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희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 고문 겸 노무법인 와이케이 대표
이미지 확대보기건설현장은 무더위와 싸우며 공정을 이어가고, 제조업 현장은 휴가철 전 생산 물량을 맞추느라 분주하게 돌아간다.
산업현장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기인 만큼 위험도 함께 커진다. 실제로 대형 사고와 중대재해는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수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제도가 도입됐고 감독도 강화됐다. 기업들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며 각종 안전조치를 확대해 왔다. 그럼에도 중대재해는 여전히 반복된다.
산업안전은 축구와 닮아 있다. 축구는 정해진 규칙 안에서 공격수와 수비수, 미드필더와 골키퍼, 감독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승리를 만들어가는 경기다. 어느 한 포지션만 뛰어나다고 이길 수 없다. 산업안전도 마찬가지다. 예방과 문화, 지원과 감독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비로소 안전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산업안전을 처벌과 감독의 문제로만 바라본다. 물론 법과 감독은 중요하다. 축구에도 심판이 필요하듯 산업현장에도 규칙과 감독체계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고의로 위험을 방치하거나 반복적으로 안전의무를 위반하는 행위에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생명을 담보로 한 반칙에는 분명한 레드카드가 필요하다.
그러나 심판이 경기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휘슬이 자주 울리면 선수들은 경기보다 판정에 더 신경 쓰게 된다. 산업현장도 다르지 않다. 안전 수준을 높이는 일보다 감독기관의 점검에 대비한 서류 작성이 더 중요해진다면 본래 목적은 흐려진다.
안전은 캐비닛 속 문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여기에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가 더해질 때 위험성평가는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훌륭한 평가가 이뤄져도 현장에 전달되지 않으면 종이 위 계획에 머물 뿐이다. 결국 사고를 막는 것은 현장에서 반복되는 점검과 소통, 그리고 위험을 공유하는 문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경영책임자가 맡는다. 축구에서 감독이 팀의 전술과 방향을 결정하듯 최고경영자의 관심과 의지는 조직의 안전 수준을 좌우한다. 안전을 비용으로 바라보는 조직과 핵심 경영가치로 인식하는 조직의 결과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안전은 특정 부서의 업무가 아니라 경영의 문제다.
두 번째 축은 안전의식과 문화다.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과 충분한 예산을 갖추더라도 현장에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면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보호구 착용, 작업절차 준수, 설비 정비 시 전원 차단과 같은 기본 수칙은 형식적인 규정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작업중지권이다. 위험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은 현장의 노동자다. 위험이 확인됐을 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작업을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안전한 조직은 위험을 보고한 사람을 보호하고, 위험을 숨기는 문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세 번째 축은 안전 취약분야에 대한 지원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사업장이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장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사업장에 대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안전관리 역량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요구다.
정부와 재해예방기관,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규제를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기술과 경험, 인력과 자원을 공유하며 취약 사업장의 예방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안전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결국 산업안전은 어느 한 주체의 노력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정부는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감독체계를 마련해야 하고, 기업은 예방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는 안전수칙을 생활화하고, 사회는 취약 사업장이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중대재해를 줄이는 길은 서로를 탓하는 데 있지 않다. 처벌과 감독, 예방역량, 안전문화, 취약분야 지원이라는 네 개의 축이 균형을 이룰 때 산업안전은 비로소 제대로 작동한다. 어느 하나만 강조해서는 지속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축구에서 위대한 팀은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라 서로의 빈 공간을 메워주는 조직력에서 탄생한다. 산업안전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하나의 팀이 될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된다.
산업안전의 목적은 법을 지키기 위한 안전이 아니다. 서류를 만들기 위한 안전도 아니다. 아침에 출근한 사람이 저녁에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산업안전이 존재하는 이유다.
레드카드가 아니라 팀플레이가 안전을 만든다. 처벌과 감독, 예방역량, 안전문화, 취약분야 지원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중대재해 없는 일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안전의 승부는 결국 규제가 아니라 조직력에서 결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