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만약 귀신이 아니라 음식이 공포를 일으킨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우리가 먹는 맛있는 음식 때문에 우리 마음이 불안해진다면 말이다. 음식을 이용한 독살을 염려하던 고려·조선시대의 왕들은 아마 이런 공포를 잘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식의(食醫)를 두어 자신에게 올리는 음식을 조사, 감별, 통제하도록 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음식 공포(fear of food)는 왕이 아니라 백성인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이 음식 공포는 개인적 음식 공포(individual fear of food)와 대중적 음식 공포(public fear of food)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에는 알레르기 유발 음식이나 경험해보지 못한 타민족의 음식과 같이 특정음식에 대해 느끼는 개인적 공포, 즉 푸드 포비아(food phobia)가 있고, 후자에는 병원균이나 발암물질과 같이 음식에 들어있는 위해요소로 인해 일반인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대중적 공포가 있다. 두 가지 공포가 다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주로 후자의 대중적 음식 공포로 인해 발생하는 음식관련 사건·사고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대중적 음식 공포가 문제가 되는 주된 요인은 그 파급력에 있다. 과학적 원인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대중적 공포는 폭발적으로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음식관련 사건·사고는 아주 작은 것도 커질 수 있고, 안 일어나도 되는 것도 일어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공포의 크기가 원인의 무게에 비해 너무 크다면 사회적 손실은 뼈아프다.
예를 들어 2004년 '불량만두소' 사건을 되짚어보자. 소비자들은 '쓰레기 만두'라는 선정적 보도에 휩쓸려, 과학적으로 얼마나 해로운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만두를 짓밟았고, 관계부처 간판에 만두를 던졌다. 그 결과 마트의 만두코너는 텅 비었고, 만두가게 손님도 뚝 끊겼으며, 문제 만두는 10%에 불과한데 만두시장은 100% 꽁꽁 얼어붙었다. 파급력은 이렇게 컸지만 정작 문제가 된 단무지 자투리의 위해성은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물론 공포의 핵심은 위해성이 잠재되어 있는 단무지 자투리를 사용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소비자에게 공포를 일으킨 원인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 예방을 위해 관련업체들은 음식윤리의 소비자 최우선 원리를 제대로 지켰어야 했다. 이 원리는 '엄마의 된장', '아빠의 빵', '주인도 먹고 손님도 먹는 음식' 등과 같이 표현할 수 있는데, 잠재적인 위해성조차 거론할 여지없는 '착하고 바른' 음식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원리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대중적 음식 공포 문제는 음식윤리의 관점으로 풀어야 제대로 풀 수 있지 않을까?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