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글로벌이코노믹이 만난 사람]문성호 금문철강 회장

공유
5

[글로벌이코노믹이 만난 사람]문성호 금문철강 회장

30년 신뢰 쌓아 매출 3030억원 금문철강
“미래 철강유통은 선조립 방식…첨단공장 대폭 증설”

문성호 금문철강 회장이미지 확대보기
문성호 금문철강 회장
철강유통시장은 중소기업들의 전쟁터이다. 국내에는 약 30만여 명의 유통상들이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부침도 극심하다. 90년대 초중반까지는 t당 10만원 이상의 마진이 붙어 금시발복을 안겨 주었지만, 지금은 t당 5000원의 이익 창출도 힘들다.
유통기업의 직원은 대게 2~3명. 많아야 수십 명에 그친다. 최근 철근 가공 공장이 속속 등장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그 자리는 외국인 근로자가 차지했다. 취업절벽시대에 철강유통 기업에서의 ‘일자리 창출’은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예외적인 유통기업도 있다. ‘신뢰’를 앞세워 30여 년 간 철강 유통 외길을 걸어오면서 매출 3030억원, 직원 220명으로 성장한 금문철강이다. ‘장사꾼이 아니라 기업가로 남고 싶다’는 문성호 금문철강 회장의 경영철학을 들어본다.
◇김·문씨 공동 창업…‘금문철강’


‘금문’이란 회사 이름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골든 게이트 브리지’를 연상시킨다. 속뜻은 공동 창업한 ‘김’씨와 ‘문’씨의 성을 사명(社名)으로 한 것이다. 영문 표기는 금문철강과 계열사 모두 GG로 시작한다.
금문철강의 연매출은 3030억원이다. 중소기업 수준을 넘는다. 이것도 2008년도의 실적이다. 서울 송파구 금문철강 본사에 포진한 10여 명의 베테랑 유통전문가들은 ‘우리 제품을 전국에 출하한다’는 새로운 전략을 소화하느라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눈앞의 영업 마진에 그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문성호 회장의 강력한 혁신 드라이브 정책이 가동됐기 때문이다. 이 혁신 드라이브는 제2 도약 선언(2015년)과 맥을 같이 한다.
“나는 장사꾼으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많은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을 만들려고 합니다. 임직원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겠습니다.” 문회장의 제2 도약 핵심은 미래를 내다본 투자로 시작한다.
그 첫 번째 사업은 철근 가공 공장의 확대다. 먼저 경기 평택에 가공공장을 건설한 데 이어서 충북 진천에 최첨단의 제2 철근 가공 공장을 건설했다. 지난해에는 경남 창녕에도 같은 가공 공장을 사들였고, 지난 6월에는 동국제강 철근가공설비를 인수함으로써 국내 최대의 철근 가공 공장 운영업체로 자리매김했다.
금문철강은 국내 7대 제강사가 모두 거래 파트너다. 월 철근 판매량은 동종업계 최대 규모인 3만여 t에 이르고 계열사도 늘어났다. 그만큼 문 회장의 고민은 커졌다. “마진은 줄어들고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요. 정부 지원은 더 빡빡해지죠.” 금문철강은 내년부터 중소기업을 졸업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주어지는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
문 회장은 16년 전 현대건설, 대우건설, SK건설 등 1군 건설사들로부터 납품권을 따낸 걸 자부심으로 갖고 있다. 그땐 공급처 등록하는 일에 3~5년을 소요할 만큼 고뇌가 컸었다고 한다.
“제 부산이 고향 아닙니까. 지방 출신이라 ‘백’도 없었어요. 당시 사정을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바닥부터 쓸었습니다(다졌다). 구매 담당하는 말단사원부터 시작해서 팀장, 그리고 그 윗선까지 일일이 만나고 설득과 도움을 청했습니다. 낙하산으로 했다면(납품사 등록을 하면) 도와준 임원이 떠날 경우 우리도 떠나야 하죠.(웃음)”

문성호 금문철강 회장(오른쪽 첫번째)이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문성호 금문철강 회장(오른쪽 첫번째)이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신뢰’ 최대의 영업 자산


