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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호의 미술 에세이 (14) 소시오패스도 예술을 할 수 있을까? 현대미술가의 위악은 화면 속에서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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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호의 미술 에세이 (14) 소시오패스도 예술을 할 수 있을까? 현대미술가의 위악은 화면 속에서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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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호의 미술 에세이 (14) 소시오패스도 예술을 할 수 있을까? 현대미술가의 위악은 화면 속에서만 가능한가?
정정수 작가와 몇몇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 젊은 한의사 한 명이 참석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독설을 뿜어내고 말았다.

"제가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있지만, 좀처럼 상종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한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도발적인 발언은 결국 나에게서 장황한 연설을 이끌어냈다.

어느 사회나 비슷하겠지만, 의사라는 부류가 그렇다.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의사는 누구에게도 친절할 이유가 없다.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자기보다 서열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일이다. 그것으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셈이며, 사회로부터 부여 받은 높은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열이 아래인 사람들은 다시 자기보다 더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똑같은 권력을 행사한다. 이 사회의 구조에서는 어설픈 위선보다 차라리 위악이 최선일 때가 있다. 그들에게는 위선보다 위악이 낫다는 강박이 작용하는 것이다.
한의사는 이미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를 포기한 사람들이면서, 생존을 위해 친절과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된 소시오패스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나는 싫었다. 이익이 되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이익이 되지 않거나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권위적이고 불친절할 수밖에 없는 위치. 이런 태도는 개인의 성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의과대학이라는 곳이 새겨 넣은 선민의식과, 그럼에도 2등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존재들이기에 나는 그들이 싫었다. 그것이 그날 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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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술계는 어떤가

옛날에는 화가와 예술가들이 숱한 기행을 일으켰다. 내 기행의 첫 기억은 대학교 1학년, 과 전체가 함께한 스케치 여행에서였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이것이 나의 최초의 행위예술이었다. 예술가에게 허락된 위악을 나 역시 처음 사용해 본 것이다. 대학이라는, 그리고 미술이라는 세계가 나에게 준 권력을 그렇게 행사해 본 것이다.

당시 나에게 현대미술은 세상 그 무엇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그것이 젊은 나를 만들어주었고,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청년 작가로 살아온 세월 내내 나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내가 나의 작품을 하고 있는 한, 내가 누구의 아류가 아닌 한, 나는 무소불위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가 힘 있는 교수이든, 막강한 화상이든, 잘나가는 미술비평가이든 나는 그들에게 과잉으로 친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예술가니까.

나는 간혹 친절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일부러 위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다가가는 개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나는 친절하고 자상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친절했던 사람의 대부분은, 결국 내 등에 칼을 꽂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화면 속에서 누군가에게 친절하려 애쓰는 작품들을 본다. 자기만의 것이 아닌, 어딘가 비슷비슷한 그림들을 본다. 그 친절함이 나는 싫다. 내 연락을 외면하는 친구들을 본다. 그들의 행위가 이기적인 마음이든, 강자의 위악적 표현이든 상관없이 나는 그것을 칭찬한다. 등 뒤에 칼을 꽂던 그들의 친절함이, 나는 두렵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사회에서 친절한 자들의 대부분은 소시오패스이고 예술가와 정점의 권력자만이 위악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한명호(서양화가)이미지 확대보기
한명호(서양화가)

글쓴이/ 한명호(1957년생)/ 홍익대 서양화과 및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박영덕화랑. 박여숙화랑. 현대아트갤러리. 갤러리Q, 부산화랑 등 다수), 단체전 및 국제전(화랑미술제-현대화랑, 북경아트페어-아트사이드갤러리 등), 최우수예술가상 미술부문 수상(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저서 ‘보이지 않는 곳을 보는 화가’ 등 다수


한명호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