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큰 그림... 달러통화 패권과 국가부채 강제매각
이미지 확대보기재정 방만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월가의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돌입하면서 미국 10년물 및 30년물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베어 스티프닝(Bear Steepening" 즉 장기 금리가 폭등하는 현상이 금융시장 전반을 강타했다. 국채 발행량이 시장의 소화 능력을 초과하자 국채 가격은 폭락하고 조달 금리는 20여 년 만의 최고치로 솟구쳤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외 수요의 실종이다. 과거 워싱턴이 찍어내는 빚문서를 무제한으로 사들여주던 해외 중앙은행들, 특히 중국과 일본 등 전통적인 큰손들이 외환보유액 다변화와 탈(脫)달러화 전략을 내세우며 미 국채 보유를 줄이거나 매각으로 대응하고 있다. 공급은 넘쳐나는데 사줄 주체는 사라진 '국채 소화 불능'의 벼랑 끝에서, 백악관에 귀환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충격적인 반격 카드가 바로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의 제도화와 전면적 육성'이다.
미국 국채시장이 직면한 구조적 모순은 명확하다. 첫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른 부채 증가 속도다. 대규모 감세 정책과 경기 부양, 국방 및 사회보장 지출 확대로 인해 미국 정부는 쉼 없이 국채를 발행해 차환하고 신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국채 공급 증가는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의 급격한 상승을 부른다.
둘째,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긴축(QT)과 고금리 기조 유지 속에서 전통적 금융기관들의 국채 인수 여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상업은행들은 규제 비율과 역마진 부담 때문에 장기 국채를 대량으로 떠안기 어렵고, 헤지펀드의 베이시스 트레이딩(Basis Trade)은 시장 불안정성만 가중시킬 뿐 안정적인 흡수처가 되지 못한다. 셋째, '지정학적 채권 회피' 현상이다. 미·중 전략경쟁 심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달러 결제망 차단 조치를 목도한 비서방 진영은 미 국채를 안전자산이 아닌 '언제든 동결될 수 있는 정치적 리스크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과거 "비트코인은 사기"라며 가상자산을 폄훼하던 트럼프가 강력한 친(親)크립토 노선으로 급선회한 배경에는 정교한 거시경제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 핵심 고리가 바로 테더(USDT), 유에스디코인(USDC) 등으로 대표되는 법정화폐 담보형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의회가 추진하는 '지니어스법(GENIUS Act)' 등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법안의 핵심 골자는 명료하다. 이 번에 따르면 스테이블 코인 민간 발행사는 발행한 코인의 가치와 동일한 규모의 안전자산을 준비금으로 예치해야 한다.준비금 자산의 단기 국채(T-Bills) 집중 배정도 주목할 만하다.준비금의 대부분을 미 재무부 단기 국채 및 현금성 자산으로만 보유하도록 강제한다. 이 구조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충성스러운 '미국 국채 구매 전위대'로 탈바꿈시킨다. 실제로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보유한 미국 단기 국채 규모는 이미 독일이나 한국, 대만 등 웬만한 중견 국가의 미국 국채 보유량을 추월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현재의 수천억 달러 규모에서 수조 달러 규모로 팽창한다면, 미 재무부는 해외 중앙은행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막대한 국채를 민간 디지털 자산 시장을 통해 무리 없이 소화(Absorption)할 수 있게 된다. 단기 국채 수요가 강력하게 뒷받침되면 재무부는 장기채 발행 부담을 단기채로 전환(Short-term rollover)하여 장기 금리의 폭등을 제어하고, 채권시장 전반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우회로를 확보할 수 있다. 달러 패권의 역사는 시대마다 생존과 확장을 위한 숙주를 바꾸어 온 진화의 역사였다.1970년대 초 금 태환 정지 이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밀약을 통해 원유 결제를 오직 달러로만 진행하도록 하는 '페트로달러(Petrodollar)' 시스템을 구축해 기축통화 지위를 지켰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전환, 사우디의 다변화 노선, 브릭스(BRICS) 국가들의 로컬 통화 결제 확대로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균열이 가시화되고 있다.
트럼프가 노리는 차세대 패권의 축은 바로 '크립토달러(Crypto-Dollar)'다. 인터넷과 블록체인 네트워크만 연결되어 있다면 아프리카의 오지든,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남미든, 금융 인프라가 낙후된 동남아이든 상관없이 전 세계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로 미국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손에 쥐게 된다. 각국 국민이 자국 통화의 가치 하락을 피해 디지털 달러(스테이블코인)를 보유하려는 수요가 폭발할수록, 발행사는 그에 상응하는 미국 국채를 추가 매입해야 한다. 이는 전 세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미국의 국가부채를 분담하여 떠안아 주는 기막힌 금융 제국주의적 메커니즘을 완성한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통해 달러에 도전하려던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프로젝트 역시, 민간의 역동성과 글로벌 디파이(DeFi) 생태계를 등에 업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파상공세 앞에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의 거시 해법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100%를 훌쩍 넘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극적으로 낮추었던 '1950년대 모델'과 궤를 같이한다. 1950년대 미국은 재무부가 연준을 통제하며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묶어두는 한편(수익률 곡선 통제), 은행들에 국채 보유를 사실상 강제하는 강력한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 정책을 펼쳤다. 동시에 명목 경제성장률과 일정 수준의 물가 상승을 유도하여 화폐가치를 점진적으로 희석시킴으로써 과거의 부채를 '녹여버리는(Inflating away the debt)' 전략을 취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촉발할 통화·금융적 태풍은 글로벌 경제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것이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과 제조업 중심 국가들에는 심각한 도전 과제를 안겨준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접근성이 극대화되면 국내 외환통제망을 우회하는 자본 유출이 빈번해질 수 있으며, 위기 시 원화 대신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자금이 쏠리는 '디지털 달러라이제이션(Digital Dollarization)'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유동성의 일부가 디지털 달러 자산으로 흡수될 경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조절을 통한 물가 및 경기 제어 능력이 크게 약화될 우려가 있다. 전통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스테이블코인 플랫폼으로 이동할 경우 은행권의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기업 대출 공급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
미국의 40조 달러 국가부채는 분명 제국의 황혼을 경고하는 엄중한 징후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축통화국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금융 공학과 제도적 혁신을 통해 자신의 모순을 세계 시장으로 전가하며 생존해 왔다. 트럼프가 당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방아쇠는 단순한 가상자산 규제 완화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국채의 안정적 소화, 국채금리 대란의 수습, 그리고 디지털 시대 달러 패권의 영구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고도의 국가 대전략이다. 다가오는 스테이블코인 태풍은 기존의 중앙은행 시스템과 국경 중심의 화폐 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