주 회장 장남인 장선익 과장이 이사로 승진하면서 4세대 경영수업을 맡게 된 것이다.
동국제강 후세대 경영인들은 현장 실무를 차곡차곡 쌓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장세주 회장은 1978년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경리부 회계과장, 일본 지사를 거쳐 8년 만에 동국중기공업 상무이사로 첫 임원이 됐다.
장세욱 부회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령으로 제대, 34세가 되어서야 과장으로 입사했다. 임원은 42세에 달았다. 보통 대기업 3~4세대 경영인들은 3년 정도가 되면 임원을 단다. 이 같은 그룹 전통에 따라 장선익 이사도 10년차에 임원이 됐다.
장 부회장은 올 초 한 임원에게 그룹 내에 창업정신을 심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제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들어가는 장 이사에 대한 기대도, 관심도 높은 만큼 스승으로서의 장 부회장의 숙제는 또 다시 시작된다. 국영기업으로 시작한 포스코, 거대한 현대차그룹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현대제철과는 또 다른 철강 기업으로서의 새로운 도전과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고 싶다.
김종혁 기자 jh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