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민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장
이미지 확대보기재무제표를 들여다보는 감사팀은 있어도, 안전관리 체계가 작동하는지를 들여다보는 감사팀은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 후배에게서 온 문자 한 통이 바로 이 지점을 찔렀다. 후배는 국내 재계 순위 30위권 그룹사의 감사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문자의 내용은 단순했다.
"협회장님, 중대재해를 전문적으로 내부 감사하고 관리하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이 있으면 좋겠어요. 사고가 나면 법무가 대응하지만, 그 전에 기업이 무얼 점검하고 어떤 기준으로 예방해야 하는지를 감사하는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사고 이후에만 몰려 있는 질문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늘 사고 이후의 질문만 쏟아진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어떤 처벌을 받는가, 수습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디어의 관심과 기업 대응, 정부의 조사 모두 사고가 벌어진 뒤에 집중된다.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역시 사고 뒤에 따라붙는 절차일 뿐, 사고를 막기 위한 사전 절차로 여겨지는 경우는 드물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사고 발생 전, 누가 우리 회사의 안전관리 체계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있었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기업이 국내에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서류로는 갖췄어도 위험성 평가가 형식적 절차에 그치지는 않았는지를 제3자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짚어주는 절차는 낯설다.
■ 생명을 지키는 감사는 왜 없을까
그런데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산업안전 영역에는 왜 '중대재해 예방 감사'라는 개념이 아직 자리 잡지 못했을까. 생명은 자산이나 정보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이를 사전에 점검하는 전문 체계는 놀라울 만큼 미흡하다.
중대재해는 안전팀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감사실, 법무팀, 준법지원팀, ESG 부서, 경영진까지 함께 관리해야 할 기업의 핵심 리스크다. 특히 감사실은 기업 안에서 가장 독립적인 시각을 가진 조직이다. 회계와 준법에서 해온 역할을 이제는 안전에서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사고 이후 누가 잘못했는지를 캐묻는 일보다 사고 이전에 어떤 위험 신호를 놓쳤는지를 찾아내는 시스템이 훨씬 더 중요하다. 처벌은 벌어진 사고를 되돌리지 못하지만 사전 점검은 애초에 사고 자체를 막을 수 있다.
앞으로 국내에는 이런 역할을 수행할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법만 아는 사람도, 안전만 아는 사람도 아니라 기업의 안전관리 체계를 진단하고 내부 통제 수준을 점검하며 구체적인 개선 방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융합형 전문가다. 어쩌면 앞으로 기업이 먼저 찾는 사람은 '사고를 수습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사고를 미리 막는 전문가'일지 모른다. 수습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지만, 예방 시장은 이제 막 문을 열고 있다.
오늘 후배의 문자 한 통이 숙제를 던졌다. 이 제안이 산업안전의 새로운 역할과 시장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러한 전문가의 역할은 단순히 법령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위험성 평가의 실효성, 안전 예산과 인력 배치의 적정성, 협력업체 관리 수준, 경영진 보고 체계의 신뢰성까지 안전관리 전반을 하나의 통합된 시각으로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감사 결과가 형식적인 보고서에 머무르지 않고 경영진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