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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내년 하반기 '16단 HBM' 공급 요청... 삼성·SK '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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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내년 하반기 '16단 HBM' 공급 요청... 삼성·SK '사활'

반도체 패권 가를 '마의 30㎛' 공정... 0.8mm 공간의 초고층 전쟁
'하이브리드 본딩'이 승부처... 삼성 "역전의 기회" vs SK "초격차 수성"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에 2026년 하반기까지 16단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체계를 갖추라고 공식 요청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에 "2026년 하반기까지 16단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체계를 갖추라"고 공식 요청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에 "2026년 하반기까지 16단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체계를 갖추라"고 공식 요청했다. 아직 12단 제품(HBM4) 양산이 본격화하기 전임에도 차세대 규격인 16단 제품 상용화 시점을 못 박은 것이다. 이는 AI 가속기 시장의 기술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방증으로, 메모리 업계의 기술 개발 시계도 숨 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디지타임스는 29(현지시각) 업계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와 16HBM 초기 생산 물량 논의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의 조기 출시 요구... "12단 넘어 16단 직행하라"


디지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구속력 있는 계약 체결 이전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생산 일정과 물량을 타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요구한 제품이 6세대 HBM'HBM4'16단 적층 모델이거나, 성능 개선 버전인 'HBM4E'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번 요청은 AI 가속기의 성능 향상을 위해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 확장이 시급하다는 엔비디아의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소식통에 따르면 16단 제품에 대한 성능 테스트(퀄 테스트)는 이르면 20263분기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현재 메모리 업계는 2026년 초 양산을 목표로 12HBM4 샘플을 엔비디아에 제공하고 있다. 12단 제품 양산이 막 시작되는 시점에 16단 제품 개발을 동시에 요구받은 셈이다. 이는 AI 메모리 기술 발전 주기가 과거보다 훨씬 단축됐음을 시사한다.

"A4 용지 8장보다 얇다"... 극한의 775


16HBM 개발의 핵심 난관은 '높이 제한'이다. 반도체 소자의 규격과 표준을 제정하는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가 정한 HBM4의 패키징 두께 표준은 775마이크로미터().

이 두께는 A4 용지 8장을 겹친 높이(0.8mm)보다 얇다. 1mm도 안 되는 이 비좁은 틈새에 데이터 저장 창고인 D16개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베이스 다이(Base Die) 1개까지, 17개의 칩을 층층이 쌓아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D램 칩의 웨이퍼를 극한까지 깎아내야 한다. 현재 12단 제품은 웨이퍼를 약 50㎛ 두께로 가공하지만, 16단 제품을 만들려면 이를 30㎛ 수준까지 더 얇게 만들어야 한다. 30㎛는 주방에서 쓰는 랩(Wrap) 두께와 비슷하다. 웨이퍼가 이 정도로 얇아지면 가공 과정에서 과자처럼 부서지거나 종이처럼 휘어질 위험이 매우 크다. 이것이 메모리 3사가 직면한 물리적 한계이자 '기술 장벽'이다.

'하이브리드 본딩' 누가 먼저 쥐나... 삼성·SK 기술 대격돌


웨이퍼가 얇아질수록 칩을 접착하는 '본딩(Bonding)' 기술이 승패를 가른다. 칩 사이 간격을 줄이면서도 전기적 연결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받는 기술이 바로 '하이브리드 본딩(Hybrid Bonding)'이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칩 사이에 전기를 연결하는 돌기(범프)를 없애고, 구리(Cu)와 구리를 직접 맞붙이는 기술이다. 범프가 차지하던 공간을 없앨 수 있어 칩을 더 많이 쌓을 수 있고, 신호 전송 속도도 획기적으로 빨라진다.

현재 이 기술의 선두 주자는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의 TSMC. TSMC는 이미 시스템 반도체 패키징에 이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아직 양산에 적용한 기업이 없다.

우선 SK하이닉스는 현재 주력 기술인 'MR-MUF(액체 형태 보호재 주입)' 방식을 고도화해 16단까지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6단을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하이브리드 본딩이 필수라고 보고 기술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HBM3E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던 삼성전자는 16HBM4에서 판을 뒤집기 위해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하이브리드 본딩만이 살길"이라는 각오로 16단 제품에 이 기술을 선제 적용해 '초격차'를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의 '16단 조기 등판' 주문은 메모리 시장의 기술 경쟁을 '속도전'에서 '패키징 공정 전쟁'으로 바꿔놓고 있다. 16HBM을 먼저 안정적으로 양산하는 기업이 향후 3~4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할 AI 메모리 시장의 패권을 쥘 것이다.

2026년 하반기, '꿈의 16' 고지를 누가 선점할지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