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쌍용차 68년-1] 국내 最古 자동차 업체, 최초 버스 수출

공유
1

[쌍용차 68년-1] 국내 最古 자동차 업체, 최초 버스 수출

1954년 설립 하동환 자동차, 1966년 부르나이에 1대
1967년에는 월남에 버스 20대 보내며 현지공장 설립 추진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 완성차 업체인 쌍용자동차가 다섯 번째 주인을 맞이하며 부활을 위한 새출발을 시작한다. 특히, 18년간 외국기업에 경영권이 넘어갔다가 한국기업 에디슨모터스가 인수해 토종기업이 되었다.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의 궤를 함께하는 쌍용차의 역사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2년 후면 창립 70주년이 되는 쌍용차가 그 때 즈음 성공을 외칠 수 있을지는 새로운 주인이 들어온 현재도 불투명하다. 쌍용차가 걸어온 지난 길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에 대해 조명해 보기로 한다. <편집자주>

1967년 부산항만에서 직원들이 월남(베트남)으로 수출하는 하동환 자동차의 버스를 화물선에 하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1967년 부산항만에서 직원들이 월남(베트남)으로 수출하는 하동환 자동차의 버스를 화물선에 하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선구자 하동환 대표 1954년 설립, 1966년 부르나이에 첫 수출


1967년 8월 19일. 서울시청 앞에는 한 대의 버스가 전시되어 있었다.

하동환 자동차가 만든 수출용 버스였다. 하동환 자동차는 앞서 1966년 5월 버스 한 대를 부르나이에 수출, 대한민국 자동차 기업 최초 수출이라는 비공식 기록을 세운 바 있다. 1903년 고종 황제 재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공관을 통해 포드 캐딜락 1대를 들여온 지 63년 만에 우리나라가 만든 자동차가 처음으로 수출한 것이다.

이날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군대를 파견한 월남(현 베트남)에 버스를 수출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하동환 자동차는 월남 측과 20대의 버스 수출 계약을 체결했디.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버스를 직접 시승했고, 경찰차가 부산항까지 직접 호위했다. 이 버스가 베트남 사이공 공항에 내렸을 때는 당시의 구엔 카오 키 월남 수상이 직접 환영식장에 나와 축하를 해줬다. 하동환 자동차는 이듬해인 1968년에도 15대의 버스를 월남에 수출했다. 하동환 자동차는 향후 월남에 연간 버스 2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만약 계획이 실현되었다면 한국 기업이 세운 첫 자동차 생산공장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동환 자동차는 1954년 1월 서울 장안에서 ‘하동환 보디’로 유명했던 하동환 씨가 마포에 설립한 자동차 회사로, 국내에서 최초로 대형버스를 생산한 업체다. 1954년 2월 충남 공주 출신의 김창원, 김재원 형제가 2월에 부산에서 설립한 신진공업사와 이들보다 앞서 1952년 ‘3000리호’란 첫 국산 자동차를 생산한 경성정공주식회사(후일 기아산업 주식회사로 상호 변경), 1954년 8월 미군 지프 엔진을 개조한 시발 엔진을 기반으로 순수 국산차의 원조인 지프형 승용차 ‘시발택시’를 생산한 서울의 최무성 씨 3형제 등과 함께 초창기 한국 자동차산업을 이끈 선구자였다.

국내 최초 규격화된 버스 생산, 서울시 주문량 90% 차지


당시 정부는 민간 자동차 교통의 재건을 위해 전시특례법을 발표하고 합승차 제도를 공포했으며, 이에 따라 정비업소와 운수업자들은 군용트럭을 조합한 9인승 합승 버스 제작에 몰두하던 때였다. 서울 서대문에서 사업을 시작한 하동환 씨는 1955년 드럼통과 GMC 트럭 차대를 이용해 국내 최초로 규격화된 버스를 생산, 부품의 통일화를 이루기도 했다.

1962년 12월 탁연성 사장의 보성자동차공업사와 합병해 구로동에 8000여 평의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근대식 공장을 세운 후 회사명도 하동환 자동차공업으로 바꿨다.

이후 하동환 자동차의 버스 조립사업은 발전을 거듭하게 되는데 1965년부터 서울시가 좌석버스 운행하자 주문량의 90%를 하동환 자동차가 받아냄으로써 이후 서울 시내는 온통 하동환 버스가 누빌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하동환 자동차의 리어엔진버스는 부르나이, 베트남 등에 버스를 조금씩 내보내면서 자동차 수출 대국의 기반을 닦았다.

엔진‧차대 일본서 수입, 첫 수출기록 인정 못받아


당시 수출은 하동환 자동차의 수출 의욕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 하동환 버스는 일본으로부터 엔진과 구동장치가 장착된 차대를 도입해 차체와 의자 등 내장부품 일체를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국산화하여 제작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도로 사정도 나쁘고 수송수단도 원활치 않아 이를 부산에서 서울까지 직접 운전해 온 후 완성 버스를 만들어 다시 부산항을 통해 수출했다.

마침, 1967년은 한국이 연간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를 걸 때였다. 정부는 경공업 위주의 수출로는 한계가 있다고 여기고 중화학 공업 주도의 수출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따라서 하동환 자동차 공장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 박충훈 상공부 장관 등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연이어 방문해 현장을 순시했을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그런데,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하동환 자동차의 수출은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수출용 버스는 일본으로부터 엔진이 부착된 차대 상태로 도입해 차체와 내장 일체만 국산품으로 조립한 것이어서 순수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실력으로 수출한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앞에서 ‘비공식’이라는 수식어을 붙인 이유다. 일반 국민 사이에선 하동환 자동차보다 10년 후인 1976년 현대자동차의 포니가 에콰도르에 수출된 것을 첫 사례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이때까지 하동환 자동차는 국산 자동차를 만들어 국민에게 보급하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과 창의의 기업가 정신을 마음껏 발휘했던 행복한 시기였다. 꿈은 깨지게 되어있다. 향후 하동환 자동차는 수많은 위기를 겪게 된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