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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금값이 오를수록 세상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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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금값이 오를수록 세상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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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범 증권부장
요즘 금이 뜨겁다. 14일 KRX 금 현물 시세는 1돈(3.75g)당 82만 원대 중반을 기록하고 있다. 국제 금값은 온스당 사상 처음으로 4100달러를 넘어섰으며, 이는 우리돈으로 570만 원대 후반에 이르는 수치다.

단순히 귀금속의 가격이 아니라 '불안 지수'가 한껏 높아진 셈이다. 금값은 언제나 세상의 긴장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세계가 흔들릴수록 금은 빛난다. 실제로 1년 전만 해도 금 한 돈은 50만 원 미만이었으나 현재는 80만 원대 중반으로 50%가 넘는 폭등세를 보였다. 금이 단순한 안전자산을 넘어 '웬만한 주식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이유다.

◇ 달러 약세와 금리 하락 기대가 불씨가 되다


금값 상승의 첫 번째 요인은 달러 약세와 금리 인하 기대감이다. 미국 연준(Fed)이 긴축 사이클의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신호를 보낸 이후, 시장에서는 실질금리 하락을 예상하며 금 매수세가 강하게 붙고 있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지만, 금리가 낮을수록 금 보유의 기회비용이 줄어든다. 결국 "돈의 가치가 흔들릴 때" 사람들은 금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이번 랠리는 단순한 통화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투자자 심리의 핵심에는 "지금 세상은 믿기 어렵다"는 불안이 자리한다. 미국 정치 불안정, 중국 경기 둔화, 중동 정세 불안, 유럽의 재정 리스크까지 불확실성의 파고(波高)가 잠시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 중앙은행·ETF의 매수세, '조용한 불안'의 증거


최근 금값 상승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은 중앙은행과 상장지수펀드(ETF) 자금의 유입이다. 세계 중앙은행은 2년 연속 1000톤이 넘는 금을 매입했다. 2023년 1037톤, 2022년 1081.9톤을 매입했다. 러시아 제재 이후 달러 자산의 신뢰가 흔들리자 각국은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며 금 비중을 늘리고 있다. 중국·인도·폴란드·튀르키예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글로벌 ETF 시장에서도 금 관련 상품으로 자금 유입이 늘고 있다. "금은 정치적 자산이자 금융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 "이제 너무 오른 것 아니냐"는 경계심


물론 시장에는 이미 과열 신호도 엿보인다. 달러가 반등하거나 미국 장기금리가 다시 오르면 금값은 언제든 조정을 받을 수 있다. 특히 ETF에 몰린 단기자금은 상황이 바뀌면 빠르게 빠져나간다. '금값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은 위험하다. 금은 안전자산이지만 무위험자산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도 금값은 한때 반토막 가까이 조정받은 전례가 있다.

◇ 투자자가 기억해야 할 한 문장…"5~10%의 철학"


금은 포트폴리오에서 위험을 분산하는 역할로 접근해야 한다. 전체 자산의 5~10%를 금으로 보유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그 이상은 욕심이다. '금값이 더 오를까'보다 '내 자산의 균형이 맞는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금은 변동성이 낮은 것 같지만, 위기 이후에는 오히려 조정 폭이 크다. 투자자는 수익보다 리스크를 관리하는 자산으로 금을 바라봐야 한다.

◇ 불안이 만든 빛, 냉정이 만들어야 할 균형


금값 급등은 단순한 상품 뉴스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정치적 불안, 경제적 불확실성, 심리적 피로감이 교차한다. 지금의 금 강세는 세계가 '안정의 근육'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은 언제나 위기의 시대에 반짝인다. 그러나 진정으로 빛나야 할 것은 투자자의 냉정함이다.

불안이 금을 빛나게 하지만, 냉정함이 자산을 지킨다. 지금 금이 반짝이는 건 세상이 어두워졌다는 뜻이다. 금값의 고공 행진을 즐기기보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보내는 불안의 신호를 읽을 때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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