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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한 일은 이재용 회장 ‘4세 승계 포기’ 발언 끌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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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한 일은 이재용 회장 ‘4세 승계 포기’ 발언 끌어낸 것”

김우진 삼성 준감위 위원 삼성 ‘2022 연간보고서’서 밝혀
‘삼성 호암상’ 개칭, 일반주주 권리 관심 기울이게 된 상징
‘틀 안에서 사고‧준감위 위상 오르고‧총수 약점도 강의’ 변화
김우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 사진=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미지 확대보기
김우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 사진=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가장 잘한 업적은 이재용 회장이 2020년 5월 선언한 ‘4세 승계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끌어낸 것입니다.”

김우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위원은 29일 준감위가 발간한 ‘2022 연간보고서’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연간보고서는 준감위가 삼성의 7개 주요 계열사(전자‧물산‧SDI‧전기‧SDS‧생명‧화재)에 대한 준법 감시활동 결과를 담고 있다.

당시 부회장이었던 이 회장은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승계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며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드린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이를 준감위의 최고 업적으로 꼽은 김 위원은 “재벌 그룹의 승계 이슈와 관련해 사회적 관심이나 감시의 정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저는 이 회장의 발언에 진정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현행 법령상 제도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동일인 이슈에서 총수 일가 개인에서 회사로 동일인이 바뀐 전례가 몇몇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 없을 정도로 동일인 지정은 총수의 아들로 계속 이뤄져 왔다는 점, 회사가 총수의 지배력 없이도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 등 실제로 살펴볼 쟁점들이 많이 있다고 강조했다. 포스코나 KT 사례를 보듯이, 회사를 지배하는 총수 일가가 없는 경우 현실적으로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점도 잘 살펴야 한다고도 했다.

김 위원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호암상을 ‘삼성 호암상’으로 명칭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상 이름을 바꿨다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지배주주 일가에 가려져 있던 일반주주의 권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상징적인 예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암상을 처음 만들 때는 범삼성가인 CJ, 신세계 등에서도 출연을 했기 때문에 삼성 이름 대신 호암이라는 이병철 창업회장 호를 쓴 것”이라며 “지금은 CJ, 신세계는 빠지고 삼성 일부 관계사에서 기부하는 돈으로만 상을 운영하므로 삼성 일반주주 입장을 고려한다면 삼성을 빠뜨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절차를 거쳐 결국 명칭을 바꾸어 준 점에 대해 지금도 뜻깊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저는 이런 의미를 이유로, 본 사례를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로 2020년 2월 준감위 출범 이후 지금까지 만 3년이 넘는 기간 1·2기에 걸쳐 가장 오랫동안 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위원회 활동 후 삼성이 확실히 세 가지가 변했다고 강조했다. 첫째는, 과거에는 삼성이 소위 ‘로비’를 해서라도 무엇인가 컨스트레인트(제약)를 바꿔서, 즉 본인들 입맛에 맞게 게임의 룰을 바꾸려 하며 비난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그런 제약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룰을 지키면서 일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바꿔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준법감시조직의 위상 변화다. 김 위원은 “출범 후 2년이 지나서 새 위원장님이 삼성에서 파견 나온 인력들을 면담하면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돌아가도 좋다’는 취지로 얘기를 했는데, ‘모두 위원회에 남고 싶다’고 한 것을 보고 준법감시조직의 위상이 바뀌었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 위원은 “삼성 인력개발원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준법 강의를 정기적으로 하는데 일반적으로 재벌 기업에서 총수 일가에 누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얘기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 저는 지금 삼성 임직원들을 상대로 합병 이슈를 포함해서 그 어떤 주제로든 자유롭게 강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직원들의 강의 평가 결과도 굉장히 좋다. 이제 삼성은 많이 변했고, 점점 세련돼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다른 기업에서 삼성 준감위 같은 기구를 만들고 싶다고 조언을 구하면 어떤 충고나 조언을 해줄 것인지에 대해 김 위원은 “목적이 무엇이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위원회는 처음에는 재판 때문에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재판이 다 끝난 지금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제 이 조직이 상시 기구로서 어떻게 보면 ‘레드팀’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큰 조직이면 어떤 사안이 문제가 되기 전에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레드팀’이 있어야 한다. 그룹 차원에서 다양한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위해 또 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준법감시기구를 두겠다는 목적이라면 권하고 싶다”고 했다.

김 위원은 다만 그 목적이 그냥 ‘워싱’이 되어서는 괜히 예산만 쓰고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조직은 최고 의사결정자 지배주주 총수 일가의 결단이 있어야 하지,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모양상으로만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위원은 “경기가 어려워지면 가계는 아이들의 학원을 줄이고 외식비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듯이, 회사도 임직원 교육‧훈련‧연수를 줄이고 돈 안 버는 지원부서를 축소하고 이렇게 하기 마련인데, 저는 컴플라이언스는 그중의 하나가 되면 안 된다고 본다”면서 “우리가 힘들어도 건강검진을 줄이면 안 되듯이, 회사가 힘들더라도 컴플라이언스에 관련된 것들은 약해지면 안 되고 그것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 중심을 잃지 않고 정도(正道)를 가는 방향으로 해주시면 좋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