그의 집무실 벽면에는 ‘신뢰 정직 열정’이라는 사훈이 걸려있다. 특이한 것은 1.5m크기의 ‘에베레스트 봉’ 사진이다. 강렬한 햇빛을 머금은 황금색의 산봉우리에서는 뭔가를 강렬히 빨아 당길 것만 같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에베레스트 사진은 벗이 ‘최고’가 되라고 보내준 응원입니다.” 이 사진을 신주 모시듯 벽에 걸어 둔 것은 아마도 그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고객과의 신뢰’를 잘 쌓도록 보듬어준 매직(Magic)일 것이라는 짐작이다. 지인의 기원대로 문 회장은 지금 정상에 올라서 있다.
“신뢰가 중요해요. 가훈이 성실이었어요. 아버님께서는 자신이 내뱉은 말은 보증수표와 같아야 한다고 늘 조언하셨지요. 저도 임직원들에게 신뢰를 우리의 핵심가치로 삼으라고 자주 강조합니다.”
문 회장은 ‘신뢰’를 입에 달고 산다. ‘신뢰’는 영업과 밀착되어 있다. “다른 거래처에서 돈을 못 받았다고 우리 거래처에 돈을 주지 않을 수는 없죠. 매출도 중요하지만 거래는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문 회장의 이력은 요즘 청년들에게 흥미가 당길 만하다. 그는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창원 소재 범한금속(현재 PK밸브)에 첫 입사(1981년)를 했다. 당시는 제2차 오일쇼크로 인해 국가경제 전반이 어려웠고, 10·26사태가 발생한 직후여서 대학교 졸업자 절반 이상이 취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취업난을 겪던 시기였다.
문 회장은 성품대로 첫 직장생활을 열정적으로 보냈다. 1년 반가량의 엔지니어 생활과 영업 업무를 경험했다. 그리고 동국제강에 경력 사원으로 이직(1983년)을 하지만 근무 10년 만에 홀로서기를 결심한다. ‘미래의 자기 위치’를 손가락셈으로 따져 보고 과감히 창업을 선언한 것이다.
“군대 3년 마치고 경력직으로 들어오다 보니 남들보다 몇 년은 뒤처져 있다는 느낌이 많았어요. 요즘은 1, 2년 정도 휴학이 일반적이지만 당시만 해도 1년 차이가 컸어요. 얼추 계산해 보니 50대가 되어야 부장쯤 되겠더라고요.”
문 회장의 홀로서기는 개인적인 성향과 동국제강의 대리점 제도(1993년도) 시행이 결정적 계기였다. 그는 당시 창업에 나선 동료들 중 가장 마지막 주자였다.
“윗선과 자주 부딪치는 성격도 한몫을 했지요. 고분고분하지 못한 성격이거든요. 전 월급쟁이 체질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웃음)”
철강 유통이라는 망망대해에 뛰어든 문 회장의 사업은 초반부터 삐걱댔다. 대리점을 시작한 지 일 년도 안된 1994년 5000만원의 부도를 맞았다.
“열심히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철강 시황은 좋은 편이었는데 제가 창업하고 나서부터 후퇴하기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영업사원으로서 자신감이 있었고 온몸을 투자했죠.”
처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착실한 성장을 해오던 문 회장은 2008년 다시 위기를 맞았다. 거래처 부도와 환차손까지 더하여 1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안았다. 망연자실한 문 회장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신뢰는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하셨던 생존 시 부친의 조언이었다.

금문철강 직원들이 토목, 건축현장에 사용될 철근을 1차 가공한 뒤 제품을 출하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금문철강 직원들이 토목, 건축현장에 사용될 철근을 1차 가공한 뒤 제품을 출하하고 있다.


