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부, 네오디뮴 등 첨단산업 소재 통제…미·일·대만 공급망 겨냥
류양웨이 회장 "AI 데이터센터, 시설당 70조 원 시장…공급망 다변화로 대응"
류양웨이 회장 "AI 데이터센터, 시설당 70조 원 시장…공급망 다변화로 대응"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해지는 가운데, 중국이 첨단 산업의 '혈액'으로 통하는 희토류 통제 고삐를 다시 한번 바짝 죄었다. 반도체를 포함한 세계 첨단 기술 공급망의 핵심 기업인 대만 폭스콘은 단기 영향은 없다면서도, 사태가 악화하면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을 경고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도 폭스콘은 인공지능(AI)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기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의 정체성을 넘어 AI 기반시설(인프라) 종합 기업으로 변신을 서두르며 정면 돌파에 나섰다고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가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난 10월 9일 중국 상무부는 제61호와 제62호 공고를 통해 희토류 수출 통제 확대 조치를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기존 원자재 중심의 통제에서 벗어나 희토류 원소를 담은 장비, 기술, 조립품까지 그 범위를 넓힌 것이 핵심이다. 특히 통제 대상에는 AI 서버와 반도체 공정에 꼭 필요한 고성능 모터·자석의 핵심 소재인 네오디뮴, 디스프로슘 등이 포함됐다. 업계는 이번 조치가 미국, 일본, 대만 등을 겨냥한 기술 견제이며, 사실상 희토류와 얽힌 모든 가치사슬을 통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이번 공고에는 '역외 적용 조항'까지 담겨 중국 국경 밖 거래에도 통제권이 미칠 수 있음을 내비치면서 세계 관련 업계의 긴장감을 한층 높였다.
폭스콘의 류양웨이(劉楊偉) 회장은 15일 대만 금융감독관리위원회가 주최한 '타이완 위크 2025' 행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회사의 처지를 밝혔다. 류 회장은 "단기적으로 이번 조치가 미치는 영향은 없으며, 현 단계에서 폭스콘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폭스콘의 사업 구조가 희토류 원재료보다는 완제품과 조립 부문 중심이어서 직접적인 타격이 적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규제가 양측의 대립을 키우는 쪽으로 흐른다면, 이는 특정 기업을 넘어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단순 소재를 넘어 기술과 생산 장비까지 제재가 퍼질 위험을 경고했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폭스콘은 발 빠르게 공급망을 다변화하며 위험 관리에 나서고 있다. 희토류 원재료를 직접 수입하기보다 이를 활용한 모듈이나 부품을 공급받는 구조적 특징을 살리는 한편, 생산 거점을 중국 밖으로 부지런히 넓히고 있다. 이미 인도, 베트남, 멕시코 공장을 통해 핵심 부품의 공급선을 나누었으며, 국외 생산기지를 중심으로 희토류를 쓰지 않는 대체소재, 예컨대 경희토류 합금이나 재활용 금속자석 등의 비중을 늘리는 전략도 함께 쓰고 있다.
지정학적 위험 넘어 'AI의 미래'에 베팅
류양웨이 회장은 외부의 우려에도 기술 발전과 시장 규모의 관점에서 AI 산업의 미래를 매우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AI 개발은 이제 막 동이 트는 시기이며, 그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끝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AI 기술이 아직 산업 전반에 온전히 쓰이지 않은 만큼, 앞으로 뻗어 나갈 길이 넓다는 분석이다.
그는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내놓은 '주당 1기가와트(GW) 규모의 AI 컴퓨팅 기반시설 생산' 계획을 보기로 들며 AI 시장의 거대한 규모를 설명했다. 류 회장은 "1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시설 하나를 짓는 데 드는 투자비는 약 500억 달러(약 70조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AI 산업이 매주 1GW씩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AI가 이끌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뚜렷이 알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해마다 AI 산업 생태계 전체에 수조 달러가 투입될 수 있다는 계산으로, 관련 장비와 부품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아가 류양웨이 회장은 AI 기술의 진화 과정을 제시하며 장기 성장성을 거듭 확인시켰다. 그는 "현재 AI 기술은 특정 작업에만 능한 '인공 협소 지능(ANI)' 단계에서 점차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춘 '인공 일반 지능(AGI)'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마침내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 초지능(ASI)' 단계로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기술 형태 또한 현재의 대화형 모델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AI 에이전트'로, 더 나아가 현실 세계와 정보를 주고받는 '피지컬 AI'로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OEM 넘어 'AI 인프라 통합 기업'으로
류양웨이 회장은 AI 기술 진화의 모든 과정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막대한 양의 연산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스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엔비디아, AMD, 인텔 등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서버 조립 물량을 크게 늘리는 것은 물론, 데이터센터의 핵심 부품인 전력 공급장치(PSU), 냉각 장치, 기판 조립 분야에 기술력을 집중하고 있다. 2026년부터는 1GW급 데이터센터의 설비와 제조 계약을 직접 따내고, 자체 상표의 AI 모듈 시스템을 개발하는 단계까지 그리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가 폭스콘에게는 단기적 위기보다는 장기적인 체질 개선과 사업 전환의 기회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기존 재고와 다변화한 공급망으로 앞으로 6개월 동안은 영향이 없지만, 길게 보면 AI 서버의 핵심 부품인 고정밀 전자모터나 전력 모듈 등에서 제약이 생길 수 있다. 폭스콘은 이러한 위험을 AI 하드웨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기회로 넘어서려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세계 공급망의 '탈중국' 흐름이 빨라지고 희토류 재활용의 중요성이 커지는 한편, 폭스콘은 기존의 단순 조립 중심 OEM에서 'AI 기반시설 하드웨어 ODM(제조자 개발 생산)과 시스템 통합 기업'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리며 새로운 정체성을 다지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