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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규제 강화 산업계 비상] 정부 탄소규제 상향에 산업계 '혼란'..."시간도, 기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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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규제 강화 산업계 비상] 정부 탄소규제 상향에 산업계 '혼란'..."시간도, 기술도 없다"

감축 목표 상향에 비용 폭증 우려
철강·화학·車 업계 "준비할 시간 없다"
전문가 "지원 없이 생산 줄일 수밖에"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대국민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의 토론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65%'로 목표 설정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대국민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의 토론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65%'로 목표 설정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 대폭 강화로 산업계 전반의 대응 전략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탄소 다배출 업종을 중심으로 준비할 시간도, 기술적 여유도 없다는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세계적 추세에 부합하는 방향이지만 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급격한 속도전이 오히려 '생산 축소'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10일 글로벌이코노믹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산업계의 당면 과제에 대해 질의한 결과, 감축 목표 상향으로 인한 비용 폭증과 배출권 구매 부담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김태선 NAMU EnR 대표는 "(탄소배출) 감축량이 많아지니까 탄소 배출권을 돈을 주고 사야 한다"면서 "유상할당 비율이 늘어났으니 그 부분이 가장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에서 사야 할 물량이 많아지면 비용이 크게 늘어날 거고, 기업의 영업 실적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감축량이 많더라도 무상 할당이었다면 그렇게 부담이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산업계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배출 감축량에 따라 시장에서 탄소배출권을 추가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경우 제조원가가 치솟고 수출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주요 탄소 다배출 업종인 철강·화학·시멘트 산업은 이미 규제 대응을 위한 막대한 투자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실제 실행과 관련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소요된다"면서 "갑작스럽게 목표 수치를 구체화했기 때문에 산업계 입장에서는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차업계 역시 속도를 조절하던 전동화 전략을 다시 가속해야 할 처지다. 전기차·수소차 중심의 전환이 불가피하지만 부품 공급망 전체의 전환 비용까지 감안하면 현실적 부담은 만만치 않다. 박 교수는 "항공사 역시 항공유를 바이오 연료로 대체하고 있지만 기존 대비 4배 이상 비싸다"면서 "결국 기업이 그 정도의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느냐, 소비자가 이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느냐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번 규제가 산업계의 구조적 변화를 촉진할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정부의 기술지원과 재정 보완이 병행되지 않으면 실질적 감축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대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높아지니까 결국 자금이 필요하다"며 "기후대응기금을 사용해 철강과 같은 감축 부담이 큰 업종에 자금 지원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대표는 "해당 업체에서 50%, 정부에서 50%를 지원하며 기술 개발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탄소차액계약제(CCfD) 도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급격한 규제 강화가 자칫 산업 전반의 생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산업 전체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구조라 급하게 감축하라고 하면 결국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생산을 똑같이 하면서 탄소를 줄일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그런 시간도 없이 배출하지 말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탄소 감축의 목표 자체는 옳지만 현실적 이행 경로가 빠졌다고 입을 모았다. 산업별로 감축 기술의 성숙도와 비용 구조가 다른 만큼 일률적 규제보다는 업종별 차등화된 로드맵과 실질적 지원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정부가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어느 정도 투자할 수 있느냐 그리고 시간적으로 얼마나 기다려줄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면서 "정치적 어젠다로 목표를 선포하기보다 실현 가능한 단계별 실행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나연진 기자·안우빈 인턴기자 rachel080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