◇스포츠 경영의 달인


문 회장은 그 흔한 술 접대를 하지 않는다. 세간에서 그를 스포츠경영을 잘 하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제가 술을 잘 못해요. 골프 등의 운동으로 대신했죠. 그것 때문에 ‘스포츠경영’이라고...”
금문철강의 철근 가공설비는 국내 최초의 최첨단 설비이다. 2016년 8월 인수한 창녕 공장 설비도 약 5개월의 리모델링을 거쳐 올 3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코일 자동 절곡기는 이탈리아 쉬넬, MEP에서 도입한 것이다. ‘유라13 예보’라는 설비는 앵커 양쪽을 자동으로 절곡할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선보인 고성능 고효율 설비로 알려졌다.
문 회장의 투자 패턴은 매우 전략적이다. 단순히 외형 확장을 위한 투자가 아니다. 흔히 외형이 커야 금융권으로부터 낮은 금리의 자금을 끌어 쓸 수 있다는 단편적인 생각이 아니다. “고객과 더 단단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평택공장과 더불어 진천과 창녕에 가공 공장을 마련한 것은 충청권을 비롯해서 대구, 경북과 서부 경남권 및 부산 지역, 전라 일부까지 영업망을 넓히기 위한 포석입니다.”
이에 더하여 올 6월 동국제강 인천공장의 철근 가공설비를 인수하자 철강유통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리한 투자라는 이야기와 많은 직원을 키워봤자 소용없을 것이란 걱정들이 대부분이었다.
문 회장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단순 유통 시대는 끝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평소에 가졌던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펼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 우선한 것이다.
“진천공장을 완공하면서 임직원들에게 진정한 기업가가 되겠다고 공언했어요.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경기가 좋을 때 이익을 취하고 경기가 없을 때는 수면 아래로 잠수하는 보편적인 장돌뱅이 유통 형태를 그는 경멸한다.

금문철강은 월평균 3만여 톤의 철근을 국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최첨단의 철근가공설비를 가동하고 있는 충북 진천 가공공장.이미지 확대보기
금문철강은 월평균 3만여 톤의 철근을 국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최첨단의 철근가공설비를 가동하고 있는 충북 진천 가공공장.


◇선조립에 전략적 미래투자


문 회장은 가장 자부심이 높았던 16년 전의 일을 재연하고 싶다고 말한다.
“철근 수요는 점차 감소하겠지만 가공 사업의 비중은 크게 높아질 겁니다. 철근 가공은 현재 400만t 정도인데 앞으로는 700만t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직까지는 가공비가 선진국의 절반 정도 수준이지만 설비투자와 생산성 향상으로 원가를 절감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 회장의 또 다른 관심 분야는 선조립 분야이다. 선조립은 기둥∙보∙벽체∙대형 기초말뚝 등에 쓰이는 철근을 가공 공장이나 현장에서 미리 조립해서 UNIT화된 철근을 조립하는 공법이다. 유럽과 일본은 이미 대부분의 건설현장에서 적용하고 있다.
“이제 단순 유통, 가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선조립 시장은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 외에도 공기 단축과 인력 등의 투입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 분야에 조만간 추가적인 투자를 확정할 계획입니다.”

◇주식 10% 출연 근로복지기금 마련


지난 2015년 문 회장은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기회가 되면 임직원 복지 향상을 실행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회사 주식 10%(약 20억원의 회사주식과 현금 2000만원)를 ‘사내 근로복지기금’으로 출현’한 것이다. 금문철강은 이 기금으로 올해부터 임직원 자녀(고교까지)학자금 전면 지원, 임직원 맞춤형 종합검진, 체력단련비(1인당 60만~100만원)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문 회장은 ‘기업도 시민’이라는 의식을 잘 아는 기업가이다. 그는 2016년에 사회복지 공동모금에 1억원을 기부하여 아너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밀알복지재단 및 유니세프에도 매월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그밖에 동창회를 통한 장학제도에도 관심을 기울여 부산대학교와 부경고에 상당한 금액을 약정하여 모교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혁신을 이루는 기업인들의 의지와 노력이 기업가 정신”이라고 지적한 경제학자 조지 슘페터의 말처럼 문성호 회장의 ‘신뢰’로 쌓은 금문철강의 오늘은 여타 철강유통기업과는 확연히 다르다.
직원 6명으로 시작한 철강 유통사업을 30년 동안 키워오면서 매출 약3000억원의 대기업으로 성장 시킨 문성호 금문철강 회장은 ‘남과 같이 해서는 남보다 잘 될 수 없다’는 비즈니스 철학을 갖고 있다. 미래의 철강유통시장은 건설현장에서 ‘선조립’ 형태의 시스템이 보편화 될 것이란 판단 아래 유럽과 일본 싱가포르에서 채용하고 있는 최첨단의 가공설비를 과감히 도입하고 있다.
최첨단의 철근 가공설비를 가동하고 있는 충북 진천의 가공공장. 금문철강은 월평균 3만여 t의 철근을 국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토목 및 건축현장에 사용될 철근을 1차 가공한 제품이 출하되고 있다.


김종혁 기자 jhki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