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에서 GPU로 시장 재편… 엔비디아 독주 속 '선택과 집중'
인허가 끝난 '즉시 착공' 부지 매물로… 삼성전자·TSMC 등 대체 진입 가능성
인허가 끝난 '즉시 착공' 부지 매물로… 삼성전자·TSMC 등 대체 진입 가능성
이미지 확대보기2023년 발표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반도체 프로젝트로 이목을 끌었으나, 인공지능(AI) 중심으로 급변하는 시장 환경과 재무 건전성 확보라는 현실적 벽을 넘지 못한 결과다. 다만 해당 부지는 인허가와 인프라 구축을 마친 상태여서, 삼성전자나 TSMC 등 경쟁사들이 유럽 거점을 확보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무 규율 강화… 유럽 반도체 벨트 '균열'
인텔은 지난 27일 2025년 2분기 재무 보고서 발표와 함께 폴란드 브로츠와프 인근 미에키니아 지역에 계획했던 반도체 통합 및 테스트 공장 건설을 백지화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초 이 프로젝트는 200억 즈워티(PLN, 약 8조 원)를 투입해 300헥타르 부지에 200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는 폴란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그린필드(초기 부지 조성부터 시작하는 투자) 사업이었다.
이번 결정은 인텔이 추진 중인 고강도 구조조정의 연장선에 있다. 인텔은 앞서 지난 9월 폴란드와 독일 공장 건설을 최소 2년간 보류한다고 밝힌 데 이어, 이번에 완전 철회를 공식화했다.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으로 조립 라인을 통합하고 미국 오하이오 공장 건설 속도를 조절하는 등 자본 지출(CAPEX)을 2025년 기준 180억 달러(약 25조8300억 원) 수준으로 묶어두겠다는 전략이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핵심 제품 포트폴리오와 AI 전략을 강화하고 재무적으로 규율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한 조치"라며 "운영 비용 절감과 자본 효율성 제고를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고 주주 가치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CPU 지고 GPU 뜬다… 시장 판도 변화가 투자 철회 '방아쇠'
업계에서는 인텔의 이번 결정을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선 '생존을 위한 포트폴리오 재편'으로 해석한다. 생성형 AI의 급부상으로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중앙처리장치(CPU)에서 엔비디아가 장악한 그래픽처리장치(GPU)로 급격히 이동했기 때문이다.
인텔은 그동안 소비자용 PC와 데이터센터용 CPU 시장에 의존해왔으나, AI 워크로드 처리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된 현재 시장 상황에서 주도권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지 매체는 "AWS나 구글 같은 클라우드 제공업체들이 GPU 중심의 아키텍처로 전환하면서 인텔이 설 자리가 좁아졌다"며 "인텔은 TSMC와 협력해 자체 GPU를 개발 중이지만, 현재 시장 지배력은 엔비디아에 크게 못 미친다"고 분석했다.
"위기는 기회"… 준비된 부지, 삼성·TSMC에겐 매력적 대안
인텔의 이탈이 확정됐으나, 폴란드 현지와 반도체 업계는 이를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에키니아 부지는 환경 영향 평가와 부지 조성, 유틸리티 공급 계획 등 행정 절차가 모두 완료된 상태다. 통상 반도체 공장 건설에서 인허가 획득에 수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경쟁사들이 즉시 진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커니(Kearney)가 지난 6월 발표한 '반도체 후공정 제조 매력 지수'에 따르면, 폴란드는 숙련된 노동력과 비용 효율성, 규제 안정성 측면에서 유럽 내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 중 하나로 꼽힌다. 독일 및 체코의 첨단 산업 생태계와 인접해 있어 공급망 통합에도 유리하다.
현지 매체는 "인텔이 떠났지만 완벽하게 준비된 땅과 제도적 기반은 남았다"며 "TSMC,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나 전문 후공정 업체(OSAT)를 유치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는 유럽 내 생산 거점 확대를 고민하는 한국 기업들도 주목할 부분이다. 유럽연합(EU)이 반도체 법(Chips Act)을 통해 역내 생산 시설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인텔이 닦아놓은 기반을 활용해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폴란드 투자무역청 등 현지 기관들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도 차기 투자자에게는 긍정적인 요소다.
한편 인텔의 철수로 유럽의 반도체 자립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자동차, 방위산업 등 유럽 핵심 산업의 반도체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대체 투자자 물색 작업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새로운 내러티브로 투자자를 설득하는 것이 폴란드 정부의 과제"라며 "준비된 인프라를 바탕으로 아시아와 미국 기업들의 유럽 내 후공정 거점 선점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